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껏

1997

by 무량화


학창 시절의 그날은 온 교정이 술렁거렸다. 시골 학교에 큰 손님이 오는 날인 것이다. 들뜬 술렁거림이 물밑처럼 고요히 가라앉으면 바로 손님이 도착한 신호였다. 쉴새없이 재잘대던 우리는 일제히 입을 다문 채 눈빛만 반짝댔다.



교문 입구부터 운동장에 이르는 길은 물 뿌려 빗질한 자욱 고스란히 드러났다. 화단 잡초 말끔 뽑아가며 호미질도 해줬다. 차고 뒤 후미진 곳의 낙엽 따위는 물론 우물가 역시 살뜰히 치웠다. 몇 번의 검사 끝에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던 변소 청소. 추녀 아래 물받이 돌도 흐트러짐 하나 없이 다독였다.



그즈음이면 교실마다에서는 들기름 내음이 고소히 감돌았다. 마루판에 흠씬 들기름을 먹인 다음 팔이 아프도록 길들인 덕에 복도는 반들반들 얼비칠 정도였다. 잡티 하나 없기로는 칠판만이 아니었다. 정성 들여 말갛게 닦은 유리창. 죄다 새로 빨아 건 커튼은 단정히 묶여있었다. 풀 먹여 다림질 곱게 한 교탁보에서는 장미 넝쿨 십자수가 빳빳이 되살아났다. 화병에는 초여름이었던가, 향기 짙은 라일락꽃이 보기 좋게 꽂혀 있었다.



줄 맞춰 반듯한 책걸상. 쟁반 위의 주전자와 물컵만 가지런한 게 아니라 청소도구도 잘 정돈된 상태였다. 게시판 테두리를 친 색 테이프가 산뜻하게 바뀌었고 계절에 맞게 다시 꾸민 학습란도 신선했다. 진작에 학생들 두발과 복장까지 단속시켜 둔 터라 달리 더 점검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고 마무리 아주 깔끔스러웠다.



엉너리 치는 짓이라며 투덜투덜 불평 쏟아가면서도 손님맞이에 소홀함 없이 바지런 떨었던 학생들. 얼마 후 교장 선생님을 대동하고 근엄한 표정의 장학관이 교실을 한 바퀴 쓰윽 훑고는 지나갔다. 단지 몇 분에 불과한 그 시간을 대비하기 위해 담임은 우리를 얼마나 볶아쳤던가.



장학 검열 혹은 장학지도라는 명목으로 장학사가 나온다는 통보받으면 시골학교엔 긴장감부터 감돌았다. 그와 동시에 부랴 사랴 대비에 들어갔다. 신경 바짝 쓰는 담임 표정에 우리는 절로 경직되어 괜히 어깨가 움츠러든 채로 분담된 일에 전념했다. 자발적으로 내켜서 한다기보다 순전히 타율에 의한 반 억지였을지라도 그렇다고 건성으로 해치울 수는 없었다. 담임의 찌푸린 이마가 펴질 때까지 우리는 그 일에 매달려야 했으니까. 한바탕의 소요는 그렇게 지나갔다.



얼마 전 혼사를 앞두고였다. 처음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두서도 없고 경황이 없었다. 막연히 추상적으로 떠올리던, 언제가 앞으로 닥칠 일이라고만 여긴 일. 그런 사안이 어느 날 느닷없이 뚜렷한 실체로 다가오자 당황부터 하게 됐다. 진작에 대비하고 있던 바도 아닐뿐더러, 무슨 일에나 기민한 순발력이 따라주지 않는 굼뜬 사람인 까닭에 더욱 그러했다.



혼례는 자녀 나이가 차면 당연히 치르는 예정된 삶의 수순이다. 하건만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건 부모로서의 직무유기이리라. 정신 추슬러 차근차근 짚어나가니 비로소 일의 순서가 잡혀왔다. 한여름이지만 즉각 집수리부터 들어갔다. 새 식구를 맞는 일이자 많은 손님을 치를 잔치를 앞두었으니 집 손질은 응당 해야 했다.



처음 혼삿말이 나왔을 때 겸사겸사 집 옮겨볼 궁리를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세련된 구조의 아파트가 차고 넘치는 판에 오래된 구식 아파트는 거들떠보는 이가 없었던 것. 봄 내내 공연히 마음만 떠서 지내다가 결국엔 도리 없이 눌러앉기로 한 아파트다. 대신 청결하게는 다듬어보자.



