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기운이 궁금해 들른 부자마을에서 듣다

by 무량화


비안개로 황매산 철쭉 구경 대충만 하고 귀가하던 중 길목인 의령에서 이병철 생가를 찾았다.

의령은 남명 조식 선생, 의병장 곽재우 장군, 애국지사 백산 안희재 선생을 낸 충절의 고장이다.

산세가 뛰어났나? 물길이 유장한가? 땅기운이 얼마나 좋기에 역사에 남을 큰 인물을 내리 배출했을까.

단아한 서원과 정자가 눈에 띄었고 정려각 같은 누각도 얼핏 스쳤으나 빗줄기 거세 그냥 지나쳤다.

금강산도 식후경, 우시장으로 이름 날리던 70년대부터 벌건 국물의 얼큰하고 담백한 소고기국밥 소문난 곳이라 점심은 별식 택했다.

응봉산 자굴산 드높아 첩첩산중에 망개 덩굴 흔한 듯 망개떡이 유명하다기에 맛보려고 한 상자 샀다.

언뜻 봐도 묏 봉우리 기상 예사롭다거나 물 흐름새 유별스런 풍경이기보다는 한국 어디서나 흔하게 접하는 그저 그런 산촌.

문외한의 안목으로야 보통치인 산골마을만 지날 뿐인 의령인데 어떻게 호암 같은 걸출한 기업가가 태를 연 곳일까 의아했다.

마늘밭과 보리밭 눗누런 농로에 부잣길이란 도로 표지판과 이건희 미술관 유치 현수막이 도처에 걸려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눈을 감으며 3조 원대에 달하는 컬렉션 미술품을 사회에 기증하기로 했다.

2만 점이 넘는다는 어마어마한 소장품 내용을 다룬 기사를 봤는데 국립박물관이나 국립 미술관 규모는 돼야 수용 가능치 않을는지.



생가가 이곳인 호암이라면 모를까 이건희와의 인연은 사실 윗대의 탯자리일 따름.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한국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결혼을 해 신혼시절을 보낸 호암.

특히 세계적 브랜드가 된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여 첨단기술의 발전 기반을 마련한 점에서 그의 탁월한 경영철학은 높이 평가받는다.

사카린 밀수사건 같은 비리도 있었지만 성균관 대학교를 인수해 인재 육성 등 교육 분야에 기울인 업적도 상당하다.

의령 정곡면에 있는 호암 생가, 울창한 대숲에 싸 안긴 평평한 대지에 서남향으로 앉은 널따란 기와집은 조부 이홍석이 지은 집이다.

천석지기 아버지를 둔 호암은 사업을 하기로 작정하고 삼백 석에 해당하는 사업 자금을 받아 일찌감치 마산에서 정미소를 운영하였다.

도정사업으로 돈을 모아 일대 토지를 사들여 재산을 불려 나가는 등 첫 사업은 성공적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파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다시 3만 원이라는 거금을 지원해 줘 대구에서 무역업과 양조업에 투신, 사업은 크게 번창한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그는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해 무역업계를 석권해 나간다.

다시 육이오 전쟁으로 서울에서 벌인 사업이 완전 거덜 나자 대구로 피난해 자금을 모은 뒤 임시수도 부산으로 내려가게 된다.

거기서 제조업을 시작, 전포동에 제일 제당을 설립한 다음 잇달아 골덴텍스를 생산해 내는 제일모직 최신식 공장을 대구에 세운다.

4.19가 터지고 5.16이 일어나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호암은 경제인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되기도 하는 등 파란을 겪는다.

대지주의 아들로 비료의 필요성을 잘 아는 그는 울산에 대규모 비료공장을 기획하여 한국비료 공장이 착공됐다.

이때 사카린 밀수사건이 세상에 드러나며 결국 한국비료를 국가에 기부하고 호암은 재계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부정 축재 경제인으로 낙인찍힌 호암은 경제인의 힘의 한계를 절감하고 언론사를 만들기로 결정, 서소문동에 종합 매스컴 센터를 세운다.

