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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9. 2024

명품족 위에 노노스족(nonos)

지난 토요일 새벽같이 메트로를 타고 엘에이로 갔다. 같은 클래스의 젊은 중국인인 진양과 동행한 길이다. 그녀는 9월에 유학온 하이스쿨 1학년 생 아들이 적응할 때까지만 이곳에 머물 예정, 내년 정초에는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벌써부터 엘에이 구경을 하고 싶다기에 이 오지랖이 기꺼이 앞장을 서줬다. 그녀 엄마가 딱 내 나이와 같다니 딸 뻘인 클래스메이트다.


그간 보아온 그녀는 전형적인 중국인, 소박하게 머리는 뒤로 질끈 묶었으며 항상 운동복 비슷한 검은색 단벌옷차림으로 일 주간의 닷새를 채웠다. 미국으로 자녀유학을 보낼 수준이면 중국인치고는 상류계층이겠으나 사치는커녕 차림새가 그럴 수없이 검박했다. 다만 차는 크라이슬러에 운동화와 가방이 흔히 볼 수 없는 값비싼 제품이란 점만 눈에 띄었다. 최신형 모델의 아이폰을 쓰면서도 시계, 그것도 '누런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게 외려 촌스러웠다고나 할까.



기차를 타고 가며 그녀에게 엘에이 어디를 가보고 싶은 지 물었다. 다운타운?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 미술관? 그녀는 할리우드를 구경하고 나서 샤핑을 하고 싶다 했다. 유니온역에서 내린 다음 시간이 너무 일러 역 건너편에서부터 시청사까지 걸으며 도심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어주고서 지하철을 타고 할리우드에 갔다. 제 차를 몰고 한번 슬쩍 지나갔을 뿐이라며 할리우드에서 그녀는 연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뻔한 거리와 코스를 둘러보고 나자 이번엔 비벌리힐즈를 가자고 하였다. 거기서 살 물건이 있다기에 로데오의 으리뻔쩍 럭셔리한 부티크들이 생각나 내심 의아했지만 그러마고 했다. 우리는 비벌리힐즈로 갔다. 거기서부터 주객이 전도, 가이드 비슷하던 나는 어리바리해진 반면 그녀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아이폰을 연신 두들겨대며 검색을 하더니 오히려 앞장을 서서 여기저기 명품점으로 보무도 당당히 들어가는 거였다. 옷은 여전히 인민복에 준하는 검정 츄리닝(이때만은 트레이닝복이 아님) 패션에 머리는 질끈 묶고서. 그럼에도 진짜 어디선가 돈냄새라는 게 나는 걸까? 명품점마다 깍듯이 우리를 환대했다.



부티크 입구에는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경비원이 무전기용 이어폰을 끼고 꼼짝 않고 서있었다. 검은색 정장을 하고 상점 안을 왔다 갔다만 하는 거만스러운 명품점 직원들은 하나같이 호리호리했다. 그들은 절대로 판촉사원이 아니었다. 고도의 마케팅 전략상 상품을 권하는 역이 아니라 그저 고객을 안내하며 상품을 펼쳐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까르띠에, 베르사체, 에르메스, 프라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등, 그 외 그녀는 이름도 첨 듣고 보는 생소한 가게들을 들락거리다 이브생 로랑에서 맘에 드는 핸드백과 스카프를 건졌다. 가격대는 백이 5천 불에 스카프 7백 불로 도합 5천7백 불 넘는 구매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는 카드를 그었다. 물론 한 푼도 할인은 안 됐다.


더 놀라운 건 매장 안 풍경이었다. 소위 명품들을 둘러보고 구매하는 고객들은 백인보다는 거의 중국인 판이었고 더러 젊은 한국인이나 인도인이 눈에 띌 뿐이었다. 유럽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반증이자 무서울 정도로 도약하는 중국의 경제력을 실감하는 자리였다. 암튼 럭셔리한 매장마다 넘쳐나는 중국인을 보며 왜 너희 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나와서 저리 고가품 싹쓸이를 하냐고 물었더니 중국에선 외제명품에 텍스가 어마어마하게 붙는단다. 그녀가 계산을 할 때 한 직원이 그녀의 시계를 보며 뭐라 뭐라 아떠는 걸 듣곤 눈여겨보니 그녀의 시계는 바로 로렉스 소위 말하는 금딱지였다. 헐!



하긴 세계적 부호인 최상류 층은 직접 샤핑에 나서지도 않을 테지만 아무튼 로데오나 멜로즈 매장에 백인은 별로 흔치 않았다. 물론 요즘은 노노스족(nonos)같이 ‘No Logo, No Design’을 추구하는,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명품을 즐기는 계층이 늘고 있다고 한다. 명품의 대중화에 대한 상류층의 반발이 노노스족을 낳게 했다던가. 여행을 하더라도 너도나도 갈 수 있는 유럽보다는 쉽게는 가기 어려운 아프리카나 마케도니아를 선호한다는 그들. 이처럼 진짜 부자들은 ‘10개 한정판매’ 등과 같은 특별한 물품, 명품 중의 명품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수긍이 간다. 모처럼 고가의 옷을 마련해 우쭐대며 거리로 나갔다가 똑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김 팍 새 버리는 일도 없으니까. 유명인들이 입은 옷은 이튿날로 카피되어 시중에 깔리는 시대라 어쩌면 그들 옷은 일회용품일 수도 있겠다. 당연히 비싸지 않으면 아름답지 않다고 단언하는 그들이다.


