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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y 25. 2024

일일시호일(日日時好日)

무엇이든 환경과 풍토가 변하면 본래 성향 역시 영향을 받는다는 뜻인 남귤북지(南橘北枳). 강남의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 강북에다 옮겨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를 내동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춘추시대 말기의 제(齊) 나라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그러므로 예전부터 중국에 귤이 있었다는 얘기다. 아열대성 과일인 오렌지처럼 서양 과일로 만 여겨왔던 귤이다. 허나 의외로 귤의 원산지는 중국 저장성 남부의 원저우(溫州, 온주). 오래 묵은 귤껍질은 진피(陳陂)라 하여 한약재로 쓰였다. 귤의 영문명은 ‘만다린 오렌지(mandarin orange)’다. 만다린은 중국어 관(官)에 해당된다.



교재에서 귤에 관한 문장을 읽고 새로이 확인하게 된 상식이기에 "학교 다니길 참 잘했어~" 내심 고개 끄덕이며 학교를 고마이 여겼던 건 작년의 일이다. 흥미롭지는 않지만 과거분사니 전치사란 단어도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웠다. 일 년 만에 영어가 확 늘어날 리 만무나 눈에 띄는 발전은 없다 해도 가랑비에 옷 젖는다지 않던가.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어주면 다 흘러내려가는 듯싶어도 어쨌든 콩나물은 키도 크고 통통하게 자라지 않던가. 다시금 건강과 영양소에 대해 공부하고 식품 라벨에서 성분표시 정확히 읽는 법도 배웠다. 오래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아예 관심 갖지 않았던 MH/GH며 MHz/GHz에서 더 높은 단위가 어떤 것인지도 비로소 파악됐다. 집에 붙박여 지냈다면 재난대비 모의훈련을 받아볼 기회인들 주어졌을까. 세세한 위기대응 매뉴얼을 손에 쥐여준다 한들 실제적으로 직접 재난 대피 훈련을 받아본 만큼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원래 나는 끈질긴 학구파도 아닌 데다 학위를 받기 위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공부도 아니다. 노는 입에 염불 한다고 때마침 여유시간도 넉넉히 주어진 데다 이사 와보니 주위에 한국 사람이 별로 살지도 않는 지역이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격으로 답답하니 영어공부라도 해볼까 싶었다. 그러구러 나가기로 한 학교, 헌데 고마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하게 머리 굴리지 않아도 나이 덕으로 눈치코치에 요령은 있어 시험을 잘 쳤는지 레벨이 올라간 다음부터는 공부가 좀 어려워졌다. 해서 한눈팔거나 딴전 부릴 수 없이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해 준다.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심신 건강에 도움을 주어 삶을 윤기롭게 만들며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듯 꽤 즐길만하다.



학교가 고마운 건 우선, 해야 할 일과 목적이 있는 삶이어서 좋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해 주니 일상이 리드미컬해지고 활력이 넘치게 된다. 무엇보다 바람직스러운 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맑은 공기를 쐬며 걷게 해 준다는 점. 왕복 딱 한 시간이다. 걷기 운동이라도 단조로운 러닝머신이나 동네 길가 걷는 게 아니라 목적지가 있으므로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일단은 의식적으로 걷는 자세부터 바르게 갖도록 한다. 등을 곧게  펴 꼿꼿이 세우고 시선은 정면에 둔다. 뒤꿈치부터 땅을 디뎌 무릎과 허리의 충격을 완화하며 보폭은 넓게 내딛는다. 팔은 자연스럽게 흔들되 가끔은 여군 흉내를 내며 척척 걷기도 한다. ㅎ

 

주중엔 숙제도 제법 된다. 매일 들어야 할 인터넷 강의도 기다린다. 그런데 30분만 하면 벌써 헤드 셋이 거추장스럽기만 하고 눈도 시물거리며 잠이 오려한다. 참 이상스럽다, 블로깅하다 보면 한 시간이 눈 깜박할 새인데 그것도 공부라고 싫증이 금방 나버린다. 더구나 불시에 시험이라도 친 날은 녹초가 되어 눕고 싶고 단것이 자꾸만 땡긴다. 그러다 오늘처럼 금요일 오후가 되면 완전한 자유와 휴식의 달콤한 시간이 주어진다. 물론 틈틈이 영화도 보고 포스팅도 올리고 불방 마실도 다니는데 그 모두가 내 나름 온전히 쉬는 방식의 하나다.



일일시호일(日日時好日), 날마다 좋은 날인 요즘이다. 오늘도 넉 점 반 넉 점 반, 구름도 보고 들녘도 훑으며 주유천하 하기. 천지 간의 온갖 것 둘러보면서 가끔은 쇼윈도우에 비친 모양새도 가다듬어가며  집에 오는 길. 수업을 마치고 걸어오노라면 학기 초엔 방향이 같은 클래스 메이트들이 자기 차를 타라고 권했지만 언제나 내 대답은 노 땡큐~. 이제 걷기를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고의 운동이야! 엄지를 세우며 말은 그렇게 하고 지나가는 그들. 젊어도 정작 걷는 일이 습관이 되지 않아 걷기는 엄두조차 못 낸다. 바로 건너편을 가도 차로 이동하는데 익숙해진 요셉은 나하고 산행을 면 늘 먼저 지쳐버린다.  



햇살도 여려지고 바람 서늘해져서 걷기에 최적인 날씨다. 기찻길 가까이 오니 땡땡거리며 차단기가 내려지고 있다. 철커덕거리면서 앞을 가로지르는 기차 꽁무니에는 기나긴 화물차량이 줄줄 이어져 따라온다. 그 개수를 세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142개의 긴 꼬리, 대륙을 건너 먼 길 달려온 화물열차는 LA로 곧장 향해 간다. 컨테이너도 실렸고 목재며 건축자재, 건초더미도 쟁여있다. 곡물 차량에 오일탱크도 매달렸다. 그중엔 녹이 슨 것도 있고 스프레이 그림이 어지러운 칸도 있다.


 오늘도 좋은 날, 블러바드를 지나면 이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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