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말을 하나?
귀가 자꾸 근질거렸다.
귀이개로 귀를 후볐으나 귀지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인가 시원하게 귀지 나올 때까지 귀이개질을 했지만 눈으로 확인된 귀지는 거의 없었다.
아마도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귓속을 마구 후볐지 싶다.
이튿날 귓속에서 이상한 감이 느껴졌다.
새끼손가락을 넣어보니 물기가 묻어 나왔다.
어럽쇼, 이런 희한한 일이 다 생기다니?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변고라서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얼른 안경 찾아 끼고 티슈에 묻은 물기의 색을 확인도 하며 냄새부터 맡아봤다.
무색무취의 맑은 물이었다.
평상시 면봉 사용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어쩌다 가끔 귀이개를 쓸 뿐 귓속 관리를 유다르게 한 적이 없다.
이어폰 사용 자체도 싫어한다.
물론 귓병 같은 걸 앓은 적도 없을뿐더러 가족이건 주변에서건 귀앓이 하는 걸 한번도 본 바 없으니 일단 인터넷 검색에 들어갔다.
여러 내용을 종합해 본 결과 중이염 증세 같았고 며칠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진다는 말에 솔깃해졌다.
사실, 잠시 한 번 이상 징후를 보였을 뿐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귀로만 신경이 쓰이는 게 기분이 영 찝찝했다.
자칫 소홀히 관리하면 만성중이염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대목이 께름칙하게 걸리기도 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괜히 귀가 근질대는 듯도 한데, 낮에는 전혀 아무렇지 않게 잘만 쏘다녔다.
등꽃 기별이 있나 궁금해 범어사 올라간 김에 슬그머니 약사전 들러 '제 귀가 이상해요' 하소연하고 내려왔다.
며칠 지나도록 별다른 기미는 보이진 않았지만 주말에 딸내미 전화가 왔길래 귀 얘길 털어놓았다.
이런 경우 한방으로 집에서 다스릴 묘안이라도 있는가 하고.
딸내미는 어물대지 말고 이비인후과 찾아가 확실한 진단부터 받으라 했다.
하도 단호하게 잘라 말하니 딴소리 싱겁게 붙여볼 여지가 없었다.
이튿날, 공공의료기관인 부산의료원을 찾았다.
정확한 진단 통한 양질의 치료를 위해 첨단 의료장비를 갖춘 병원, 부산대학병원과 협진체제라 대학병원 수준의 진료를 하는 곳이다.
일단 가깝고, 몇 해 전 우연히 코로나 검체 검진을 받았던 곳이라 낯설지 않은 데다 여러모로 의료의 질에 있어 확고한 믿음이 가기에 찾아갔다.
전에도 모든 절차를 친절하게 도와줬으며 검사 결과 기다리는 동안의 애태우는 심정 배려해 준 의료진도 무진 고마웠던 터다.
새벽같이 전화해 음성 결과를 일초라도 빨리 전해준 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신뢰가 쌓인 부산의료원이기에 찜찜한 귀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해 줄 거 같았다.
원무과에 들러 접수하고 이층에 있는 이비인후과로 올라갔다.
반가의 도련님 같은 박성수 선생님은 증상을 듣고 난 다음 자리를 바꿔 귀 내시경 검사를 시작했다.
여러 기계와 연결된 의자에 앉자 의사분이 앞 모니터를 주시하라고 해서 난생처음으로 외이도 구경을 했다.
크게 확대된 귓속은 매끄러운 연분홍 대리석 동굴같이 신비로웠다.
콧속에 코털이 있듯 짧은 터럭이 동굴 주위에 돋아있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먼지를 걸러주는 역할을 하지 싶었다.
귀이개질로 약하게 난 상처가 아물어가는 흔적이 있을 뿐 귓속은 대체로 깨끗했다.
별문제 될 게 없는데요.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별도의 처방 없이 툭툭 털고 일어났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 말이 어찌나 고마운지 연거푸 감사합니다, 되뇌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침 같은 층에 안과가 배치돼 있기에, 이참에 노인성 백내장과 황반 변성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근자 절친이 백내장 수술 후 인공수정체 삽입을 한 데다 익상편 제거 수술을 받고 한 달 넘어 고생하는 걸 봐서 겁이 났던 터.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느라 한 시간 넘게 꽤 한참이 소요됐는데 결과는 나이에 비해 모두 다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고 했다.
박건형 선생님으로부터 종합적인 검사 소견을 듣고는 야호! 외치기라도 할 듯 아이처럼 기뻤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지 않던가.
그만큼 중요한 눈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강한 캘리포니아 햇살에 시달렸고 컴퓨터로 혹사당한 눈이라 은근 걱정이 됐는데 이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곧장 아들과 딸내미에게 신이 나서 굿뉴스를 타전했다.
안과 검사는 계획에 없던 일로, 생각사록 이비인후과 선택을 의료원으로 결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화된 전문 의료진 우수하고 과다 치료비 책정에 있어 안심할 수 있는 100% 믿을만한 종합병원이기 때문이다.
