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배인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지요.
이럴 땐 태생이 촌사람인 걸 은근 뻐기고 싶어진다니까요.
어린 생질 무등 태워 봄이면 오디를 따주고
여름 숲 으름덩굴에서 으름을 따주시던 외삼촌.
귀한 거니 어서 먹어~'하면서 쏘옥 입에 넣어준
으름 열매를 어릴 때 몇 번 맛봤었지요.
방앗간을 운영하던 외삼촌 네는 늦도록 후사가 없었는데 외숙모가 엄마한테 어지간히 졸랐지요.
그러나 딸만 둘 뿐인 엄마라 오라버니 댁에 절 아주 보낼 수는 없었답니다.
집에서 학교 다니면서도 그 대신 저는 토요일 수업만 끝나면 외갓집으로 달려갔지요.
당시 버스도 하루 한 차례만 다니는 시골인 외가라 삼십 리 되는 길 힘든 줄 모르고 어린 꼬맹이가 학교 언니들 따라 걸어 다녀서 지금도 걷기라면 자신이 있는 건가 봐요.
그렇게 타박타박 산길 들길 걸어가며 외가 동네 언니들이 알려준 덕에 자연학습을 제법 많이 한 셈이지요.
어떤 논배미에 우렁이 사는지, 어느 계곡에 가재가 숨었는지도 그때 익혔구요.
야산 언덕배기 뽀루수 열매, 성황당 모퉁이의 망개 열매가 언제 익는지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지요.
마을 동구에 선 팽나무 야문 열매는 고무총 탄알로 쓰이고 소나무 송진은 풋보리랑 씹어서 껌을 만든다는 것도요.
며칠 전 바닷가 언덕을 지나는데 달큼하면서도 화하게 풍기는 향에 이끌려 둘러보니 오, 먼 기억 속 그래도 낯설지 않은 으름꽃이 피었더라구요.
자랑삼아 으름꽃 사진을 아들한테 카톡으로 보내줬더니 내심 눈여겨봤던지 엊그제 남도 쪽 오봉산으로 산행 가서 그 꽃을 만났다며 맨 꼭대기 저 사진을 전송했더군요.
이파리도 참하지만 덩굴성 식물이라 촌에서 일용품인 바구니 짜는데 쓰이기도 하는 으름덩굴인데요.
사진 속 으름덩굴 휘늘어진 곡선은 보다시피 인위적으로 연출해 낼 수 없는 순수 자연미의 극치 아닌가요.
순간, 80년대 말에 쓴 글 하나가 거기 겹치더라구요.
산은 저 혼자일 때 아름답다란 제하의 글인데 훼손되는 자연환경에 대한 안타까운 우려심을 피력했지요.
서두는 이렇게 시작됐지요.
"꽃꽂이 교실에 잠시 나간 적이 있다. 자연 본래의 아름다움을 일상 가까이 청해 오는 작업인 꽃꽂이.
이는 소재 자체가 지닌 조형미를 살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창조해내는 예술이라고도 한다. 선과 공간의 미적 구성은 자연의 창작품이었으니 그리하여 꽃꽂이는 단순한 기교에서 예술로까지 승화되었다. 과감히 생략시키는 절제된 미는 강한 긴장감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꽃꽂이에 대한 나의 환멸은 엉뚱한 데서 왔다. TV 화면에 비친 남해 무인도 동백 숲이 기계충 흔적처럼 얼룩졌는데 동백나무가 대거 잘려나간 자국이었다. 이어지는 화면에는 강원도 오지의 밀밀한 숲 속 으름덩굴이 마구잡이로 끊긴 게 잡혔다. 손가락 한마디만큼의 직경이라면 적잖은 연륜이다. 수세(樹歲) 오래된 가지일수록 곡선미가 좋아 선호하는 법. 꽃꽂이 부제로 도회에 간 그들은 며칠간의 호사 끝에 한 생애 막을 내린다, 전혀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이후 우연히 바닷가 언덕에서 아주 오랜만에 조우하게 된 으름꽃입니다.
