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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7. 2024

게티 씨, 미안합니다

눈이 녹아가던 오래전 늦겨울,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을 갔었다. 맨 먼저 웅장한 한옥이 압도하듯 다가왔다. 리움미술관이 건립되기 전에는 삼성가의 상징 같은 건물이었다. 재벌가의 미술관 앞에서 재력의 힘에 주눅 들어, 돈이 참 좋긴 좋구나~했던 기억이 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 했던가. 이 속담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라는 뜻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서 모은 재물을 좋은 목적으로 쓰라는 의미이리라.



말리브에 있는 게티 빌라를 방문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고미술품만이 아니라 미술관 자체가 예술작품인 게티 빌라. 50년대 미국 최고의 부호, 석유재벌이었던 게티다. 게티센터는 두어 번 찾았지만 게티빌라는 초행인데 이번에야말로 게티 씨의 진면목과 마주한 느낌이다. 돈의 힘, 누군들 부자 됨을 마다하랴만 또한 있다고 다들 문화예술품에 관심 갖고 공들여 수집하고 이를 널리 공개해 모두와 향유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일제 침탈로 사라져 가던 민족의 유산인 소중한 문화재를 지켜낸 간송, 그의 이름이 붙은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상설전시관이 아닌데 한국을 방문했다가 운 좋게도 전시 기간 중이라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간송 전형필 또한 조상 대대로 서울 최대의 거상 집안 출신이다. 그는 귀중한 문화재를 수집하기 위해 아낌없이 재산을 투자했다. 우리 조상님네 얼과 정신이 배인 문화유산 다수가 일본으로 마구잡이 공수되던 당시였다. 문화재에 대한 식견과 안목이 남달랐던 그가 훈민정음해례본을 구입할 때의 일화다. 한눈에 그 가치를 알아본 그는 상대방이 제시했던 가격의 열 배 액수인 무려 11000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값어치를 중히 여긴 그다웠다. 당시 기와집 한 채에 천 원하던 시절 얘기다. 상인이지만 선비 같았던 간송이 있어, 그 시대 해외로 유출될 위기의 문화유산들 다수가 서울 성북동에서 우리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폴 게티 뮤지엄 (J. Paul Getty Museum)은 높은 품격과 함께 규모에서나 소장품의 질적 수준에서 세계적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에트루리아의 각종 문화 유물과 공예, 미술품 등을 전문적으로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는 게티빌라다. 생경스러운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500년 경 광석이 풍부하게 나던 작은 나라로 금속공예가 발달했으며 로마에 정복된 고대 도시국가란다. 게티빌라는 나라별, 시대별로 구분된 여느 미술관과 달리 신과 여신, 디오니소스와 극장, 트로이 전쟁 이야기 등 주제별로 나누어져 있다. 테라코타, 대리석 조각, 금은 세공품, 유리제품과 청동제 그릇, 호화 보석과 장신구 외에 저택 안팎의 모자이크 벽화와 정원 등 로마 귀족들의 호사 취미를 보여 준다. 게티빌라에 대한 안내는 이미 얼마든지 나와있으니 생략하기로 한다.




유럽의 문화유산에 대해 편집증적으로 애착이 강했던 게티. 하여 게티 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는 다수의 고대 유럽 공예품과 미술품들은 그가 전면에 나서서 수집하였다 한다. 그러나 그는 고급문화 취향과 안목을 가진 품격 높은 사람이었을까.  평소, 게티야말로 인색한 수전노였으며 평생도록 일벌레였다는 그. 자택에 손님들이 쓸 공중전화를 설치했다느니, 손자가 마피아에 유괴되어 귀를 잘리는 사건 접하고도 몸값을 깎는 지독한 구두쇠였다는 둥. 거기다 할리우드의 미인 숲을 누비며 여성 편력이 화려했던 그. 허나 40대 중반부터 눈을 뜨게 된 미술에 대한 애정은 그를 변모시켰다. 전 재산을 문화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행복감을 안겨주었으니까. 아무도 이제 그를 돈만 아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단편적으로 또는 일면만 알면 오해하기 십상이다. 나도 그러했다. 게티를 제대로 파악하기 전에는 그의 속물적 행적으로 미루어 자수성가한 졸부 정도로 치부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변호사이자 석유탐사가인 부유한 아버지를 둔 그는 옥스퍼드에서 경제학과 정치과학을 공부한 수재였다. 그럼에도 괴팍하고 독선적인 성격에다 돈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 생전에 존경받는 부호는 못되었던 게티가 사후에 재평가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모든 재산을 사회에 기증, 폴 게티 트러스트 재단을 통해 운영되는 미술관 덕택으로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무상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 그간 단순히 넘겨짚고 함부로 판단해서 게티 씨, 미안합니다. 그리고 영혼을 호사시켜주어 고맙습니다. 비단 게티 씨만이 아니라 남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해 왔음도 반성합니다.

