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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부의 엽기 곤충 틱

by 무량화


미국살이 첫해, 이 녀석을 알게 됐다.

우린 첫 상견례를 아주 고약하게 치렀다.

신록의 숲이 하도 아름다워 잠시 단풍나무 그루터기에 앉았을 따름인데 녀석이 따라붙어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던 것.

그날 저녁 다리가 근질거려 무심코 긁다 보니 피딱지 같은 것이 걸렸다.

빈대만 한 그걸 떼어내려고 손톱 끝에 힘을 가해봐도 요지부동 아닌가.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그 괴이쩍은 물질은 피부에 딱 흡착돼 있었다.

식구들이 다 동원되고 결국 핀셋을 이용해 가까스로 떼어놓았다.

그제서야 재빠르게 달아나는 정체불명의 생물체는 인터넷 검색 결과 진드기, 틱(tick)이었다.

틱은 갈고리 같은 발들을 피부에 박고 있으므로 손가락으로는 쉽게 떼어지지 않는다고 나와있다.

빈 필름 통에 며칠을 가둬놔도 멀쩡하던 갑각충 틱은 여기선 아주 흔하게 만나는 이웃이었다.

밀봉 통에 넣어둔 이유는 혹시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의사에게 보여줘야 한대서 보관해 뒀다.

그러나 빨리 발견한 데다 주변 소독을 철저히 해서인지 별 이상 없이 괜찮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슴이 노니는 숲의 틱에 대해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단단히 주의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미 동북부 현지인들은 숲속이나 풀밭에 아무 대비 없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5월은 Lyme Disease Awareness Month다.

라임병은 주로 사슴 진드기인 틱이라는 벌레로 옮겨지는 전염병의 일종이다.

본격적인 야외활동이 시작되는 때, 공원 입구에는 반드시 방충 스프레이를 사용하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숲을 산책한 후에는 샤워를 하고 입고 나간 옷은 뜨거운 물에 세탁하라고도 쓰여있다.

혈액검사를 통해 라임병 감염 여부를 알게 된다는 말이 와전되거나 부풀려진 탓일까.

틱은 몸속으로 파고 들어가 혈관 타고 다니며 독감 앓듯 열이 나며 장기를 손상시켜 죽는다는 괴담도 나도는 터라 내심 식겁했다.

사슴 가족을 만나도 천방지축 반기며 만지지 않는 것은 물론 절대 숲에 들어가는 무모한 짓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산행 때처럼 숲과 일체 되어 가까이서 즐기는 숲이 아니라 그저 눈으로만 즐기는 풍경일 따름인 동부의 숲인 셈.

이후, 숲 그늘에 싸인 나무로 지은 집을 마련하리라 했던 꿈을 깨끗이 접고 말았다.



그 이듬해 봄이 다 해갈 무렵.

이번엔 벌에 쏘여 곤욕을 치렀다.

여느 날처럼 가게 문을 여는데 벌이 스친 듯한 순간 따끔하면서 팔목에 붉은 반점이 솟았다.

그 중심부에는 벌침이 박혀 있었다.

플라스틱 카드로 싹싹 긁어대 독침을 빼내고 비누칠해 깨끗하게 씻기부터 했다.

급한 김에 눈에 띄는 과산화수소를 들이붓다시피 했으나 금세 팔꿈치까지 벌겋게 부어오르며 아리고 욱신거렸다.

때마침 들어온 손님이 내 상태를 보더니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며 야단법석이었다.

미국에선 야생벌에 쏘이면 목구멍까지 부어올라 자칫 쇼크사를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겁을 주었다.

예전에도 벌에 쏘인 적 있었는데 괜찮았다며 대단치 않은 듯이, 일단 눈 똥그라진 손님부터 진정시켰다.

그는 머리를 흔들며 나가더니 차를 휑하니 몰아 금세 다시 돌아왔다.

어느새 마트에 달려가 얼음 자루 하나를 사들고 온 것, 고맙다고 인사치레하는 나를 대신해 급히 비닐봉지를 뜯었다.

이어서 얼음 쏟아부은 수건을 팔목에 대주고는 병원에 가야 하는데.... 염려스러운 듯 머뭇거리다 문을 나섰다.

친절한 손님이 떠난 뒤 얼음찜질을 하며 현관을 살펴보니 알루미늄 새시의 비좁은 틈 사이에 지은 벌집이 보였다.

하얀 알도 소복이 들어 있었다.

알을 지키는 에미였다 한들 독하기도 하여라.

나 일찍이 네게 적의를 품은 적 없고 해치려 한 적도 없거늘 어이하여 날 공격하느냐.

더구나 내 영역에 네 멋대로 집을 짓고 더부살이하는 처지에 감히 날 쏘아? 추가되는 괘씸죄.

그러나 그들 모두는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이웃.

따지고 보면 그나 나나 다 같이 여기 잠시 머물다 가는 객.

오히려 이 땅에 더 오래 산 이력으로 치자면 벌이 몇 수 위가 아닐까.

어디서 주객을 논하며 존재의 등급을 따지랴 싶었다.



지난여름, 유난히 무덥더니 모기가 극성스러웠다.

해가 설핏해지면 소리 없이 등장하는 흡혈충, 모기다.

고작 점 만한 몸집으로 봐서야 먹거리를 조금 나눠줄 만도 하나 뒤끝이 아주 성가신 탓에 반가울 수가 없다.

한국 바닷가 모기처럼 지독하여 한번 물리면 근 열흘은 두고두고 가려운 데다가 웨스트 나일인가 하는 병도 겁난다.

가게 뒤편 모서리에 친 투명한 거미줄에 모기 한 마리가 얽혀있다.

파닥거리며 연신 몸부림이다.

구석에 은신한 거미는 준비된 식사감에 벌써 군침 흐를 터다.

모기가 아닌 다른 날벌레라면 사지에서 구해줬을까.

거미줄이 출렁댈 정도로 파닥거리는 모기를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불쌍하다는 연민까지야 들 리 없지만 그렇다고 꼬소하다 쌤통이다, 그런 심사도 아니다.

다리 곳곳에 녀석들이 남긴 상흔 때문이 아니라 이는 내가 간섭하거나 나설 계제가 아닌 일.

단지 자연의 섭리에 맡길 따름이다.

모기를 사냥한 거미는 가을의 전령 귀뚜라미에게, 귀뚜라미는 포식자 사마귀에게, 사마귀는 부리 예리한 새에게,

새는 날쌘 들짐승에게, 들짐승은 사냥꾼에게, 사냥꾼은 더 쎈 욕심쟁이에게…

질서에 기꺼이 순명하며 서로 주고받는 관계, 이웃 간의 공양이 이어지므로 자연계 나아가 세상은 이어지는 것이리라.

해서 나도 더러는 나눌 것을 나눠주며 살아야겠지.

그러나 엽기 곤충과의 친교는 절대 사양이다.

2002


다음은 엽기 식물 포이즌 아이비 차례다


https://brunch.co.kr/@muryanghwa/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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