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나를 데리고 바람처럼 돌아다녀요./나는, 새가 되어 날아요./꽃잎이 되어,/바람이 되어/나는 날아요,
김용택의 시처럼 봄이면 산야 여기저기 자유로이 날아다녔다.
꽃놀이만 좋은 게 아니었다.
조천 바닷가 용천수가 솟는 마을을 찾아 나선 날이었다.
해안 따라 조붓하게 난 도로를 지나는데 배낭을 멘 부부가 햇쑥을 뜯고 있었다.
원래 해풍 맞고 자라는 쑥을 쑥 중에도 약쑥으로 친다.
무심히 걸을 때는 못 봤는데 풀섶 가까이 다가서자 탐스러이 돋은 쑥이 수북 깔리다시피 했다.
아무런 도구가 없는 상태라도 부드러이 자란 쑥은 손톱으로 톡톡 끊을 수가 있었다.
마침 간식을 챙겨 온 비닐봉지가 있어서 한주먹 넉넉히 뜯어서 거기다 담았다.
사실 시장에서 파는 쑥은 어디서 뜯은 건지 알 수가 없어 꺼리게 된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했다거나 자연산이라도 차도 가까운 장소 또는 농약 사용 빈번한 밭 근처에서 뜯었다면 곤란하다.
요즘 농촌에서 무분별하게 농약과 제초제를 과다 살포해 문제인데 나물이라 해서 그 영향권에서 예외 되는 건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내 손으로 직접 채취하는 게 젤로 믿음직하다.
용천수가 흘러내리는 바다로 들어섰더니 물 빠진 갯고랑에서 몇 사람이 고동을 줍고 있었다.
인근에 고동이 좍 깔리다시피 아주 많았다.
파래 같은 조류가 붙어있는 바위는 무척 미끄러웠다.
조심스레 다가가 굵은 고동을 한 보시기 정도 건졌다.
담을만한 여벌 봉지가 없어 쿠키를 먹고 난 빈 껍질을 봉지 삼아 이용했다.
고동을 소금물에 하룻밤 해캄 시켜 두었다가 끓여서 받친 국물에다 쑥을 넣었다.
물기 있을 때 들깻가루를 묻혀서 끓인 쑥국에서 봄 내음이 은은히 번졌다.
도다리 쑥국이 아니라도 봄의 진미를 접한 이 무상의 행운.
일석이조, 도랑치고 가재 잡듯 걷기 운동하다가 수렵채취인도 돼보고.
흐흠~ 좋을시고!
얼마 전에 걷다가 눈여겨 봐두었던 별내린전망대로 향했다.
쑥을 뜯기 위해서였다.
성천에서 촌할망되어 새소리 들으며 신선놀음하듯 쑥을 뜯었다.
이곳 예전 지명은 성천포(星川浦), 백록담에서 발원해 천제연 계곡 중문천을 따라 바다에 이르는 하류 포구 이름이다.
성천은 순우리말로 풀이하면 별이 내린 계곡이니 얼마나 운치로운지.
전망대에서 아래로 한참 내려가자 정말 밤에는 사방이 너무 깜깜해서 깊은 계곡으로 별이 쏟아져 내릴 거 같았다.
차도와 멀찌감치 떨어진 데다가 인적조차 드문 청정한 환경의 공원, 반 시간 남짓 둘이서 뜯은 쑥 양이 충분해 그만 일어섰다.
쑥을 삶아 휑궈서 짜놓은 걸 들고 올레시장 떡방앗간에 다녀왔다.
쑥과 함께 찧은 쌀가루 만들어 왔으니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한번 해본 경험이 있어 반죽 녹진하게 해서 동글 납작 빚어 찜 솥에.... 뚝딱 쑥개떡은 완성됐다.
김 오르는 솥에서 한 개를 꺼내 맛을 보니 으음~ 이름이 아깝다 아까워.
찐한 향수의 맛인 이 정겨운 떡을 하필 개떡이라 하다니.
참기름으로 살푼 광도 냈겠다 이만하면 참떡이라 해도 손색없겠구먼.
