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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9. 2024

말똥과 자동차

아침부터 빗발 긋는 날씨라 책이나 읽자 싶어 책꽂이에 다가갔다.

몇 년 전 손주에게 사준 영문판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를 한 장씩 독파(?) 해볼 작정이었다.

책을 빼들자 책갈피에서 사진 한 장이 하르르 떨어졌다.

교우 M이 한의원을 열던 날, 축하 차 방문해서 그가 입주한 건물의 고풍스러운 외관을 담았던 사진이다.(위 사진 왼쪽 이층)

M은 한국 S대 출신 생명공학 박사다.

필라에 있는 제퍼슨 병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겨우겨우 영주권 해결은 했다.

하지만 더 이상 계약직 자리 연장이 되지 않자 귀국을 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취업도 여의치 않은 데다 애들 교육문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꽤나 고심하던 그였다.

마침 음악 교사 출신의 아내가 피아노 교습을 하며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그는 뉴욕으로 갔다.

오십 문턱에 새로운 분야인 한의학 공부를 하고 드디어 자격을 취득해 어렵사리 한방 클리닉을 연 것이다.  

클리닉이 입주한 건물은 유서 깊은 전통거리 올드타운 안의 상가였다.

그 동네는 역사 보존 차원에서 페인트칠 외엔 건물 보수나 내부시설 변경은 물론 못 하나도 마음대로 박아선 안 되는 곳이다.

말톤 올드타운 거리를 죽 따라가며 들어선 주택가 양편 전부 다, 자기 집이라도 서류상의 재산권 행사 외에는 손을 댈 수가 없다.  

개중축 등은 전혀 허락되지 않으며 예전 그대로의 고색창연함을 유지하도록 법으로 완전히 묶어놓았다고 한다.

실내로 들어서면 삐거덕거리는 나무 바닥은 투박하고 현관 손잡이도 뭉툭한 주석에 벽은 회칠이 두텁다.

간판도 따로 달 수가 없어 보는 바와 같이 돌출간판이나 눈에 띄는 선명한 간판이 아닌 창문에 붙인 안내문이 전부.

무엇보다 특이한 건 1780년이란 둥근 놋쇠 표식이 박힌 돌층계를 몇 개 올라가야만 현관문에 이르게 된다는 점이다.


연대로 보니 독립선언을 필라델피아에서 선포한지 사년 후인 당시는 독립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이다.



가든 스테이트라 불리는 숲 푸르른 뉴저지는 독립전쟁 격전지를 품고 있어 미국 역사 속의 유명 지명이기도 하다.  

대륙군이 첫 승리를 거둔 뉴욕 사라토가 전투에 이어 뉴저지 주도인 트렌턴에서도 영국군을 격파시켰다.

가까운 펜실베니아 벨리 포지는 총사령관인 워싱턴 장군이 추위와 기아와 힘겨이 싸워야 했던 고난으로 점철된 전투장소였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명문대학이 있는 뉴저지 프린스턴에서 영국이 고용한 독일 용병대를 대파시킨 것은 1777년 겨울의 일이었다.

당시, 흰 눈을 붉게 물들인 하많은 주검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을 테고 주인 잃은 말은 지향 없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로 집 근처 공동묘지의 묵뫼를 주의 깊게 둘러보면 음각으로 남아있는 1700년대의 생몰 기록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유추컨대 그들은 영국이나 유럽 어디선가 태어나 꿈을 안고 신세계로 건너와 독립전쟁의 와중 혹은 그 전후에 세상을 뜬 것이리라.

그래서인가.

단풍나무숲에 비바람 거센 날 혹은 달빛 은가루로 쏟아져 내리는 밤이면 그때의 고혼들이 주위를 배회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국독립전쟁은 1775년 4월 19일 발발, 1783년 9월 3일 막을 내렸다.

그 사이,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Continental Congress는 미국은 자유국이 되며 영국에서 독립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독립전쟁과 말똥 또는 자동차가 대관절 무슨 상관?

사진 속 건물처럼 왜 구조물을 지상에 바로 짓지 않고 굳이 계단을 쌓아 현관을 위로 들어 올려 높직하게 지었을까, 가 골자다.

홍수가 잦은 지대도, 파충류가 많은 열대 늪지도 아니거늘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이다.

끊임없이 인류를 불안으로 몰아넣는 회의주의자들과 비관론자들의 단골 메뉴는 세기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엄포다.

세계적 기근으로, 행성 충돌로, 온난화 등 기후변화로, 생태계 파괴를 부르는 환경문제로, 석유 등 자원 고갈로, 암이나 에이즈 같은 악성 질병으로, 핵 아마겟돈으로, 심지어 외계인 침입으로 멸망에 이른다고 시시때때로 겁을 준다.

