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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8. 2024

캘리포니아 마방

존 뮤어 트레일

짧은 구간 동승했던 JMT 길에서 짐을 실은 말과 노새 행렬(Horse Packers)을 만났다.


흙먼지를 일구며 묵묵히 고개 숙이고 산비탈 오르는 그네들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혼잣소리를 했다. '우리야 놀이 삼아 걷는다마는 말은 할 짓이 아니겠다. 안됐고말고. 화인도 찍히고 편자 박는 고통도 때때로 당하고....'

그 순간 내 쪽으로, 육중한 말 한 마리가 코너를 돌다가 비틀거리면서 넘어졌다. 뒤따르던 다른 말도 비척거렸다.


말을 피해 잽싸게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영락없이 말발굽에 밟힐뻔했는데 용케 자리를 피함으로 찰나의 위기를 모면했다. 지켜주신 하늘님, 감사하나이다.    


초식동물인 말은 강력한 뒷발질 외에는 이렇다 할 재주가 없어 걸핏하면 뛰어 도망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또한 무리 중의 하나가 어떤 행동을 취하면 다른 말들도 똑같이 따라 하려 든단다. 안장과 굴레를 지을 때 거부하려는 버릇이 있어서인지 사람을 기피하고 잘 놀란다는 말.


말이 놀래거나 겁을 내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주로 처음 보는 물상, 움직이는 것, 냄새가 강한 것에 겁을 먹고 특히 큰 소리나 듣지 못했던 낯선 소리에 놀라기 쉽다는데 그 말은 왜 그랬을까.


아침 건초가 충분치 않아 배가 고프거나 아니면 목이 말랐나?


똑같이 반복되는 일에 지쳐 꾀를 부렸나?


피곤해서 잠깐 졸았나? 무심결에 그저 발을 헛딛었나?


아냐, 아냐, 산행중에도 잡다한 몽상에 빠진 그대가 황당해 내 잠시 어지러웠던 게야! 말의 말이다. :)




Horse Packers가 멀어지자 전에 본 다큐, 차마고도 <마지막 마방> 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사고팔던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

실크로드보다 한참 먼저 열린 차마고도다.


만년 설산의 고봉과 수천 길 낭떠러지를 휘감아 도는 험한 협곡을 넘나들어야 하는 몇 달에 걸친 여로였다.


중국 윈난(雲南)에서 차와 소금을 싣고 가 티베트의 말과 바꾸면서 생존을 이어갔던 사람들 얘기다.


그들은 담박하게 웃으며 걸었지만 여정을 따라가며 지켜보는 내내 비감스럽고도 처연한 심사가 되었다.


언제 거칠게 불어난 강물에 떼밀려 갈지, 언제 산더미만 한 눈사태를 만날지도 모르는 정황이건만 그들은 별반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집을 떠나 흔연스레 말고삐를 잡고 걷고 또 걸었다.


삶이란 게 누구에게나 녹록하진 않지만, 마방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일생은 더 혹독했음에도 그들은 잘도 순응했다.


인간사 욕심을 초월한 듯 희로애락 내려놓은 그들 얼굴은 맑고 천연스러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또 다른 생존방식도 생각이 난다.

에베레스트 등정을 도우는 고유명사 sherpa로 살아가는, 동쪽 사람이란 뜻의 티베트계 네팔인인 셰르파족.

히말라야에 삶의 뿌리를 내린 채 등짐 지고 설산을 오르내리면서도 어린아이 표정처럼 심성 투명하다는 네팔인들의 삶을 가끔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그들 역시 매섭게 추운 기후와 높은 고도 생활에 익숙한 덕? 에 셰르파에 명을 걸고 일하며 온갖 위험도 불사한다.

그네들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 건, 존 뮤어 트레일 종주에 오른 산악인들을 위한 캘리포니아식 마방 행렬을 접하면서였다.

금번 산행 중에, 서부의 카우보이처럼 말안장에 올라탄 남자가 짐 실은 나귀와 말 무리를 이끌며 산골짝 길을 따그닥 따그닥 걸어가는 행렬과 서너 차례나 마주쳤다.

험준한 히말라야가 가로막힌 동과 서의 물류 교류를 위해 티베트에 마방이 생겨났고 네팔에 셰르파가 존재한다면,
캘리포니아엔 존 뮤어 트레일을 여러 날에 걸쳐 걷게 되는 하이커들을 간접 지원하기 위해 미국식 마방이 생겨난 셈이겠다.

차마고도의 마방꾼들은 말을 타고 험한 산길 넘나들며 이웃나라와 물물교역을 하는 소규모 무역상들이다.

반면 캘리포니아 마방꾼은 말 등에 짐을 싣고 산길 올라 JMT 하이커들의 중간 보급품을 지원해 주는 운송자 역할을 한다는 차이뿐,

예측불허의 변화무쌍한 산악기후와 고투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일 터.

그러나 산간도로가 닦이며 차마고도의 마방이 사라져 가듯, 이런 모습도 불원간 정취 어린 과거의 풍경으로 기억하게 될듯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현대는 갈수록 살기 좋아지는 세상이 되어간다.

인터넷에 접속해 클릭 한 번으로도 생활이 얼마나 편리하게 됐는지, 소소한 물건 하나 구매해도 가만히 집에 앉아서 받는다.

고객 주문대로, 물품을 요구하는 장소로 원하는 시각까지 직접 배달해 주는 택배 제도가 번창하면서 배송 서비스는 날로달로 진화 중이다.

처음엔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던 드론이 차츰 상용화되며 수송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 현 추세대로, 이미 새로운 시대는 분명 예고되었다.

성급한 추측인지 모르나 택배 배송을 드론이 대신하는 날도 머잖아 캘리포니아 마방 역시, 언젠가는 그렇게 드론이란 기구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을까.

가뭇없이 없어져 버리거나 사라져 잊혀지는 것들은 심경을 착잡하게 가라앉힌다.

보다 효율적인 대안이 나와서 현재는 가벼이 웃지만, 반면 자꾸자꾸 사라져 가는 것들을 생각하면 씁쓸하니 슬프다.

말은 시대를 녹여낸 산물이라 하였던가.

신조어 '웃프다'란 표현이 홀깃 스치는 동시에, 아마도 지금쯤은 마방 자리를 드론이 대신하지 않을까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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