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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9. 2024

말의 말

마방 이야기를 쓴 포스팅에 어느 분이 댓글을 달았다. "누구를 위해 저리 험난한 길을 가야 하는지, 말들도 말을 할 줄 안다면 아마 할 말이 많겠어요."라며 말도 참 힘든 운명을 타고났다고 했다.


비숍에서 오전 잠시 둘러본 기차박물관에 딸린 마차실에서다. 긴 무쇠 손잡이 끝에 알파벳이나 간단한 모형이 붙은 낙인이 백여 점 전시되어 있었다. 갖가지 크기의 서로 다른 편자도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네 기둥에 묶인 채 말발굽에 편자를 박을 때면 괴로워서 몸을 비틀며 말은 비명을 내지른다. 서부영화에서 화인 찍는 걸 보면 불에 달군 낙인을 말 몸에 대는 순간, 치지직 연기가 솟으며 말도 펄쩍 솟아오른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반사적으로 그리 튀어오를까.


말뿐이 아니다. 요즘의 비육우와 달리 예전의 소는 논밭을 갈고 마차를 끌며 실컷 부림을 당하다 종내는 통째로 육신 보시까지 해야만 했다. 개 팔자도 기구하긴 마찬가지였다. 시어미한테 야단맞은 며느리로부터 걸핏하면 옆구리 걷어차이고 먹다 남은 눌은밥을 얻어먹으며 똥개로 살다 복날 소신공양의 제물이 되던 시절도 있었다.

싫든 좋든 맡겨진 소명을 묵묵히 해내야 하기로는 동물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뿌리 내려진 장소가 어디이건 싹트고 꽃 피어나 열매 맺는 동안,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사막의 풀을 보면 목숨의 준엄함이 비장스럽기조차 하다.

우리네 삶이라고 크게 다르던가. 타의에 의해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가 정말 좋아서 능동적이고 자발적으로 기꺼이 하는 일은 사실상 그리 많지가 않다. 성경에 나와있듯 아담에게는 노동의 고통이 금단의 열매를 먹은 벌로 내려진다.

그때부터 고통은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나. 취미생활로 즐기는 게 아닌 업으로서의 일은 대부분 생존의 수단이다. 직업 만족도는 업종에 따라 다르긴 하나 거의가 평균치 아래로, 하는 수 없이 그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경우가 적잖다. 그러니 자의적으로 일을 선택할 수 없는 말의 경우 말해 무엇할까.




말(午)은 그러나 넘치는 생동감, 뛰어난 순발력, 탄력 있는 근육, 기름진 갈기, 각질의 말굽과 거친 숨소리를 가지고 있어 강인한 인상을 준다. 말은 우두머리, 지도자, 선구자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드높은 기상은 물론 신분 상승이나 출세 가도를 보여주는 이미지로 백마가 차용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역사상 이름난 영웅 옆에는  명마가 있었다. 하루 천리를 달리는 관우의 적토마에다 명마를 넘어 충마인 항우의 오추마는 장군을 따라 강에 투신, 주인과 마지막을 같이했다. 그 외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칸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과 함께 한 말 이야기는 무수하다.


예로부터 우리는 북방 스키타이 계열의 기마민족 후예라 칭해졌다. 비좁은 한반도에 갇혀사는 우리가 말잔등에 올라 대평원 장쾌하게 누빈 민족이었다니.... 지금은 언뜻 감이 잡히지 않으나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는 이를 증언해 준다. 서부의 사나이 카우보이보다 더 멋지게 말을 타고 내달리며 몸을 돌려 호랑이 향해 활시위를 힘껏 당겼던 우리 선조들이다. 말은 일찍부터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사냥이나 싸움터에서 사람을 도와주는 유용한 동물이 말이다. 일상생활에서 말의 용도는 빠른 이동 수단 또는 짐 나르는 일꾼으로 도움을 받거나, 수렵 외에도 전쟁 시 군마로 또는 통신용의 역마 등으로 쓰였다.


기녀인 천관녀의 집으로 향하는 용마 목을 벤 김유신 이야기야 다 알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말무덤이 두 곳에나 있다. 한 사연은 경남 산청, 병자호란 당시 순국한 장수의 피 묻은 군복 한 조각을 물고 고향에 돌아와서 울다가 혼절해 죽은 충마의 무덤. 장흥에 있는 의마총은 임진왜란 시 왜적과 항쟁을 벌이다 전사한 의병장 문기방 장군의 말무덤이다. 함께 전장을 누비던 말이 장군의 칼을 물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장군의 죽음을 알렸다. 그 칼을 모셔 장군의 초혼장을 치른 얼마 후 식음을 전폐한 말이 죽자 유족들이 말을 장군의 묘역 부근에 묻고 비를 세워 넋을 위로했다고 한다.

유사 이래 이처럼 친숙했던 말이라서인지 고대 가야 출토유물을 보면 말과 관계된 마구나 말 장식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뿐 아니라 말은 아주 친근한 생활의 동반자였음을 기마인물토기로도 알 수가 있다. 경주 천마총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된 천마도는 안장의 말다래에 장식으로 그려진 작은 그림으로 국보로 지정됐다.


말의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리는 장니를 장식한 말 그림인 천마도의 정식 명칭은 '천마도장니'로 장니는 말다래를 뜻한다. 천마가 꼬리를 세우고 하늘을 달리는 그림은 아마도 신의 상서로운 기운을 표현했으리라. 말이 행운·성공·고귀한 신분을 상징했던 조선시대에는 말 관련 그림에 여러 가지 해석을 붙여 선물로 주고받았다. 장승업의 '쌍마인물도' 윤두서의 '군마도' 이면구의 '유마도' 강필주의 '백락상마도' 외의 단원 혜원의 말 그림은 그렇게 지금에 전해진다.




시에라 네바다 트레일 도중인 우리는 사브리나 호수 아래 계곡가에서 예정에 없던 말을 탔다. 아스펜 이파리 살랑대는 숲 속에 승마 연습장이 있어서였다. 나는 뒷전으로 물러났는데, 말 등도 높이라고 겁이 나 사양했다. 젊은 시절 대구에서 한옥에 살 때였다. 기왓장 바루러 지붕 위에 올라갈 일이 생기면 자연 체중 가벼운 내 차지였다. 아무렇지 않게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흘러내린 기와를 단도리하고 내려왔건만 지금은 의자에만 올라가도 허뚱거리며 오금이 풀린다. 무섭지 않으니 안심하고 친구처럼 말과 하나가 되라고 설명하던 말 조련사의 말도 소용없었다. 내 앞에 대기하고 있던 은빛 갈기의 참한 말은 온순하게 눈 내리깔고 있다가 물러났다. 조련사 아가씨의 도움으로 말에 올라탄 애들은 솔숲 사이로 사라졌다가 한참 만에야 반대편 아스펜 숲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말을 타보니 의외로 겁나지 않더라고 했다. 애들이 말에서 내리자 우리는 다시금 유쾌한 하이커로 돌아갔다.

<주: 운보 그림과 무용총 및 천마도와 아래 기마인물도상 사진은 구글에서>

<흰 원 안이 말다래 또는 등자(stirr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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