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락가락하는 오후, 부산대 박물관으로 향했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김동수 명예교수의 기증유물 특별전이 교내 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어서다.
숲 안개 부옇게 감도는 금정산 자락, 석조건물 묵직한 박물관 입구에는 향기 고담한 유백색 치자꽃 피어있었다.
발열 체크 후 방문 기록을 마치고 이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남학생 혼자 전시장을 천천히 돌아보고 있었다.
첨단을 달리는 디지털 시대, 잊혀 가는 옛것에 관심 가져주는 젊은이가 고마웠다.
올드 타이머야 처음부터 눈길 닿는 곳마다 낯이 익어 반가움부터 와락 달려들었고 예전이 애틋하게 그리워졌다.
어릴 적에 접했던 색동저고리와 아기자기한 조각보뿐인가, 물레며 수놓은 다림질판에 인두까지 아련한 정서의 현을 튕겼다.
사모관대는 사극 드라마에서나 봤지만 외숙모의 남바위 조바위는 조그만 내 머리에 푹신 씌워지기도 했었으니까.
가을날 차일 쳐진 마당에서 당고모 혼례가 치러질 때 신랑이 안고 온 목기러기인데 퍽 오랜만의 해후다.
사랑채 반주상으로 나가던 팔각형 소반도 여기 와서 다시 보고, 매방리 할아버지가 아끼던 문방사우 벼루와 연적도 만나봤다.
성심 기울여 음감 살린 거문고 장인이며 한 땀씩 조각천 잇대어 보자기를 만든 여인의 손길에도 대대로 축복 있기를.
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가 없는 아동용 조끼/ 여성 방한용 누비저고리/ 오방색 조각천으로 잇대 만든 보자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바람이 담긴 수를 놓은 아동용 까치두루마기와 은은한 색상의 명주비단천이 담긴 반짇고리
이번 특별전은 기증유물 중 대표작을 중심으로 450여 점을 기획 전시하고 있다.
반가 사랑채와 규방 문화가 꽃피워 낸 품격 높은 전통공예 작품을 비롯, 진기한 한방 도구와 불연 등 하나같이 귀한 예술품들이다.
그중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74호인 자수 책거리 병풍은 조선시대 8폭 병풍이다.
도화서 화원의 밑그림에 날염 상태가 좋은 명주실로 궁중에서 수를 놓은 문화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지리학자 장 밥티스트 부르기뇽 당빌이 1737년 제작한 울릉도 독도가 표기된 희귀본 조선왕국 전도도 공개됐다.
조선의 지도 중 서양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지도로, 독도를 조선 영토로 명시한 최초의 지도라는 주요 의미를 지녔다.
일본의 다케시마 영유권 주장을 학술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임나일본부설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역사왜곡 일삼던 일본 고고학계를 일거에 평정시킨,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철제유물처럼.
또 하나, 과학적인 시스템을 차용해 만든 자물쇠가 있어 감탄사 연발하게 만들었다.
신기하게도 그 옛날에 문자조합형 자물쇠를 구리로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데 이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양한 전시품 중 문화재에 준하는 대단한 유물도 많았지만 아무래도 정감 어린 시선 꽂히기로는 아녀자들의 규방용품들.
전통공예인 비단매듭 노리개에 달린 오방색 술과 까치두루마기에 수 놓인 화조의 정성스러운 솜씨라니.
영롱한 통영 나전칠기 사방탁자와 화려한 화각 문갑에도 그 섬세함에 오래 마음 머물렀다.
모처럼 분에 넘치는 눈호사를 한 날.
남다른 역사인식과 안목으로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 우리의 얼이 깃든 예술작품을 하나하나 지성껏 모아 온 두 분 덕택이다.
방대한 양의 소중한 작품을 일반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게끔 기증해 주신 박사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
나아가 전시를 기획한 대학 박물관 측에도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음에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는 귀한 전시회였으므로.
전통혼례 시 목기러기를 싸는 기러기보로 겉감은 다홍색 비단에 수를 놓고 고동색 안감을 대며 테두리는 검은색 면으로 바이어스 처리/ 상보/ 책보
자수로 곱게 장식된 다림질판/ 동양사상에서 대지인 사각형은 여성을 상징, 여성용 베갯모/ 원으로 상징되는 하늘인 남성의 원통형 베갯모
횃대보 덮개/조각이불/조각보
화관 족두리와 남바위
은제 귀이개/ 장식용 비녀인 용잠과 봉잠 외/ 장식용 비녀인 용잠과 봉잠 외/ 가르마 탈 때나 빗살 안의 때 빼는데 쓰이는 빗치개
저고리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차던 장신구인 노리개/ 솜을 자아서 실을 만드는 물레/패물 달린 노리개, 향낭이 달린 노리개, 삼작노리개
금속제 바늘집/ 거북 목조각으로 장식된 경대/ 가례 때 착용하는 여자 예복인 활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