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덕알물과 같은 수자원 풍부해 용천수 마을로 잘 알려진 삼양동.
검은 모래로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는 삼양해수욕장이다.
용천수를 찾아가다가 먼저 만난 곳이 삼양동 유적지다.
입구가 돌담을 빙 둘러서 원당봉과 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담을 돌아가던 중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보랏빛 꽃과 눈이 마주쳤다.
키 큰 나무에 핀 꽃인데 라일락은 아니고 무슨 꽃일까?
향은 라일락에는 미치지 못하나 상긋한 내음 독특했다.
생면부지의 낯선 꽃이라 지나가던 노인장에게 이름을 물어봤다.
멀구슬낭 꽃이라고 했다.
잎 진 늦가을에 그 나무를 첨 봤다,
창천에 명징하게 자태 드러낸 채, 노란 구슬 조롱조롱 매달고 있던 멀구슬나무.
구슬 같은 열매를 맺는 꽃이라서인지 역시 꽃은 모양도 색깔도 아주 고왔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16호인 제주 삼양동 유적.
선사시대 제주인의 삶을 오롯이 품은 곳이다.
오랜 기간 지하에 묻혀있었던 선사 유적지가 드러나게 된 과정은 이러하였다.
1996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던 중 다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터도 확인되면서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제주지역에 조성된 최대규모의 마을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충분히 그러할만한 지형인 것이, 뒤편은 원당봉이 안온하게 감싸고 있으며 완만하게 흘러내린 앞 들판 너르다.
그 아래로는 수자원이 풍부한 바다가 무한대로 펼쳐져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터에 해바른 장소라 옹기종기 움집 만들어 모둠살이를 했을 선사인들.
봉긋한 집 모양은 영락없이 오름 모습에서 본땄으리라.
대략 2백여 동의 집터가 축조되었던 곳이라 공동창고와 저장구덩이, 공동 작업장과 야외화덕, 토기가마도 있었다고.
마을 외곽에서는 지석묘와 독무덤 등도 발견됐다.
취락지에서 출토된 유물들로는 점토띠토기, 삼양동식 토기를 비롯해 돌도끼 돌화살촉 숫돌이 다수 나왔다.
생활도구인 갈판, 공이, 홈돌 외에 곡옥과 옥팔찌 같은 장신구도 있었다 한다.
땅을 둥글게 혹은 사각형으로 약간 파서 띠로 지붕을 씌운 움집에서 살았던 사람들.
초입에 있는 규모 큰 부족장 움집은 다른 집과는 달리 지붕 중간에 밖을 살필 수 있는 창이 나있는 게 특이했다.
수장 노릇 옳게 하려면 군림하는 자리에서 권세나 누리는 게 아니라 부락을 평화로이 돌보며 구역 지킴이 역할을 위임받은 것.
그러려면 자연스레 무기류도 갖추게 되고 아무나 지니기 힘든 귀한 물건도 모이게 마련인 듯 출토품이 가장 많이 나왔다 한다.
비교적 작은 집의 안을 들여다보니 지푸라기를 바닥에 깔았으며 짐승가죽이나 모피가 걸대에 걸려있었다.
발굴조사 결과, 취락지구답게 불에 탄 콩과 보리가 출토되었으며 돌로 만든 어로용구와 전복패로 된 장신구도 나왔다고.
요령식 동검이나 구리거울, 옥팔찌 같은 중국제 유물들이 출토된 걸로 미루어 외부지역과의 활발한 교류도 유추가 됐다.
예나 이제나 사람살이 따지고 보면 오십 보 백보다.
사냥도구 만들어 기본적인 먹거리부터 해결하고 나서는 가죽 무두질해 옷을 만들어 걸치고 비바람 가릴 집을 세우고.
그다음에는 집도 꾸미고 장신구도 마련하고 유희도 즐기고...
발전된 세상이라고 한껏 폼 잡고 멋 부려봐야 산다는 게 거기서 거기, 별다른 게 있나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