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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6. 2024

게티빌라는 고대 보물선

게티 빌라는 거대한 한 척의 고대 보물선 같았다.


말리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Pacific Coast Highway 옆 숲 속에 깃들어 있는 저택인 Getty Villa이나, 침몰한 보물선을 인양해 놓은 듯했다. 


석유 재벌 폴 게티는 유럽 문화에 깊은 관심과 애착을 보여 수많은 유물들을 컬렉션 했다.


1974년 오픈 당시는 게티 뮤지엄이었으나 1997년 게티 센터가 문을 열며 이곳은 게티 빌라로 불리게 되었다.


그 후 10여 년간의 전면적인 보수공사를 마친 2006년 그리스와 로마, 로마 이전의 고대 에트루리아 문화예술품만을 전시하는 뮤지엄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게티 빌라는 1200점에 달하는 고대 유럽의 문명국가 유물들을 소장, 교차 전시하고 있다.


서기 79년 베수비어스 화산 폭발로 매몰된 로마의 대저택 '발리 데이 파피리(Villa dei Papiri)'를 LA에 재현시킨 게티 빌라.


빌라 파피리는 로마 황제 줄리어스 시저의 아버지 저택으로 알려져 있다.


출입구로 올라가는 주진입로까지 고대 도로 모양을 그대로 복제, 불규칙한 판돌들로 포장되었다.


양편으로 긴 주랑이 달린 그리스풍 신전 양식 분위기인 웅장한 이층 본관은 뮤지엄이다,


그 외 고대 원형극장을 본뜬 노천극장과 로마시대 귀족 가정의 주방 뒤뜰을 연상케 하는 허브 정원도 있다.


작은 분수대가 있는 이스트 가든은 속닥하게 데이트 즐길만한 오붓한 장소이며 기둥 있는 포치로 둘러싸인 안뜰 정원인 이너 페리스타일(Inner peristyle)의 긴 분수대와 청동 조각상 하나같이 기품 있다.


대형 풀이 있는 바깥 페리스타일(Outer Peristyle)엔 투명히 찰랑거리는 물빛 더불어 탁 트인 전망이 매력을 더한다.


건물 2층엔 사방으로 발코니가 있어 각기 다른 뷰를 감상할 수 있으므로 이곳을 놓친다면 애석할 테고.


게티 빌라 전시실에는 BC 2500~150년 경 그리스 로마시대의 조각품과 도자기들이 방마다 즐비하게 쌓여 있다.

예술품만이 아니라 당대의 섬세한 장신구와 금화 등이 쟁여진 호화로운 보석함이기도 하였다.

두 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보다 집중적으로 작지만 색다른 유물들에 시선 모아 보기로 했다.

수천 년에 걸쳐 모든 인류가 특별하게 여겨온 귀금속인 금,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 중에도 황금이 포함돼 있었다.

여러 면으로 매력 넘치는 금을 좇아 모험 가득한 대항해시대가 열리기도 했으며

각국은 더 많은 금을 자국 수중에 넣으려 살육이 횡행하는 전쟁도 불사했으니

이 점, 운명적으로 금이 지닌 어두운 이면사겠다.

무엇보다 금은 금속 자체가 지닌 영구불변성으로, 유한한 생명을 무한대로 이어주는 영생과 연결 짓게 한다.

하여 파라오에서 중국 황실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티 나는 색채에다 귀한 가치로 해서

태양의 상징 곧 영예로운 왕권의 의미를 부여받았던 황금이다.​



반짝거리는 장신구를 만드는 사치재인가 하면, 실용적 측면에서도 전도성이 높고 부식과 변질이 없는 제재로 금을 따를만한 대체 물질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가장 현금화하기 쉬운 것이 바로 금으로, 금에 필적할 다른 안전 자산이 없기에  여전스레 귀한 패물이란 개념의 첫째 자리를 차지하는 게 금이다.

결국 희소성에다 환금성에 있어 금과 비교될만한 물질은 별로 없는 셈이다.

세계 역사를 살짝 훑어봐도 금 쟁탈을 위한 전쟁으로 한 국가가 위험 지경에 빠지는 일은 수없이 많았다.

지천인 황금 때문에 깡그리 사라지고 만 잉카제국처럼 국가 존망이 걸리기도 하는가 하면, 전 유럽을 침공해 들어간 히틀러는 승전보를 받자마자 중앙은행의 금부터 긁어모았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홀로코스트 영화에서 보았듯이 금니마저 눈독을 들였던 나치 제국은 유독 금에 대한 집착이 심했다.

대동아전쟁 초기 패권을 잡은 일제 역시 혈안이 되어 중국과 만주국은 물론
한반도의 금을 닥치는 대로 마구 수탈해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그래서인지 해안가 동네인 부산 초량, 감만동, 문현동 인근엔 금괴로 가득 찬 비밀동굴이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한 나라의 진정한 힘인 자주권 나아가 생존 자체를 한 손에 거머쥔 금의 위력.