심기일전, 집 전체를 다시 바꾸기로 했다. 구조변경은 어려우니 가구배치나 새로이 하고 도배와 페인트칠만 해도 집안 분위기는 한결 달라진다. 막상 벌려놓고 보니 그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살림 옮겨가며 뒤치다꺼리하는 것만으로도 여간한 일이 아니었다. 내친김에 어쭙잖은 가구며 집기와 책도 반 이상 추려냈다. 웬만한 세간살이는 거의 들어낸 덕에 공간이 훨씬 넓어졌고 시원스러웠다. 그 간결함과 단출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깨끗이 바뀐 실내에 걸맞게 조명등을 바꾸고 곳곳의 유리도 얼비치도록 닦았다. 책장 안팎은 물론 냉장고 위의 먼지도 말끔히 털어냈다. 싱크대의 그릇도 몽땅 꺼내 다시금 씻어 정리해 두었다. 하다못해 전기 스위치에 낀 손때까지 꼼꼼스레 닦았다. 화분 둘레 행주질해 주기에 앞서 관엽식물 잎새마다 일일이 정성 들여 씻어주었다.



미진한데 없이 집안청소를 마친 다음 아파트 계단 청소에 들어갔다. 청소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긴 하지만 내 필요에 의해서 하는 일이다. 우선 바닥에 붙은 껌을 긁어낸 뒤 물 충분히 내려 쓸고 천장 구석에 매달린 작은 거미줄을 치웠다. 통로 유리창에 덕지덕지 붙여놓은 광고 스티커 떼는 데는 보통 공력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사는 층에서부터 맨 아래층까지 내려가며 하나하나 칼끝으로 스티커 긁어내고 떼는 일은 팔목 뻐근하게 했다. 이 아파트에 산 지 십 년여 만에 나도 처음 한 일이지만 어느 누구도 손댈 엄두를 내지 않던 일이다. 일단 다 마치고 나니 흡족하고 뿌듯했다. 누가 시켜서 한다면 팔 떨어진다고 엄살 먼저 부릴 텐데 스스로 우러나서 하는지라 어려운 줄도 몰랐다.



거의 무심결에 그 작업을 하면서 문득, 학창 시절의 장학 시찰을 떠올리게 됐다. 분담된 의무이자 맡겨진 책임 때문에 또는 지시 감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와, 내 뜻에 의해 자율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의 차이점은 이렇듯 뚜렷했다. 자의와 타의, 바로 그 차이였다. 스스로 하는 일은 지극정성 다해서, 성심성의껏 몰두하게 된다. 조촐하나 성의 있는 손님맞이 의식의 첫 번째로써 집 안팎을 깨끗이 하고 싶은 오직 그 마음이 기꺼이 그 일을 찾아 하게 만든 것이다. 뒷날 몰골사납도록 체중이 준 것쯤 아무렇지 않았다.



누구나 자녀에게는 좋은 소리만 듣게 하고 싶고 고운 것만 보게 하고 싶고 반듯한 음식만 먹이려 신경 쓰게 마련이다. 태교는 임신 중에나 하는 거라 여길지 모르나 기실 자식에게 쏟는 정성은 평생에 이어진다. 하긴 그럼에도 어느 가정 없이 모범답안대로만 살기는 어렵다. 티격태격 부부 싸움도 하고 거친 언행을 쏟아내기도 한다.



허나 자녀를 대하는 부모 진심은 다 똑같은 마음일 거다. 평소 아이에게 용돈을 주면서도 새 지폐만 골라 가지런히 해서 건네준다. 하다못해 배추김치를 썰어도 아이 몫은 머리 부분을 얌전스레 접시에 담게 된다. 그 곡진함과 오롯함이야 부모 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경계다. 자식에게는 그렇게 마음이 무한정이자 무조건적으로 당긴다. 본능이리라. 아니면 부모로부터 그리 받았기에 그럴지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망설이지 않게 된다.



자식은 도무지 낼 수 없는 그런 마음을 부모는 당연하고도 거침없이 낼 수가 있는 거다. 내리사랑이라던가. 아이는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그 같은 성심을 바치리라.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러했듯이. 나 역시 그에 만족하며 고개 끄덕여 수긍해야 하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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