노노스족은 가격이야 차치하고 일반 소비자는 몰라보고 이른바 선수들만 알아보는 브랜드를 찾아내 사용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낀다고. 이들에게 샤넬, 루이뷔통, 조르지오 아르마니, 구찌, 프라다 등은 낡은 이름이란다.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발음에 낯선 이름의 보테가 베네타, 다이안 폰 퍼스텐 버그, 바네사 브루노, 스텔라 매카트니, 나르시소 로드리게스, 쿠스토 바르셀로나, 로베르토 메니케티, 알렉산더 맥퀸 등 희귀한 럭셔리 브랜드들을 선호한다나. 거죽 꾸미는 게 뭐 그리 중요해, 사람이 명품이어야지.. 하는 속 빈 강정인 촌사람이야 당근 듣기도 처음인 이름들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이나 일본의 명품관을 중국인 관광객이 지나가면 메뚜기떼가 훑은 듯하다는 기사를 수차 본 적이 있다. 한국인 부자들은 외국 나갔다 오면 친지들에게 화장품이나 혁대 정도의 선물이 고작이나 중국인들은 통 크게 명품백을 안긴다는 소문이 헛말이 아니었다. 오래전 일본인들이 그랬고 한국인이 그러했듯 근래 들어 중국인들이 명품가의 큰손으로 부상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현장에서 보니 진짜 실감이 됐다.


키도 작고 펑퍼짐 보잘것없는 품새인 그들이나 지갑이 부품한 덕인지 최첨단 인테리어로 꾸며진 부띠끄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하긴 몇 년 전만 해도 관광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우중충하니 세련되지 않았더랬는데 이젠 과거의 때깔에서 완전히 벗어나 멋도 나고 피부도 곱고 이뻐졌다. 졸부 행세건 뭐건 이 모든 변화가 귀신도 부린다는 돈의 위력이겠다. 캘리에서 집 사러 다닐 적에 들은 말이다. 중국사람들은 올 캐시로 집을 구매하기 때문에 론얻고 어쩌고 하다가는 맘에 든 집 다 놓친다고. 그들 때문에 캘리포니아 부동산 급등한 것도 맞는 말이고. 세계가 형편없는 중국물건을 싼 맛에 사서 쓰다 버려 쓰레기만 양산시키는 동안 그들은 엄청난 부를 축적해 나갔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녀에게 물었다. 너희 남편은 뭐 하니?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오너로 직원이 5백 명 넘는 회사를 이끄는 찰진 기업인이란 말에 벙쪄버렸다. 그녀 나이 42세, 때마침 며칠 전 1 가정 1자녀를 고수해 온 중국법이 낳으라 하자 자기 남편하고 똑같은 소리를 한다며 환하게 웃는다. 긍정의 뜻이렷다. ㅎ



오늘 핫뉴스 중 하나도 중국의 소비얘기다. 새 물품을 구매하고자 계획한 사람들은 마치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듯 광군절(光棍節·싱글데이) 세일 행사를 기다린다는 바로 그날인 11월 11일. 1자가 네 개 겹치는 날로 중국에서는 '광군제' 즉 독신자의 날이라 부른다고 한다. 약삭빠른 상술이 만들어낸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 행사와 함께 솔로들은 쇼핑을 하며 외로움을 잊으라 부추긴다나. 중국시간으로 11일인 오늘 새벽 0시 정각에 맞춰 광군제 쇼핑 이벤트가 시작되자 주문 액수를 나타내는 전광판의 숫자가 숨가쁘게 올라갔는데 매출액은 단 72초 만에 10억 위안, 우리 돈 1800억 원을 돌파했단다. 이 추세대로라면 오늘 자정까지 목표액 900억 위안을 무난히 달성할 걸로 보인다며 뉴스는 열기를 쏟아낸다.


 2009년부터 알리바바 등 인터넷 쇼핑몰이 동시에 참여하는 대규모 광군제 세일 행사는 재크의 콩나무처럼 쑥쑥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 나간다고. 이는 중국인들의 소득 향상과 맞물린 결과겠다. 지지리 못 사는 나라에서 2016년  현재의 경제대국 중국을 있게 한 등소평은 역시 작은 거인이자 위대한 지도자였다. 그녀도 등소평에게 엄지를 추켜세우며 덧붙인다. 등소평도 프랑스 유학파랍니다! 아마도 그 말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아들을 염두에 둔 듯하다. 자식 키우는 엄마는 그맘때면 기대치가 한껏 높다. 아암~내 자녀만은 최고 위치의 명품 되고도 남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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