날마다 전해지는 뉴스 역시 희망적이거나 낙관적인 소식보다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졌다거나, 종교 갈등으로 중동에 국지전이 터졌다거나, 쓰나미나 지진 같은 재앙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특종이라며 실제보다 더욱 부풀려 떠들어댄다.

마치 종말론 교회처럼 세상이 당장 거덜 날 듯이 법석을 떨어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날마다 해는 솟았다 지고 돌발적인 폭우 피해나 화산 징후가 포착되었다 하더라도 그러나 지구촌은 여전히 끄떡없이 잘 유지돼 가고 아무 탈 없이 원활히 돌아가고 있다.




어느 화집에서 보았는데,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뉴욕에서는 교통수단인 말로 인한 인명사고가 매년 엄청났다고 한다. (상상도조차 그려지지 않지만)

날씨가 좋으면 말똥 먼지가 시민들의 기관지를 탈 나게 했고 날이 궂으면 말똥으로 질척거리는 도로를 걸어 다닐 수가 없었으며 처리하지 못한 채 쌓이는 말똥 더미로 도시는 역겨운 가스에 휩싸여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고.

자동차가 내뿜는 현대의 일산화탄소 못지않게 당시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꼽혔다는 말똥이다.

상황이 아주 심각할 즈음 그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환경학자가 아닌 기업인 헨리 포드였다.

포드는 1896년 첫 번째 자동차를 완성, 말과 비교될 수없이 빠르고 편리한 자동차 시대의 개막을 예고했다.

그로부터 10년간 두 번이나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포드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 노력해서 누구든지(나만 빼고) 쉽게 운전할 수 있는 편한 자동차 제작을 목표로 연구에 몰두했다.  

드디어 1908년 연초에는 가벼운 강철을 사용하여 몇 대의 시작품을 완성했으며 같은 해 10월 1일 성공적으로 주행시험을 마쳤는데 이것이 T형 포드 차다.


인간은 (....  ) 하는 유일한 존재다.

괄호 안에는 사유, 유희, 창조, 모방, 발전, 혁신, 개척, 발명, 성장, 번영 등이 다 들어갈 수 있다.


그처럼 인간은 생각이란 걸 하면서 일관성 있게 문제 해결을 해나가는 존재다.

어려움에 맞닥뜨리면 좌절한 채 주저앉아 한탄만 하지 않고 더욱더 역동적으로 투지를 불태운다.

줄기차게 앞을 향해 전진해 나가며 난관을 타개 또는 극복할 때까지 거듭거듭 도전하여 마침내 성공에 이르고야 마는 존재다.

위쪽 사진처럼 현관 계단을 높직이 올린 이유는 하나, 그 시대를 풍미한 건축 사조가 아니었다고.

까닭인즉, 당시 말똥으로 길거리가 하도 질퍽댔기 때문에 집에서 나와 곧장 말잔등에 올라타거나 마차에 오르기 전 구두를 더럽히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현관을 말 높이에 맞춰 높게 만들었다고.

말이 운송수단의 전부였던 당시, 기후대가 다른 서부는 어떠했는지 모르나 비가 잦은 동부는 19세기 이전의 주택 양식 거의가 저와 같은 스타일로 고착화되고 일반화되었다는 얘기다.

등짝에 커다란 건전지를 매단 광석 라디오에서 트랜지스터라디오 시대를 거친 내 경우, 70년대 흑백 TV에 감탄하다 화려한 컬러텔레비전에 열광했었고 냉장고 세탁기 도움으로 가사노동은 과거보다 한결 수월해진 게 사실이다.

이처럼 나날이 신기술이 개발되며 우리네 삶의 질은 끝 모르게 향상 진보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이 세상을 하나로 연결해 주고 손안에 든 아이폰이 일상의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 준다.

날로달로 과학문명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놀라운 세상,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어주며 갈수록 인간 수명은 연장되고 여가시간은 널러리하게 늘어났다.ㅁ


물론 반대급부로 치러야 할 혹은 풀어야 할 문제점 수두룩한 현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의 50년대로 돌아가라면 그 시절을 향수로 그리워는 할지언정 글쎄다.

오늘 이 한 장의 사진이 내게 말해준다.

불과 반세기 전엔 SF 소설에서나 봤을까 감히 꿈도 꿔보지 못한 이리 발전된 세상이 도래했으니 좋은 것만 생각하고 느끼며 평화를 구가하는 행복한 나날 만들어 나가라고.
                                                                          

-1790년대 미 수도였던 필라델피아:구글-

-1800년대의 미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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