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진 자리 열매 맺히고

by 무량화

꽃이 져야 열매 달리고 씨앗 맺힌다.

화양연화라 했던가, 한때의 빛나는 영화와 작별해야만 결실 혹은 추억을 얻는다.

낙화는 그래서 비감스럽지만 눈부시게 찬란하다.

겨울눈(冬芽)에게 자리를 내주는 낙엽이 그러하듯 꽃은 소임 다하면 기꺼이 자리에서 물러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님의 시처럼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고 겹벚꽃 이파리 하염없이 지는 봄날.

봄날이 가면 신록 숲에 이어 성하의 여름이 오느니.

역할 넘기고 이제는 뒤로 물러나 견실해지는 열매 지켜봐야 하느니.

그렇다고 가고 있는 우리의 봄날이 영 아쉽지 않을 리야.......

살구
매화/매실
앵두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 만이랴.

여기에도 작지만 이리 아름다운 부활이 준비되어 있었구나.

꽃 진 자리마다 알뜰한 열매를, 실한 씨앗을 저마다 뭏고 있지 않은가.

연보라 무 장다리꽃은 무씨를, 노란 배추 장다리꽃은 배추씨를 오달지게 품었다.

뒤뜰 아기 복숭아 솜털이 보얗고 탱글탱글 자두는 대추만 하게 자랐다.

봄날은 가안다~고 길게 노랫가락 늘여가며 청승을 떨었는데 정작 가는 봄은 이리도 소중한 선물을 놓고 갔으니..


유채
자운영꽃
냉이

허락된 짧은 한 뉘 기꺼이 순명, 호르르 꽃잎 날리면 아름차게 씨앗 갈무릴 줄 알았구나.


벌나비 날아들어 종일토록 꽃잔치 벌이더니만 이렇듯 실팍진 결실을 맺어두고 떠난 봄.


그렇듯 나비떼 모여드는 유채꽃이 호랑나비 아니 온다고 시샘 부리지 않았다.


호랑나비 쉬다가는 엉겅퀴꽃이 벌나비 날아들지 않는다고 투정하지 않았고,


엉겅퀴는 엉겅퀴대로 유채꽃은 유채꽃대로 주어진 삶의 몫에 공손히 머리 조아린다.


하여 꽃 지는 것을 아쉬워할 이유가 없었구나.


가는 봄을 안타까워할 까닭도 없었구나.


죽어야 사는 이치가 곧 부활 아니었던가.


민들레
산딸기
등꽃 주렴처럼
겹벚꽃

봄꽃들을 올해는 아주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급류에 휩쓸리듯 공연히 바쁘게 겅중대던 내 시력은 늘 원시였다.

멀리 있는 물체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원시안처럼 그래서 늘 먼데 펼쳐진 원경만 희롱했다.

올해는 시력을 근시안으로 자동조절해 놓고 지냈다.

일상의 평화를 깨어버린 괴이쩍은 계엄과 탄핵이란 단어가 세상을 장악해서이다.

암튼지간, 가까운 데 있는 물체가 자세하게 보이니 그 또한 새로운 개안.


작은 꽃잎이며 꽃받침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해마다 차례대로 피어나는 봄꽃들인데 올핸 봄한파에 주춤거리다가 성급하게 한꺼번에 화다닥 피다시피 했다.

매화야? 살구꽃이야?

외갓집 감나무 옆에 무더기 진 앵두나무 이른 봄 피어나던 그 꽃은 다닥다닥 촘촘히 붙어 피지만 이파리가 좀 엉성했다.

반면 살구꽃이나 매화는 꽃잎 단정하고 얌전한데 다만 구분되는 게 꽃받침,

꽃송이에 꽃받침이 딱 붙어있으면 매화요 뒤로 젖혀졌으면 살구꽃.

다 같이 잎새보다 꽃이 먼저 피며 꽃잎은 다섯 장에 꽃술 비슷하나 벚꽃은 꽃자루가 길어서 대뜸 표가 난다.

산수유 꽃망울 열리자마자 두서없이 매화 살구꽃 버들잎까지 피더니만 벚꽃 어느새 난분분 휘날렸다.

오월에나 피는 진달래며 등꽃 벌써 주렴처럼 피어났다는 소식 들리더니만 화급히 노랑붓꽃 양귀비꽃도 피었다.



겨울부터 봄 내내 샛노랗던 유채꽃만이 아니라 찬바람 가시지 않은 아주 이른 봄에 피는 민들레꽃 냉이꽃 봄까지꽃 쇠별꽃에 유달리도 바짝 다가앉아 본 올봄이다.

작디작다고 제쳐놓지 않고 나름 공들여서 사진에 담아보기도 했었다.

물론 폰으로 찍는 사진이라 한계가 있어 섬세한 솜털까지야 어림없을지라도.

그래도 두 다리 삼각대처럼 굳건히 지탱하고 더러는 바짝 자세 낮춰 찍어 본 사진들.


외가 마을에서 본, 모내기 전의 빈 논 가득 메웠던 자운영 꽃빛 아직도 연연이 간직되어 있다.


추억의 뜨락에 내려서면 불현듯 다가와 안기는 풍경들이라 더 아름다운지도.


잡초라 불리며 산에 들에 핀 풀꽃, 아주 낮게 땅에 엎드린 작디작은 꽃들.


꽃다이 화려하긴커녕 수수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로 소박하다.


풀숲에 숨어 홀로 피었다 지는 야생화는 눈여겨보아야 겨우 보인다.


발길 멈춰 키 낮추고 무릎 꿇어 자세히 봐야 보인다.


찬찬히 뜯어보니 저마다 귀엽고도 어여쁘다.


고 작은 꽃이 꽃받침 꽃술 꽃잎 야물딱지게 갖출 건 다 갖췄다.


대충대충 허투루 살지 않겠다는 진지함이 대견스럽고 기특하다.


박토에 내린 뿌리 때론 허기지고 갈증 나도 뾰로통 토라져 불평한 적 없다.


안개 머물다 가도 고마워하고 나부끼는 바람결에도 감사하는 표정 역력하다.



위 꽃은 언제부터 발음하기조차 상스러운 이름으로 불렸는지 모르나 원래는 봄까지꽃이다.

봄까치꽃이라 이해인 님이 시로 읊은 다음부터 강가 얼음 풀리듯 마음도 풀리는 '봄'에다 반가운 소식 물어오는 까치까지 곁들인 그 이름으로 자리매김된 듯하나 원래는 봄까지꽃.


연두 덤불 소복한 새새에 핀 파란 별 같은 꽃은 본이름대로 실제 '봄까지'만 피는 꽃이란 걸, 이 봄 확인할 수 있었다.


반소매 옷차림이 나오면서 푸른 별의 영혼같은 이 꽃이 슬그머니 잦아들어 버렸다.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흔하디 흔한 꽃이 사월 말에 이르자 일부러 찾아봐도 자취 영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망원렌즈로 찍은 아들 친구 사진과 비교하면 평면적인 내 사진이 그만 초라해지지만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꽃과 눈맞춤하는 순간마다 숨죽인 채 열락에 빠지곤 했으니 그만으로도 이 봄 충만한 행복을 누렸으니까.​


경제학자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봄 내내 잦았던 바깥 나들이길, 언뜻언뜻 스쳐 지난 봄꽃들로 행복했다.


축제 같은 봄날 지나 하르르 낙화한 뒤 옹골차게 내실 가꾼 블라섬은 물론, 뒷전에서 존재 드러내지 않은 채로도 안분지족 할 줄 아는 풀꽃 심지 닮을 수 있다면...


*블라섬(Blossom)은 과실나무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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