이때 내무부 장관을 지낸 홍진기를 중앙일보 사장에 앉히면서 사돈의 인연도 맺게 된다.

12.12사태 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며 언론통폐합을 추진하자 호암이 만든 TBC는 공중분해된다.

그 후 호암은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구상, 오랜 숙고 끝에 전자업계로 진출하기에 이른다.

삼성전자의 출현으로 죽마고우이자 사돈지간인 구인회와는 오랜 우정의 결별을 맞는다.

흑백 TV의 대성공으로 호암의 삼성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여 삼성그룹으로 크게 성장한다.

호암은 조선업, 중공업, 반도체 사업에 직접 나서서 진두지휘하여 삼성을 세계기업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1천4백 고지의 명산 가야산이 품은 팔만대장경의 가피일까, 경남에는 정재계 인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내가 태어난 승산마을은 승내리의 중심 마을로서 상동(上洞)에는 구 씨가, 하동(下洞)에는 허 씨가 대를 이어 문중의 번성을 일구어왔다.

예부터 이곳은 천석꾼 만석꾼 부자가 많아서 서울에서도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알았다고 할 만큼 융성함을 누렸던 고을이다.

이름난 산맥이 끊어진 곳에 인물이 많이 난다는 말이 있다.


태백산맥의 허리를 틀어 뻗은 발치와 소백산맥이 끝나는 우단 자락의 진양(선친인 구인회 LG그룹 창업 회장), 의령(이병철 삼성그룹 창업 회장), 함안(조홍제 효성그룹 창업 회장)에서 재계 3인방이 나왔다."

이는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의 회고담이다.

삼성(三星), 금성(金星), 효성(曉星)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 재벌가다.

호사가 아니라도 재계의 큰 별 셋이 근동 이십 리 안에서 태어났다니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일로 큰 관심이 쏠릴만하다.

이와 관련 근처 솥바위 전설이 그럴싸하게 전해 내려 온다.

농경사회에서 밥 짓는 솥은 곡식 즉 재물을 상징한다.

강물에 앉아있는 솥바위 아래쪽에 삼 정승을 뜻하는 세 개의 발이 뻗어있다고.

이에 사방 20리 안쪽에 정승 못지않은 세 명의 큰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내로라하는 부호가 솥바위를 중심으로 탄생하리라는 예언은 현실이 됐다.

의령 정곡면에 삼성 이병철 회장, 진주 지수면에 금성 구인회 회장, 함안 군북면에 효성 조홍제 회장이 그들이다.

일단 첫 번째로 기회가 닿은 호암 생가, 큰 부자의 기를 받아 가라는 관광 홍보보다는 노적봉 형상을 했다는 뒷산에 끌렸다.

그러나 생가 대문은 굳게 잠겼고 마을 뒤편 산은 시골 어디서나 흔히 봄직한 평범한 야산일 뿐이었다.

배산임수 소리나 들어봤을 따름, 풍수지리에 대한 식견이 전무하니 명당자리를 본들 알아챌 리 없으렷다.

이론상으로는, 땅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식한 선대들은 땅과 사람이 서로 기를 상통시키며 상생의 조화를 이룬 곳을 명당으로 쳤다.

좋은 땅의 기운을 많이 품을수록 그 터에 사는 이의 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데 대체 그 기운은 어디서 찾나?

<지리오결> 책에 따르면, 진짜 큰 명당은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삼대 적선해야 남향집에서 살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나온 말이리라.

하긴 인간사 길흉화복도 쌓은 공덕, 악덕에 따르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지은 선업이나 공덕이 복으로 돌아오듯 악업을 지으면 후대라도 그 화 반드시 받고 말기에.


부모가 남긴 업도 그대로, 덕도 그대로 자손에게 가는 인과의 법칙이 두려워서도 잘 살아야 하고말고.

의령을 뒤로하고 함안을 지나다 휴게실에 들렸다.


특산품인 망개떡을 샀는데 그보다는 수박 곳답게 시렁에 올린 수박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보기좋았다.

수박을 쓰다듬어서인지 풋풋하니 싱그런 수박 향이 한참을 따라왔다.



생가 위치: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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