으름꽃은 필랑 말랑, 봉오리가 버블 껌처럼 부풀어 있었어요.
봉오리 연 으름꽃은 달큰히 퍼지는 특유의 향기로 제 위치를 알리는 데요.
향이 좋아 옛사람들이 향낭에 넣어가지고 다녔다는데 열매는 머리를 맑게 한대서 예지자라고 한답니다.
실제 꽃 향기야 몽환적이지만 열매에서도 향이?
아마도 침샘이 먼저 반응, 연한 알맹이 어서 입에 넣으려 서두느라 열매에서 향이 나는 줄은 미처 느끼지 못했나 봐요.
가느다란 으름줄기라 소형 바나나 같은 열매를 매달고 버티기엔 약체, 그래서 지들끼리 꼬이거나 옆 나무에 슬쩍 얽혀 키 돋구는 덩굴식물이지요.
이리저리 자유분방하게 영역 넓혀가며 무성히 벋어나가는 으름덩굴에서 저마다의 힘찬 생명력을 느껴 내심 성원 보내게 되구요.
동시에 만수산 드렁칡처럼 뒤엉켜진 으름덩굴을 보며 해풍 속에서 하여가와 단심가까지로 생각이 무궁 이어졌답니다.
바짝 찍어서 그렇지 뽀루수꽃(보리수나무꽃)은
아주 작디작아요.
게다가 꽃 색깔도 연미색이라 아는 사람이나 알고 들여다볼까 대부분 꽃 핀 줄도 모를 정도예요.
총총 달린 꽃이 지면 꽃자루에 길둥근 열매가 매달리는데요.
여름이면 붉게 익어 떫지만 달큼한 맛에 열매를 한주먹씩 따서 먹기도 했지요,
잎새와 열매 표면에 흰 점이 무수히 찍혀있는데 속에 든 씨가 보리와 닮았대서 보리수라 한대요.
충청도에선 뽀루수라고 불렀는데 정식명은
뜰 보리수나무 열매로 과육이 무르고 맛은 달콤 시금털털하지요.
어릴 적 이웃 적산가옥에 사는 친구네 뜨락에 이 나무가 있어서 소쿠리 가득 열매를 따서 다다미에 앉아 먹던 기억.
그래선지 친구 승옥이는 왜뽀루수라고 불렀는데 그때도 산에 자생하는 산뽀루수나무도 있었어요.
여름철 무성해진 숲에 가면 더러 그 나무가 보였고 열매는 작으면서도 동그란 편으로 맛은 훨씬 달았어요.
요즘엔 웰빙 바람을 타고 기관지에 좋다 해서 뽀루수가 환영받는다는데요.
몇 년 전 여름 정선 장날에 보리수 열매를 만나 반가워 다가섰더니 작은 컵에 오천 원씩이나 하기에 안 샀네요.
몇 톨이나 들었다고 그리 비싼지, 순간 퍼뜩 제철되면 한 바구니씩 따다 주던 수잔나 씨네 체리 생각이 나더군요.
도톰해진 송화가 어느새 꽃가루를 날리고 있더라구요.
바닷가 해송이라서인지 솔잎도 길고 굵은 데다 송화도 탐스럽더군요.
어제 내린 비로 웅덩이에 고인 물가 빙 둘러 노란 테가 둘러쳐져 있었는데요.
벌써 송홧가루가 날아왔던 거지요.
또다시 생각난 대로 87년도에 쓴 <송화를 찾아서> 글을 꺼내 일부 옮깁니다.
