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광원을 품은 약천사

by 무량화


대포동에 위치한 약천사는 서귀포 푸른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에 자리 잡았다.


게다가 거대한 규모의 법당과 종각 자태 웅장하고 위엄차다.


대웅전격인 대적광전, 현무암 동굴 안에 차려진 굴 법당, 삼성각, 사리탑, 오백나한전 등이 하귤나무와 조화롭게 배치돼 있는 약천사다.

사찰이고 성당이고 교회당 등 종교 시설물이 어마어마하다 못해 무작스러운 규모로 대형화 추세, 이 점 모두들 두 손 높이 치켜들고 환호할까?

거룩한 신의 이름 팔아가며 종교를 오염시키는 행위라고 크게 꾸짖은 마태복음 말씀처럼 일찍이 성전 정화에 대해 설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양 최대 규모라는 법당이 주는 위풍당당한 이미지를 그나마 약간은 희석시켜 주는 건 겸손한 단청 빛깔이었다.


특히 큰 도로에서 걸어 내려오다 만난, 중증장애인요양시설인 ‘자광원’을 통해 약천사가 새로 보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소속으로 도내 사찰로는 처음 장애인시설을 운영하는 약천사다.


사람들을 질병의 고통에서 구원하는 원력을 지닌 약사여래불의 높고 깊은 서원을 펼쳐나가는 도량이라니 얼마나 미쁜가.


부처님의 동체대비사상을 바탕으로 소외당한 중증장애인을 보듬은 자광원.


유마경에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라고 문수보살이 말씀하였듯 뭇 생명이 아프면 보살심 역시 쩌르르 아프다.


나와 남은 둘이 아니라 하나,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동체대비 정신으로 자광원을 운영하는 약천사.


약천사는 원뜻 그대로 약수처럼 샘솟는 자비행을 실천하는 포교원이었다.


여기에 서귀포시에서는 자연치료정원을 조성하여 원생들이 이 녹지공간에서 심신을 단련할 수 있게 도왔다.


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가 샘솟는다는 물줄기 흘러내린대서 藥泉寺인데 아픈 이 고쳐주는 천사, 그냥 하늘(天)이 보낸 사자(使)인 에인절이 임했다는 생각도.



맨 처음 도반과 찾았을 때 약천사는 새파란 동천 아래 노란색 하귤이 풍선처럼 풍성하게 두둥실 떠 있었다.

그랬다.

하귤은 나무에 활짝 핀 또 다른 꽃송이, 희고 노란 Blossom이었다.

과일이 꽃이 될 수도 있다니 그 정경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더구나 하귤은 이름대로 여름귤이라 귤꽃이 필 때까지도 당연히 매달려있다고 했다.

새 열매를 맺기 위한 꽃이 피어남에도 묵은 귤이 정정하게 달려있다니, 그 진기한 풍경을 보러 와야지 별렀던 터다.

초파일 봉축 날이 열이틀 앞으로 다가온 약천사에는 울긋불긋 꽃등이 내걸리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와서 눈에 설은 게 사찰의 건축 형태였다.

우리네 전통 불교건축 양식이 아니라 중국풍이 듯, 왜색이듯 지붕선도 낯설고 심지어 단청 대신 검으칙칙하게 칠한 절도 있었다.

그래도 약천사는 전체적인 느낌이 제주에서 몇 안 되는 고유의 한국절다운 분위기를 보여줘 반갑기까지 했다.

조계종단 소속의 대구 은해사 말사라는 점도 친근감이 들었다.

70년대 대구에 살며 팔공산 인근 산사 순례를 다닌, 한때 신실한 불자였기에 조촐한 은해사도 자주 찾았던 터.

지금은 어찌 변했는지 모르나 당시 동화사와 더불어 팔공산의 대표적 고찰이 은해사였다.



유럽에서는 중세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당이나 교회

들이 빈건물되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다.


실제 스페인에서 카미노 길을 걸으며 마주쳤듯, 마을마다 폐가로 삭아가는 로마네스크식, 고딕식, 르네상스식 장엄 건축물들이 즐비했다.


갈수록 대형화되어 가고 지나치게 외형을 꾸미는 으리으리한 종교시설물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머잖아 관광 대상물이나 되지 않을까 싶은 우려감.


일찌기 고즈넉한 절집이었던 수덕사, 무작정 거창해지고 반드르르해진 변모에 대실망을 하고 말았기에 하는 말이다.

현대화되어 좋은 것이 있는 반면 옛 그대로를 잘 보존하는 게 백배 나은 것도 있다.



약천사 경내를 벗어난 절 초입에 높이 솟은 기념탑에 대해 짧게 첨언해야겠다.

이 탑은 '태평양전쟁 희생자 위령탑'이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 선대들은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의 총알받이로 강제 동원되었다.

군인 군속 노무자 정신대로 끌려가 이름 모를 낯선 타국 전선에서 유명을 달리한 조선인들.

국권을 잃는 등 국가가 무능해 제 백성을 지켜주지 못하자 이리 억울한 꼴을 당했다.

나라가 약체가 되면 이웃한 강국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러시아의 무력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삼 년여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육이오 세대의 기우일 수도 있고 나이 든 이의 지나친 노파심일 수도 있으나 항차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라고 이 일이 강 건너 불일 수 있을까.

단순한 풍치 위주의 즐기는 관광에서 진일보한 다크 투어리즘이 때마침 각광받는 여행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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