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주간의 페루 여행 마지막 날.
쿠스코에서 그날은 특별한 일정 없이 하루 종일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어떻게 그곳에서 멈춰 섰는지 모르겠다.
마치 누군가가 이끈 듯이 그 거리에 닿았고 우연히 발이 멎었다.
붉은 벽돌로 견고히 쌓아 올린 성채 같은 건물,
지붕 꼭대기를 올려다보니 십자가와 종각이 보였다.
약간 열려있는 육중한 문안에서 성가가 흘러나왔다.
La Merced 바실리카 성당, 12월 25일 정오미사 집전중이었다.
바실리카 이름이 붙은 성당은 대제단이 있고 특별권을 가졌으며 역사 오래되거나 성인과 관련 있는 주요 성당이다.
스페인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전례는 세계 어디서나 동일하기에 묵주 꺼내 성호를 그었다.
그 넓은 성당에 빈자리가 없어 한옆에 조용히 섰는데 고해소 나란히 위치한 바로 그 앞이었다.
아주 오래 고해성사를 못 봤다는 생각이 들자 고해를 바치고 싶다는 갈망과 함께 갑자기 주체할 수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한인 성당을 나가지 않은 다음부터이니 벌써 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미사 참례할 적마다 항상 갖는 이 참회 예절로 적당히 얼버무리며 땜질했다.
대림절과 사순절에는 의무적으로 고백성사를 보아야 하는데 그 또한, 평이한 일상이라 대죄 지은 거 없다 자위하고 넘어갔다.
성령의 도움으로 양심 성찰을 먼저 하고 내적인 참회를 거쳐 우리의 나약함을 극복하게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며 잘못을 고하는 시간이다.
오래 그 시간을 갖지 못해 때 타고 먼지 덧쌓인 영혼.
너그러운 구석 없이 뾰쪽한 성정 누그러들지 않아 순간의 화 참지 못하고 걸핏하면 비판해 대는 자신.
그로 인해 젊어부터 여태껏 아이들 신경 쓰게 했으면서 나이 든 지금이라고 나아졌는가.
금빛 눈부신 성전 안에서 마음 놓고, 아니 자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 한참을 흐느끼다가 겨우겨우 진정이 됐다.
하나의 빵을 쪼개어 나누는 성찬 예식에 앞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주위 교우들과 악수나 허그를 하며 Peace be with you~ 낯 모르는 이와도 인사를 하게 되는데
옆자리에 선 할아버지가 주춤하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토착 원주민인 듯 피부는 햇볕에 타 새카맣고 입성은 허름하다 못해 궂을 정도로 남루했다.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자 망설이다가 옷섶에 손을 문지르고는 손을 맞잡고 고개 깊이 숙이는 할아버지.
가난이 죄는 아닌데 마치 죄인처럼 쭈뼛거리는 노인네.
코끝 찡하도록 아린 심사를 그분 통해 보속으로 주시고자 함인가.
웬걸요, 제아무리 거죽 그럴싸 멀쩡해도 저의 내면은 소박한 할아버지에 비해 한결 때 묻어 추합니다.
저마다 자기의 앞길 계획하고 발걸음을 떼어놓지만
발길 인도하시고 결과를 이루시는 분은 하느님.
잠언에 나오는 말씀대로 성전으로 제 걸음 인도해 주신 영광의 하느님, 세세생생 찬미찬양받으소서.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