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게 올라온 구기자 순을 찻잎으로 만들어 보려고 따왔다.
올레길을 걷다가 온평마을에서 휘늘어진 구기자 줄기가 덤불 이룬 걸 보았다.
현무암 돌담을 뒤덮다시피 무성한 가지마다 겨자빛 눈엽 피어오를 적이었다.
서귀포에선 처음 본 구기자라 긴가민가 싶었다.
추자도에 갔을 때 구기자 발그레 익은 열매를 본 적이 있긴 하지만.
한 뼘쯤 되는 가지를 꺾어 배낭 포켓에 꽂았다
마을 주민을 만나면 확인해 볼 참으로.
한적한 골목에 강아지만 보일 뿐이더니 마을 끝에서 노친네를 만났다
할머니 혹시 이거 구기자 맞나요? 저 골목 입구 들어서다 봤는데 긴가민가 해서요.
구기자라 짐작된 가지를 꺼내 들고 물어봤더니 "용케 알아마씸, 맞수다" 고맙다는 인사 남기고 돌아서서 그 자리로 갔다.
아주 어린 순이라 한 끼 나물해 먹을 만큼만 훑어왔다.
유년기적 외갓집에서 구기자 순으로 만든 나물 반찬이 상에 올랐던 기억이 나 그렇게 한번 뜯어왔었다.
구기자나무 잎 중 봄에 뜯는 새순은 청정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파리를 데쳐서 무쳤더니 야들야들 달큰해서 입맛에도 맞았다.
반찬이지만 마치 보약을 먹는 기분이라 으쌰으쌰 막 기운이 돋는 거 같았다.
한약재에 들어가는 구기자 열매는 잘 알지만 잎새를 직접 나물해 먹기는 오랜만이라 성분과 효능부터 알아봤다.
구기엽은 비타민 C와 비타민 B 복합체인 베타인 함량이 높아 동맥경화나 고혈압 등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도 했다.
무기성분 중에는 칼슘과 철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골다공증 예방 및 피를 맑게 해 준다니 한층 솔깃해졌다.
구기자 정보엔 잎으로 녹차처럼 차도 만든다는 설명이 나와있어 일차 시도해 보기로 하였다.
그 이전, 주치의 격인 딸내미한테 전화로 자문을 구했다.
지난 코로나 때 면역에 좋대서 강황가루를 샀더랬는데 내 체질에 안 맞는 식품이란 조언을 듣고는 당장 멀찌감치 치웠던 터다.
바닷가 마을에서 구기자 덤불을 발견했거든, 새순이 막 올라오길래 뜯어다 나물해 먹었는데 잎차도 만들어 보려고.
원시인 자급자족 놀이하려는데 체질상 자주 먹어도 괜찮을지?
딸내미 왈, 제주도엔 별게 다 있네. 구기자는 누구에게나 이로워, 열매 잎 뿌리 줄기까지 다 쓸 수 있어.
그러면서 덧붙이길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 섭외 오겠네. 해서 한바탕 웃었다.
고로 안심하고 구기자 잎새를 넉넉히 따 가지고 왔다.
날씨가 더워지면 가지마다 진딧물이 성할 거라서 깨끗할 때 미리 이파리 확보해 엽차로 쓰려고.
그새 구기자 순 쑥쑥 올라와 야들거리는 햇잎이 큼직해졌다.
태생이 촌사람이라서 별의별 식물을 다 알아보는 이것도 복 중의 큰 축복.
실제 공터에 차를 대놓은 도시 관광객이나 현지인 어느 누구도 구기자 덤불을 눈여겨보고 잎새 따려 다가서는 사람은 없었다.
혼자 실실거리며 채취해 온 구기엽을 정하게 씻어 채반에 널은 다음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널어두고 사흘을 말렸다.
잎새가 지닌 수분 거의 날아가 후줄근해질 정도가 되자 기름기 없는 프라이팬에 올려 약한 불로 덖어줬다.
제다실에서 녹찻잎 만드는 과정을 본 적이 있는데 화기 은근한 가마솥에 넣고는 목장갑 낀 손으로 찻잎을 훌훌 저어가며 한참을 덖는 식이었다.
뜨건 불로 잽싸게 볶는 게 아니라 약한 불기운으로 은은히 거의 질릴 정도로 오래 잎새를 완전건조시키는 작업이라고나 할까.
맨손으로 뒤적거리며 덖어지는 구기엽은 산뜻하면서도 구수한 풀 내음 같은 향을 풀어냈다
완성된 찻잎을 넣고 구기엽차를 달였다.
쌉싸름한 녹차보다 오히려 차 맛 순하고 달달하면서 입안에 동그라미를 머금은 듯한 미묘한 느낌이 좋아 즐겨 마시게 됐다.
서귀포에 둥지 튼 덕에 수시로 바닷가 산책하며 파도의 위용을 접하고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해풍과 노니는 복만으로도 감지덕지, 과분한 하늘의 축복에 누차 감사드린 바다.
덤으로 돌미역에 톳에 방풍나물도 선물해 주는데 이번엔 불로장생 선인 인증에까지 거의 도달한 셈.
전설상에 나오는 하얀 수염의 신선은 깊은 산속 폭포 동굴 속에서 살지만 구기자나무 근처에서도 신선 나온다지 않던가.
구기자 잎의 엽록소는 간장 해독작용을 해주며 모세혈관 강화와 스트레스 완화 효과도 있다고 하였다.
특히 구기 탄닌이라는 구기의 잎에만 함유되어 있는 탄닌은 산화 환원작용(酸化還元作用)을 한다는 것.
제주살이 온 덕에 구기자와 친해졌으니 건강은 예약돼 있고 무병장수도 보장받은 셈. ^^
구기자는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영약으로 익히 알려진 식물로 강장 강정제로 쓰이는 대표적 약제의 하나이다.
인삼과 함께 옛날부터 한방약의 기본 약으로 대접받아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도 효능이 기재되어 있는 구기자다.
본초학 의서인 본초강목도 참고로 살펴봤다.
구기엽은 면역력을 높이며 노안의 예방은 물론 잡념을 없애주고 의지(志)를 굳게 하며 심기 (心氣)를 장(將) 하게 해 준다니 요즘같이 심란스러운 시국에 그야말로 딱이다.
장복하면 근골이 강해지며 몸을 가볍게 하여 늙지 않는다고 하니, 하얀 신선할망되면 구기자 덕인가 하노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