현재 기축통화는 달러화이나, 금은 기원전부터 항구적으로 확실한 기축통화라고 보면 맞을 정도다.

가상화폐라는 것까지 등장한 요즘이지만
농경사회에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다가 한 단계 발전된 사회의 교환 수단으로 조개껍질이 통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수렵시대를 한참 지난 그리스에서는 이미 기원전 650년경 은화가 등장하였다.


이어서 로마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당시
금은본위제도가 시행되며 귀금속이 화폐 역할을 도맡기 시작했다.

이후 금본위제가 정착되면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운영하는 은행엔 항상 일정한 무게의 금괴를 비축하게 돼있다.

만일 현대 통화 질서가 붕괴될 경우 대체 사용될 화폐는 곧 금이 될 터이다.

이처럼 여전히 금의 가치는 세계적으로 신뢰도가 높을뿐더러 희소성 때문에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음이리라.

중세 시대부터 이미 지폐가 통용되기도 했다 하나 스페인이 아메리카 식민지로부터 긁어모은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바탕으로
16세기에 금화나 레알 은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화폐로 권위를 인정받음은 당연했다.

한편, 유럽 최초의 지폐는 1661년 스웨덴의 민간은행이 찍어낸 적도 있다 하나, 1694년에는 영국 정부가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하여 최초의 근대적 은행권을 발행하였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하신 부친의 유훈을 올곧게 새기며 살았던 고려 말 충신 최영 장군.

그분 외의 범속한 나를 비롯, 동서고금 거지반 모두는 알게 모르게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주의에 젖어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현대 산업사회의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병폐가 심화되면서 향락만을 추구하는 자기 본위 인간을 양산시켰고.


특히 한국 사회에 만연한, 비교 대상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보통 사람인 일반인 다수가 끝없는 불만족의 늪에 빠져 불평을 달고 사는 모양이다.

잣대를 어느 눈금에 맞추느냐에 따라 각 개인의 행, 불행이 결정되다시피
이 수위 조절을 적절히 함으로써만이 사회계층 간의 괴리감을 줄일 수 있을 터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요구되는 세 가지 금이 있다고 한다.

‘소금’ '황금' ‘지금’이 그것이다.

생명체가 절대 필요로 하는 소금이며, 제아무리 황금만능주의 세태라지만
세 가지 금 중에서도 으뜸으로 쳐야 할 것은 바로 ‘지금’이 아닐는지.

소중한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어떻게 영위해야 만족 스러이 복된 삶을 살았노라 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에 감사하려면 과도한 욕망에 끄달리지않도록 마음 다스리며 주어진 일상에 자족하는 수련을 쌓아야 할 듯.

두어 번 와봤던 게티 빌라는 언제든 여유 있게 다시 찾아 오랫동안 정원 거닐어보리라 다짐했던 곳이다.


전에는 거의 실내 전시실 위주였기에 이번엔 향기로운 허브 정원에서 힐링 타임을 갖기로 했다.


오른쪽으로 따라오며 푸르게 넘실대던 말리부 해변 뒤로하고 게티 빌라 숲길로 접어들었다.


주차장을 나오니 언덕으로 난 길가에 사슴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 내밀고 서서 환대해 주었다.


아침나절 집 앞에서 까치가 지저귀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했듯 사슴이 길가까지 나와 반겨주니 무언가 좋은 일이 기다릴 거 같아 미소 벙글며 기분이 다 몽롱해졌다.


총총걸음으로 출입구를 거쳐 곧장 엘리베이터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뮤지엄은 휘리릭 돌아보고 안과 밖 페리스타일에서 인증샷 날린 다음 허브 정원으로 향했다.


기승부리는 더위 식히라는 듯, 분수대 연못에는 빡빡한 수초 사이로 수련 함초롬 피어있었다.


지중해 식물들인 올리브며 석류, 레몬, 포도, 무화과 등 과목 무성했고 약제용과 요리에 쓰이는 각종 허브인 민트, 로즈메리, 바질, 실란트라에 월계수 잎 짙푸르렀다.


야로우란 허브 종류는 실 같은 이파리 아니면 덩어리 진 꽃에서 향미가 나는지는 잘 알지 못하나 암튼 식물마다 각각 명패를 단 덕에 이름만은 제대로 익혀 수인사 나눴다.


마른 꽃조차 소품 장식으로 너끈히 한몫하는 보라색 스타티스는 시나브로 꽃이 이울고 있었다.


느긋하게 한나절 책 펴 들고 포도나무 시렁이 만든 그늘 벤치에 앉아있고 싶지만 기웃해지는 시간에 밀려 아쉽게 돌아선 게티 빌라.


꿈도 야무치지, 내 집이라면 좋겠다는 생각 홀연 스멀거리며 피어오르기에 욕심부눌러앉혔다.


게티 빌라 쥔장이 누린 한때의 부귀영화에 잠깐 시샘 느꼈던 자신에게, 심신 건강해서

찬란한 별천지를 이렇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것만도 어디냐고 넌지시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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