"장식장 선반이 보얗게 보였다. 웬 먼지인가 싶어 손끝으로 찍어내자 노란 가루가 묻어났다. 그건 송홧가루였다. 이맘때면 늘 뻐꾸기 소리를 듣곤 했는데 아직 그 애조 띤 계면조 가락을 듣진 못했다. 뻐꾸기는 오지 않았어도 철이 되니 뒷산 솔숲에선 노르스름 은은한 송과 향이 묻어왔다.
이슬 머금은 텃밭 완두콩 오목한 잎새에도 송화가 고여있는 걸 새벽에 보았다. 갑자기 송림에 숨겨진 옹달샘이 보고 싶어졌다. 그 샘물 언저리에 마블링처럼 떠있을 송화가 보고 싶었다. 서둘러 범어사행 버스를 타고 금정산을 올랐다.
숲은 온통 빗살 무늬져 내리는 햇빛 어룽거리며 신비경을 펼쳤고 자색 안개까지 피워 올렸다. 그 숲 어디선가 꾀꼬리가 맑고 고운 소리로 노래했다.
어느 골짜기에선 목쉰듯한 꿩 소리가 들려왔다.
산 정상 가까이 계명암이 자리했고 약수터도 있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송화는 보이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신록이 좋다고 내도록 낙엽활엽관목수 숲만 휘돌아 다녔기에 소나무도 송화도 없었던 것.
신선한 산림욕만으로 만족하고는 산을 내려왔다.
집에 돌아와 피곤한 발에 물을 끼얹다가 물통에 너르게 뜬 노랗고도 향기로운 송홧가루를 게서 만났다."
세상에나, 이 섬엔 별의별 게 다 있네요.
먼 데까지 안 가고 동네 구석구석 쏘다니다 보니 구기자 꽃이랑 창포꽃이며 상사화 어디서 언제 필지 알게 됐어요.
자귀나무 꽃도 이파리 나오는 거 보고 이미 다, 순번대로 철철이 볼거리들 찜해놓았네요.
언덕길 숲 속에 힘을 솟게 한다는 복분자 열매로 알려진 산딸기나무가 덤불을 이뤘던데요
산딸기 꽃이 피었다 지고 난 꽃자리에 붉고 탐스러운 산딸기 풍성하게 열리겠지요.
가든 스테이트 뉴저지 전원생활 이후 간만에 만난 산딸기나무.
이러니 눈이 보배고 아는 게 힘, 하얀 꽃만으로 산딸기인 줄 알아보는 촌사람 또다시 환호했네요.
천연 청정 먹거리 지천이니 올여름 자급자족 자연인 잔치 놀이 다수 예약됐답니다.
이번엔 망개꽃인데요.
노루처럼 숲을 헤맨 것도 아닌데 늘 다니던 언덕길 벼랑에 망개 덩굴이 보이데요.
망개 덩굴에도 연두색 꽃이 조랑조랑 매달렸더라구요.
망개가 뭐냐면 표준어로는 청미래덩굴이라 하는데요.
매끄러운 덩굴에 난 센 가시가 예리해 접근하기 어려운 망개는 명감나무라고도 하더라구요.
알기 쉽기로는 망개떡, 두터운 잎새 두 장으로 감싸서 찐 떡을 생각하면 쉬이 감 잡힐랑가요.
동그랗고 파란 풋열매는 떫기만 한데 가을철 붉어진 열매는 속 알맹이가 제법 달착지근하지요.
늦가을부터 겨우내 유독 윤기 나는 빨간 열매 자랑하는 망개 열매는 꽃꽂이하는데 자주 쓰이구요.
예전에 토끼몰이하면서 산등성이 달리다 보면 하얀 눈 속에서 눈에 확 띄던 새빨간 망개 열매.
망개 역시 아주 오랜 후라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갑고 기쁘네요.
강한 해풍에 쉼 없이 하늘대는 꽃들이라 사진 찍으려면 한참을 벼뤄야 했어요.
이러느라, 서로를 경계 긋고 분열 반목 일삼는 어수선한 누항사 잊어버리고 날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손 모을 수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