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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고 장난감 같은 장림포구

by 무량화


운치 있는 노을 배경으로 한 포구를 보려고 일부러 찾아온 사하구 장림동.

해 꼴깍 지고 어스름 저녁노을이 여운으로 부드러이 퍼지는 시각에 맞춰 당도한 장림포구다.

알록달록 무지갯빛으로 단장시킨 장림포구는 동화마을 같았다.

장난감 같아도 집 구실을 하는지 내부는 각기 조그만 가게들로 꾸며져 있었다.

찻집과 수제 기념품 가게며 떡볶기와 꼬치어묵 파는 집도 보였는데, 가게 옆으로 앉을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휴일인데도 아주 한산한 상가, 잠시 쉬며 따끈한 차라도 한잔 팔아주고 싶지만 그럴 짬이 없었다.

삼십 분 정도만 일찍 왔어도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으련만.

이미 사방에 어둠살 스며들며 갈 길 은근 재촉해 댔다.


큰 배가 드나드는 항구와 달리, 갯가 작은 마을 나루터에 배를 댈 수 있는 곳을 포구라 이른다.

포구는 어디나 너저분하고 누추하기 마련인데, 장림 마을 포구의 변신이야말로 놀랍고도 신통스럽다.

배 드나듦이 많다 보니 자연 포구 주변은 비린내가 배어 있으며 선박에서 새어나온 검은 기름이 둥둥 떠있거나 쓰레기가 널려있다.

장림포구 역시 낙동강이나 남해 어장에서 고기를 잡아들이는 어선들이 들고나는 곳.

접안한 배를 묶어둘 수 있는 bollard(배말뚝) 주변에는 플라스틱 부표와 어망이 어지러이 쌓여있었다

붉은 깃발 어지러이 꽂힌 낡은 동력선에는 어구가 잔뜩 실렸으며, 바닷가답게 먹거리 터에 어묵 가게만도 서너 곳 됐다.

따라서 부네치아라 불리건 말건 영락없는 갯가 포구 맞다.



운하의 도시 베네치아를 벤치마킹한 발상까지는 가상하나 지나친 견강부회다.

세계적 명소 이름을 차용하거나 베끼는 정도가 지나쳐 거품이 넘쳐나기로는 여기뿐만이 아니다.

부산의 베네치아라는 장림포구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마추픽추라는 감천문화마을에서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장림포구를 굳이 부네치아라 하면 젊은 층에 더 어필하며 어딘가 세련돼 보이고 고품격 티가 나는 걸까.

아파트 이름도 아니고 관광지조차 외제 이름이라야 폼 나고 미끄덩 버터 칠한 이름이어야 더 고급 져 보이기라도 하나?

해운대 달맞이고개나 영도 흰여울마을, 다대포의 고우니 생태길 같은 순우리말 명칭은 얼마나 정겨운가.

그럴싸하게 포장 잘 시켜놓고 작명에서 삐끗해 버린 소관부처인 문화관광과만 탓할 수도 없는 것이, 주민 다수가 원하는 바를 반영했을 테니까.


환기 자동으로 해결해 줄 풍차 화장실/실내 아기자기하게 꾸민 포토죤


귀갓길, 밤의 칠흑 어둠이 완전히 거리를 장악했다.

물에 얼비치는 야경 화려해 포구에서도 사진 몇 장 찍은 다음, 하천물과 바닷물을 가르는 댐 같은 양수장 조명빛도 담아뒀다.

장림포구 양수펌프장을 지나 장림 생태공원 좌측에 끼고 직진하는 동안, 갈대 우거진 하천 쪽 어둠 속에서 풀벌레 소리 때롱하게 들렸다.

하천 자체를 생태공원으로 가꾼 덕인지 풀숲에서 또로록 또로록... 귀뚜라미 깃 부딪는 소리 같은 게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부산에서 여러 해 살았지만 장림동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다.

8.90년대의 장림은 장림공단으로 불리며 대개들 도외시 내지는 백안시하던 지역이었다.

유해 공업약품을 쓴다는 화학공장이나 피혁 가공시설에서는 낙동강에 오폐수를 몰래 흘려보내다 발각되는 뉴스까지 심심찮게 났었다.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과 분진 소음 폐수 등의 공해로 심히 고통받기는 현지 주민들만 한정된 게 아니었다.

부산 시내까지 공해물질이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데다 남쪽 바다에서 해태 양식업 하던 일가는 삶의 터를 잃었으며 하구언은 어자원이 준 데다 심지어 기형 어종이 잡히는 등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 더 죽을 쑬 판이라고 아우성쳤었다.

마치 오늘날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물질로 한반도 전체가 막대한 폐해를 입듯, 이곳 역시 악명 높은 지역이었다.

공단이 산업단지로 바뀐 요즘은 좀 나아졌을까, 밤이라도 도처에 공장 건물과 굵직한 굴뚝이 높이 치솟은 걸 보니 전자동으로 궁금해진다.

어디나 사람 사는 동네에서는, 먹어야 산다를 증명이라도 하듯 갈비 굽는 냄새 진동하는 먹자골목 한참 지나서야 비로소 불빛 환한 큰길로 나올 수 있었다.

장림역이 있는 홈플러스, 그 아래로 내려가 1호선 지하철을 타고 귀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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