따끈할 때 옆집이랑 돌리고 이튿날은 올레길 도반도 향수 어린 음식이라며 좋아하기에 몇 개씩 나눴다.
한국 와서 처음 맞은 봄부터 직접 쑥개떡을 만들어 먹었다.
온천장 시장 방앗간에 들러 쌀 한 되에 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묻자 이만큼, 하며 분량을 가늠해 줬다.
쑥을 삶아서 가져오면 쌀과 같이 빻아준다고 했다.
쌀가루를 집에 갖고 와 반죽을 하고 매매 치댔다.
그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송편과 달리 찬물에 반죽하라기에 그대로 따랐다.
담박한 맛을 살리려면 설탕은 전혀 넣지 않는 편이 낫다. (식성에 따라 감미는 제각각 알아서)
동글납작하게 빚어 쑥개떡을 찜솥에 쪄서 시식해 봤는데 천일염 슬쩍 던져 넣고 가루 만들어 주더니 간이 딱 맞았다.
쑥 내음 향긋하고도 쫄깃한 맛이 일품이었다.
쑥절편을 먹어봐서 알겠는데 색 짙은데 반해 향은 거의 느끼지 못했으나 이번에 쑥 뜯어다 손수 만든 떡에서는 쑥향이 제대로 풍겼다.
누가 맨 처음 개떡이라고 불렀는지 모르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다듯 앞으로 네 이름은 쑥찰떡이야~ 아암!
산방산 자락을 무심코 걷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휘적휘적 걸으며 산도 올려다보다가 바다도 내려다보고...
푸른 기운 감도는 수풀 발치에서 우연히 달래 비슷한 게 눈에 띄었다.
긴가민가하며 이파리를 두 손가락으로 맞비벼보았다.
후각에 짙게 감도는 달래 향, 야생 달래가 분명했다.
설마?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라서 한 번 더 확인 과정을 거쳤다.
흙을 조심조심 파헤치고 지긋이 뿌리를 뽑아 올렸다.
동그란 알뿌리를 보니 틀림없는 달래였다.
아직도 산야에서 달래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신통방통하기만 했다.
뾰족한 돌을 구해 석기시대 원시인처럼 쪼그리고 앉아 달래를 캐모았다.
잔등에 따스히 내리는 양광이 참 좋았다.
촌에서 태어났으니 달래를 알아볼 수 있었기에 그 점도 새삼 감사했다.
지난해 추적대는 비를 맞으며 달래를 캤던 이바구다.
우비를 입었지만 바람이 심해 모자가 자꾸 벗겨졌다.
바지 아랫단은 제법 젖었고 등산화도 축축해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도시 자신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바보같이 추적대는 우중에 이 무슨 청승?
한라산 자락 초지에 엎드려 달래를 캐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심리를 교묘하게 조작해서 이리왈 저리왈 시키는 대로 상대방에 지배당하는, 가스라이팅까지는 아니라도 그 비슷한 경우다.
한 고집하는 자신이지만 때론 어처구니없이 귀가 얇아 이런 우를 범한다.
일면 마음이 약해서인가.
그때 나는 서울 가는 항공권을 구매했었다.
언니네 가서 함께 선영도 둘러보고 대호지 외숙 내외분 유택도 참배할 생각에서다.
수요일에 서울 올라간다니까 언니는 대뜸 쑥개떡과 제주도 달래가 먹고자프다 한다.
은근스레, 해풍 맞고 자란 쑥이 좋다고도 하고 곱창김 살짝 불김 쐐서 달래장 곁들여 먹으면 최고라며 입맛 다신다.
이건 꼭 갖고 오라는 겁박이나 명령보다 더 거부할 수 없는 호소력으로 작용한다.
자승자박, 결국 쑥떡은 물론 목장길 걷다 본 달래 얘기를 진작에 신나게 떠들어댄 바 있으니.
얼마 전, 교민 친구 맛보게 하려고 쑥 뜯으러 간다는 말 듣자마자 쑥떡 먹고 싶다고 했으니 쑥개떡은 준비할 생각이었지만 달래는 뜻밖이다.