의사 부인이라 의료계 실정 훤한 친구인데도 개인 안과에서 비급여인 다초점 렌즈를 넣으며 오백이 훨씬 넘는 병원비를 냈다고 들었다.
부산의료원은 문턱도 낮지만 모두에게 문도 활짝 열려있으며 바로 병원 문 앞까지 모시는 셔틀버스도 운행된다.
자차로 이동하는 경우와 달리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병원까지 이어주는 셔틀이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
연산 로터리에서 지하철을 내려 16번 출구로 나와서 500미터 정도 직진하면 의료원행 무료 셔틀이 기다려준다.
셔틀은 연산역만이 아니라 종합운동장 역에서도 매시간 세 차례씩 운행되고 있어 오가는 교통불편을 덜어준다.
무엇보다 종합병원이지만 오성급 호텔처럼 깨끗한 최신 건물이 숲에 싸안겨 환경이 쾌적하며 주차장도 아주 너르다.
이처럼 주위 모든 여건이 잘 갖춰져 있어, 병원에 들어서면 환우들이 갖게 되는 불안감 대신 우선 심적 안정감을 얻게 된다.
역사 쪽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나만 별나게 연륜 중시하는 걸까.
부산의료원은 특별하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타이틀을 지닌 병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다.
1876년 고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관립 제생의원’으로 개원, 근 160년이 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병원이다.
통상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라면 서울 제중원(광혜원)이 서양 의술을 처음 펼친 곳으로 나온다.
저간의 사연인즉, 갑신정변 당시 부상 입은 명성왕후의 조카 민영익을 미국 의사 알렌이 외과술로 치료해 주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1885년에 홍영식의 집에 왕명으로 설립한 제중원을 한국 최초의 병원이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 왕실에서 만든 경성의 제중원보다 부산이, 병원만은 9년이나 앞섰음을 부산부 역사 편찬 자료가 확인해 준다.
이는 진료를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수납처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일층 코너에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은 부산의료원 연혁을 훑어보다 알게 된 내용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접목된 경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일본이 대륙 침략의 거점인 부산포에 자국 거류민의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을 만들게 된 경로가 있다.
인구 1만쯤의 부산포가 일본과 잦은 교류를 갖게 되면서 현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필요했던 것.
또 다른 하나는 선교활동을 위해 미국 북장로회로부터 의술이 유입된 케이스다.
그처럼 경성의 광혜원은 구한말 격동 속에 벌어진 큰 정변으로 인해 미국 의사에 의한 서양식 병원이 들어섰던 것.
같은 해 입국한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는 세브란스 병원을 세우는데 이는 세브란스 의학대학의 전신이 된다.
우리는 그 누가 뭐래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 하나 일본은 죽도라 칭하는 거나 마찬가지 논리다.
1876년 11월 13일에 문을 연, 일본 해군과 육군에 의해 운영되던 관립 제생병원이 바로 서양의료의 효시로 부산의료원 전신이다.
그럼에도 아홉 해 뒤에 설립된 제중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라고 못 박는다.
일본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치욕스러워서일까.
아마도 훗날 식민지 백성이 된 입장 자체가 굴욕적으로 여겨져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어물쩍 둘러쳐 덮어버린다는 것은 이 또한 옳지 않다.
일찍이 개원한 제생병원은 일본에서 최신 의료 기구와 약품을 조달받았던 게 사실이다.
1879년 가을에 지석영은 제생병원에서 일본인 의사로부터 우두법을 처음 익혔다고 한다.
이때부터 매달 15일을 우두 접종일로 정해 놓았을 정도로, 앞서서 서양 의술을 대중화시키고 선도한 사실도 맞다.
경성에 제중원이 만들어진 1885년 시월부터는, 제생병원이 거류민 자금으로 운영되며 명칭도 부산공립병원이 되었다.
1914년에는 부산부립병원(釜山府立病院)으로 개칭하면서 현 아미동 1가 10번지 부산대학병원 자리로 옮겨졌다.
해방 전까지 대마도에 거주하는 일인들이 부산으로 진료받으러 올 정도의 고급 의술을 베풀었던 부산부립병원.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부산부립병원은 1947년 부산시립병원, 1950년 한국동란 때는 육군병원으로 사용하였다.
그 뒤 대통령령으로 부산의과대학이 서고 부속병원이 거기서 개원되자 시립병원은 따로 나와 다른 장소로 병원을 옮겼다.
1982년 지방공사 부산의료원으로 개칭되었고 2001년 12월 연제구 거제동으로 현대식 건물을 신축 이전해 오늘에 이르렀다.
2차 의료급여기관이며 부설 노인전문병원을 뒀다.
현재 21개 진료과에 500 병상을 가진 의료기관으로서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로 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돕는 부산의료원이다.
병원과 친해지는 게 반가울 리 있으랴만 나이 들수록 점차 낡아가는 배, 도크에 드는 일이 아주 없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