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일년살이를 하겠다고 섬에 들어온 지 두 달 겨우 지난 2022년 초.
할 줄 아는 운동이라고는 걷기밖에 없는 데다 시골 출신이라서인지 원래부터 잘 걸었다.
날씨만 좋으면 허구한 날 걷기를 즐기다 보니 오름도 오르고 올레길 걸으려 온 제주섬이었다.
섶섬과 문섬이 보이는 서귀포에 거처를 정하고 매일이다시피 쏘다녔다.
한라산 등반은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직 미뤄뒀지만 동으로 서로 오일육 도로 넘어서 제주시로도 진출했다.
다녀오는 곳마다 신명나게 사진을 찍고 몇 줄 끄적거려 블로그에다 올렸다.
그새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포스팅이 백여 꼭지가 넘어섰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명함 대신 건네주던 산문집도 남은 게 없어서 서귀포는 빈손으로 왔다.
다만 일기 적듯 엮어온 블로그나마 있기에 그 덕에 <희망 서귀포>의 귀한 지면을 할애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귀포에 거주하는 문화예술인을 만나 인터뷰 기사를 써왔다.
삼십 대 중반에 등단을 하고부터 계속 써온 글이라 그나마 할 수 있는 게 오직 글쓰기다.
그간 문단 활동 못지않게 신문사에서, 사보 편집실에서 실질적으로 나름 폭넓게 탁마를 거듭해 왔던 터.
해서 글쓰기 교실이나 자서전 쓰기 지도 등에 재능기부를 하고 싶어도 쓰일 곳을 찾지 못하던 차였다.
하다못해 서귀포 시내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 해도 거치적거린다는 나이가 돼버린 지금.
얼마든지 역할을 갖고 활동할 수 있다 싶은 건 마음뿐, 현실은 대체로 노년층에 매우 비우호적이다.
그냥 앉아서 조용히 글이나 써라, 그러나 소설가 역량에는 못 미치니 잡문 나부랭이나 쓰면서 노닥거리는데도 한계가 있다.
이 세상에 나를 증명할 거라곤 전무한지라 소속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어 2022년 서귀포시 SNS 서포터스 모집에 응해봤다.
부산에서 지난 일 년간 시민기자를 해본 경험도 있기에 그 정도는 소화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고맙게도 서포터스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올 초 시청에서 열린 발대식에 참석해서 위촉증을 받았다.
서귀포시 공식 블로그로, SNS 통한 서귀포시의 생생한 정보를 홍보하는 역할과 동시에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하는 조력자 역.
서포터스 대부분이 이삼십 대 젊은 층이라 가장 연장자이나 그런만치 나름 역할 지평도 충분히 너르다.
이 한 해 더 새롭게 그리고 활기차게 뛰는 거다, 파이팅! 스스로를 격려했다.
이때 받은 명패는 일 년간 나를 소개하는 명함이 돼주는 데다 기관 취재도 가능하다니 비약할 수 있는 새 날개를 단 듯 기쁘다.
벽에다 떡하니 붙여놓은 제주도 지도에 다녀온 곳마다 원형 스티커로 표시를 해놨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갈 곳은 부지기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기업가도 있는데 놀러 다닐 궁리나 하다니.
하지만 은퇴자의 삶에 무에 바람이 달리 있으랴, 그저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다.
감사하게 아직은 어떤 복용약도 필요 없으며 건강 문제로 가족들 신경 쓰게 만들지 않으므로 자유로이 지낼 수도 있는 것.
나 자신 주격이 되어 온전히 스스로의 삶을 주도하며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꺼운 일인가.
이 행복 만끽하고자 캘리포니아에 멀쩡한 내 집 놔두고 엉거주춤 서귀포에서 오피스텔 연세를 살고 있는 지금.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살림이라 불편한 것 투성이 같으나 별로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어느새 나는 이 생활에 적응됐으며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옛말처럼 이대로도 마냥 좋다.
절간 방처럼 단순하게, 시대 조류 역시 미니멀 라이프에 쏠리는 추세라지 않던가.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서귀포에 빠져들면서 슬그머니 계획까지 바뀔 정도로 그렇게 완전 나는 서귀포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일년살이 작정하고 온 서귀포인데 아무래도 여기서 몇 년은 살게 될 거 같은 예감.
하긴 오십 넘어 미국 갔다가 다시 역이민, 타고나길 역마살이 있는지 아무튼 노매드 기질 다분한데 그러나 미래 일은 하늘만 알뿐.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