이동거리마다 바로 앞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이 사람이 내심 자신을 부끄럽고도 퍽 불편하게 만들었다. 미술관에 왔으면 작품 감상부터 제대로 하라고 말없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시종 팔짱을 끼고 두 다리는 바닥에 턱 고정시키고서. 곳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쁜 나와 달리 하나하나 작품마다에 깊은 시선을 주던 그 남자. 마치 연인을 바라보듯 그윽이 그리고 좋은 음식을 맛보듯 천천히.



그가 감각형이라면 나는 직관형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대상을 주의 깊게 찬찬히 살펴보며 작품과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의 진지한 표정으로 해서 내 발걸음마저 조신해졌다. 미술품 감상이란, 작품과 감정적인 공명(共鳴)을 경험하는 미적 체험 나누기이자 감상자 나름의 새로운 의미 해석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일이다. 하건만 미술관에서도 그러했고 자연과 마주하면서도 대상과 내 마음이 하나 되는 순수한 합일의 순간을 누리기보다 무작정 사진 찍느라 대상과의 오롯한 만남을 종종 놓쳐버리지 않았던가. 구도조차 옳게 못 잡는 서툰 사진이다. 자칫 실수로 다 날려버리기 예사인 사진이다. 다음부터는 찍사 노릇일랑 잊고서 작품에, 자연에 온전히 몰입해 봐야겠다고 마음 다졌다.


위의 건물 사진에도 바닥재가 특이하듯 게티빌라 처처마다 어디 한 군데 손길 소홀한 데가 없었다.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로비나 복도, 전시실 모든 바닥재가 제각각 기하학적 문양으로 꾸며진 색색의 대리석이다. 그뿐 아니다. 벽이며 천정 어느 하나도 밋밋하게 처리된 곳이 없었다. 주랑의 원형 기둥 마다에도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이 아로새겨져 있으며 담벼락인들 단조롭게 그냥 멀거니 서있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조차도 이리 전체 안팎을 세심 알뜰하고도 정성스럽게 가꾼 게티가 생각사록 대단해 보였다.



물질이 삶의 질을 주도한다고만 생각하면 비루하겠지만, 물질에 정신작용이 제대로만 짝을 맞추면 이렇듯 고부가가치로 전환시킬 수도 있다. 게티가 거듭 돋보이는 이유다. ㅁ자형으로 이어진 이층 전시실을 돌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려 발코니로 나왔다. 이 건축물의 특징 중 하나인 멋진 뷰, 어디에 서있든 시선 닿는 곳마다 전망을 최대로 고려하였음을 감지할 수 있다. 건너다 보이는 숲 너머엔 태평양이 푸르게 펼쳐져 있으리라. 망망대해 태평양을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말리브를 품에 안은 게티 빌라에서 그러나 심사 허망해진다. 대단한 그리스 역사도, 미국경제를 쥘락펼락한 엄청난 재력가도 무상한 세월에 떠밀려 한낱 티끌로 화했으니.



그리스 덕에 유럽이 문명의 혜택을 입었으니 은혜를 갚아야 할 때라고 배짱부리며 채권단의 구제금융 긴축안도 거부한 골칫덩어리 국가. 자국민들은 경제 회복을 위한 고통분담을 마다하고 정부의 긴축 조치안은 총파업으로 맞선다. 디폴드가 습관화된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는 채무 탕감 없이는 회생이 어려운 형편이란다. 급진 좌파정권인 치프라스의 과잉복지정책으로 거덜 나 버린 나라. 거둬들이는 세금보다 복지지출금이 20%나 많았다니 스스로 무덤을 판 격이다. 그런 멍청한 나라가 또 있다만... 따스히 달궈진 벤치에 앉아 돌돌 만  안내서를 펼쳐보았다. 5월 7일부터 9월 4일까지 둔황과 실크로드 특별전이 열린다고 나와 있다. 그때 다시 한번 게티 뮤지엄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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