벚꽃 필 무렵 캐온 달래는 뉴저지 벗 오면 그녀가 좋아하는 된장찌개 해주려고 냉동실에 넣어뒀다.
그걸 나눠갖고 갈까 했더니 생달래라야 달래 간장을 만든다며 퇴짜를 놨다.
어쩌겠는가, 꽝꽝 얼어붙은 한겨울에 잉어찜 타령하는 것도 아닌데 쪼르르 가면 되는 달래야 응당 캐러 갈밖에.
동기간 우애 유별나서가 아니고 그 누군들 이런 말 듣고도 못 들은 척 묵살하랴.
이미 마늘처럼 쫑까지 나온 터라 잎이 제법 센 달래지만 주섬주섬 캐면서 저 건너편 목장에 시선을 던졌다.
목표했던 분량이 대충 채워졌기에 그쯤에서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말이 아닌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포착돼 자세히 보니 사슴 무리였다.
폴짝폴짝 뛰노는 그들을 주시하며 철책가로 다가가 걸었다.
강풍 아랑곳 않고 빗속에서 그렇게 만난 사슴들 재롱은 먼빛일지언정 한참을 제자리에 서있게 만들었다.
언니 덕에, 빙긋 미소 머금게 하는 특별 선물이듯 제주목장에서 뛰노는 사슴 가족들과 조우할 수 있었으니 이도 감사 목록에 추가시켰다.
우중에 한라산 자락 산책하는 묘미라니, 우비 위를 부드러이 터치하는 빗소리가 마치 은혜로운 노랫소리 같았다.
오래전 뉴저지 뒷산에서도 달래를 캔 적이 있었다.
달래가 맞긴 맞는데 향도 희미한 데다 무척 억세고 뻣뻣했다.
그래도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듬뿍 넣어 달래장 만들며 향수를 달랬었다.
한국에 돌아와 초겨울이면 자주 물미역을 샀고 봄엔 달래를 사 날랐다.
미국 한인마켓에 웬만한 식품은 다 들어와 있지만 물미역이 없어 찬바람 불면 입덧하는 아낙처럼 그리도 먹고 싶던 물미역.
말 타면 견마 잡히고 싶다던가, 달래도 향 짙게 나는 그 옛날 달래 생각이 무지 났더랬다.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연한 달래만 그간 맛봤는데 소망 이뤄줄 자연산 달래를 제주에 와 실제로 만나다니...
감개무량했었다면 웃을지 모르지만, 육십 수년 만에 만난 '야생 달래'이니 십분 이해가 되리라.
외갓집 보리밭이랑에서 호미질 한 번 하면 구슬 뿌리 쏘옥 내밀던 달래.
긴 뿌리 쏙쏙 뽑혀 나오던 향긋한 냉이.
봄만 되면 볕에 얼굴 까매지도록 산길 들길 쏘댕기며 바구니에 풋나물 가득 채우던 아이가 웃고 있다.
유독 손길 재바른 편이라 누구보다 많은 달래 냉이를 캐던 그 아이.
유년의 기억들이 술술 풀려나오며 그렇게 갈래머리 쫑쫑 딴 아이가 다가선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세월의 뒤편으로 아득히 멀어진다.
뜻밖에 생광스레 얻은 달래로 양념장을 만들었고 나머지는 된장찌개를 만들기로 했다.
평소 해오던 현미식을 바꿔 백미로 밥을 지었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는 꼬드김에 넘어간 북 주민처럼 고슬고슬하게 지은 하얀 쌀밥에 양념장 얹어 쓱쓱 비벼 먹었다.
으음~ 이 맛이야! 감동에 겨워 눈물이 다 찔끔.
젊은 층이야 거들떠도 안 보는 쑥개떡이긴 하더라만 나이 든 분들 향수 어린 옛맛 생각나거들랑 이 봄 서귀포로 오시길.
들녘으로 봄마중 가서 토종 달래 냉이 쑥도 뜯어보고 물 빠진 바닷가에서 고동이며 보말도 한 보시기 건져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