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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Apr 29. 2024

욕망과 허영의 바벨탑 그리고 시민 케인

허스트 캐슬

한때 한국에선 대한항공 때리기에 연일 신이 나 있었다.

조 씨 모녀의 싸가지없는 행태야 지탄받아 싸지만, 정권이 주도하는 은밀한 재벌해체의 연장선상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종북좌파 정부 입맛에 맞는 지역 기업인 금호그룹의  아시아나를 염두에 둔 구린 냄새가 저변에서 감지돼서였다.

구호가 좋아 부익부, 빈익빈 타파를  앞세웠으나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 하였다.

편중된 부의 분배를 내세운 정권은 그래서 한쪽의  일방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으며 출발했다 하지만.

남미에서 이미 겪은 바대로 이는 국가경제 파탄을 자초하는 짓거리이다.

사회주의 국가라면 모를까 자본주의 체제를 누리며 왜 하나같이 '있는 자'는 지탄의 대상이어야 하나?

한 가계가 대대로 나라를 통치하던 왕정시대도 있었다.

북의 김 씨 왕조는 인정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애꿎게 몇 년째 시달려온 삼성이 아닌가.

물론 털어 먼지 안 날 구석 없겠지만, 역량껏 일군 재산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부의 세습만은 무조건 타도 대상으로 삼는 현 세태.

알다시피 정치집단과 재벌은 권력과 돈을 맞바꿔가며 서로를 이용해 먹는 관계다.

정경유착 고리를 적폐청산 차원에서 분명히 끊어버리겠다고 호언하나 이건희의 작품인 평창올림픽을 최대로 울궈먹은 현 정부로서는 이래저래 단물 충분히 들이킨 셈 아닌가.



미국 언론 재벌 허스트 가의 성채를 멀찌감치서 건너다보며 한국의 삼성, 한진이 치르는 곤욕을 떠올렸다.

대망을 꿈꿨던 중앙지 사주 홍석현과 비슷하게 민족주의 좌파인 허스트도 1904년 미국 대통령, 1905년과 1909년 뉴욕시 시장, 1906년 뉴욕주지사에 도전했다가 다 실패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편안하게 사업체 굴리며 이름 알리고 성공한 경위도 유사하다.

거짓말도 되풀이하면 진실처럼 들린다, 는 신조를 가진 자가 대통령이 됐다면?


더구나 도덕적 측면에서도 흠결이 많았던 사람이 허스트란 인물이었다.

현재의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팔십 대에 25살 연하와 결혼하며 가십거리가 되었던 것과 흡사한 허스트다.  

허스트 캐슬에서 35살 연하인 영화배우 출신 정부와 할리우드 영화계 사람들을 초대해 연일 파티를 즐기며 지냈던 남자였다.

광산업으로 자수성가한 부친이 1865년도에 구입한 이 터는 부자간에 자주 캠핑을 왔던 곳으로 결혼 후 부인 밀리센트와 다섯 자녀를 대동, 이곳을 캠프장으로 사용하는 전통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캐슬이 지어진 후 부인은 한 번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한다.

허스트 캐슬은  낮은 구릉 꼭대기에 1919년부터 초호화판 캐슬 건축에 들어갔는데, 공사 당시 정황을 살펴보니 피라미드나 이화원 조성에 비유될만한 대역사였겠다 싶었다.

샌 시메온에서 동쪽 Santa Lucia 산맥 한 정상에 지은 스페인 풍의 중세기 성곽 같은 백색 건물 캐슬.

127 에이커에 이르는 대지에 165개의 방이 딸린 집이라니 보통사람 수준으로는 아예 상상불허다.

정원, 분수, 수영장에다 동물원까지 갖춰진 궁전같이 사치스럽고 화려한 대저택인 허스트 캐슬이다.

태평양을 내려다보는 저택의 방마다 허스트가 컬랙션 한 유럽의 예술품들이 조화롭게 진열돼 있어 관람객들로 하여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는데.

사진으로만 보아도 진짜 대단하여, 보는 이마다 한결같이 미사여구를 동원해 탄성을 발한다 하나...

어떤 이는 돈칠갑을 한 허스트캐슬을 구경하며 한 사람이 누린 욕망의 과도함에 욕이 절로 나오더라고.



National Historic Landmark인 이곳의 정식명칭은 Hearst San Simeon State Historical Monument다.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사후 얼마뒤인 1957년, 유족들이 캐슬 관리 자체를 감당할 수가 없어 주정부에 기증해 주립공원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다.

사업가의 후손들답게 캐슬을 기증하는 대신 주변의 어마어마한 토지 소유권을 주정부로부터 받아냈다고 한다.

아무튼 근처를 지나면서도 캐슬 투어는 제외시켰다.

별세계 사람들의 호화판 생활상을 구경한다는 게 괜히 배 아파서가 아니었다.

영국왕실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속 쓰린 선망이 아니지 않은가.

샘내거나 질투 느끼는 대상은 대개 엇비슷한 위치에 있는 경우에나 해당되니까.

매혹적인 자연풍광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바쁜 일정에, 굳이 딴 세상 사람들의 호사취미를 둘러보며 감탄할 시간은 없어서였다.  



그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영화라는 Citizen Kane.

자신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는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에 허스트는 영화제작진을 협박하며 회유하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시민 케인의 개봉을 막지는 못했다.

작가이자 감독인 Orson Welles가 주장한 '표현의 자유' 앞에서는 막강한 언론재벌의 힘도 소용없었다.

시민 케인은 아직까지도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니 오묘하기 그지없는 패러독스가 아닌가.

그의 사후 이번에는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손녀인 패티 허스트에게 일어났다.

1974년 열아홉 대학생인 패티가 몸값을 요구하는 좌파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됐다.

스톡홀름 신드롬의 실례이듯, 피랍 두 달 후 그녀는 총기를 든 은행강도로 돌변한 채 샌프란시스코에서 붙잡혔다.

그녀는 지미 카터 대통령의 특별 감면조치로 7년 형을 선고받은 뒤 출소 후 보디가드와 결혼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런 그녀의 딸이 이번엔 영화배우로 등장하며 매스컴에 올랐다니
허스트 캐슬이 어쩐지 인생유전의 기묘한 전형도 같고 아니면 욕망과 허세를 벌하는 바벨탑만 같았다.

옛 한국 속담에 삼대 가는 부자 없다는 말도 그러나 이 가문의 경우엔 허사일 뿐인가.

아직도 대를 이어 그 후손이 인근 땅의 대지주로 군림하며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초지에 블랙 엥거스와 말을 방목하며 대규모 목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허스트의 손자가 소유한 산 시메온의 허스트 랜치 와이너리(Hearst Ranch Winery)는 그래서 더 유명하다.

부잣집에 쌈짓돈 보태줄 까닭은 없으나 마침 점심때는 되고 마을도 없는 외진 장소라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는 수없이 랜치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이 동네를 지날 때는, 신선한 채소와 육즙 맛이 각별하니 이 집 고유의 햄버거를 꼭 먹어보라는 여러 여행자의 리뷰를 상기하고 햄버거를 주문했다.

하나 가지고 둘이 먹어도 충분할 정도로 그렇게 큰 햄버거는 처음 봤다.

결국 반 이상을 남겨와 집에서 저녁 삼아 억지로 먹어야 했다. (음식 버리면 죄받는다요~)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맛은 글쎄? 하긴 내 식성상 어떤 햄거버를 대령시켜도 다 별로일 테지만. 2018​


https://youtu.be/e9HybvMcGL8?si=GR-U8aIf5NtQ9V1D

https://youtu.be/FejcNO2F2_4?si=Ec1MbTiYsoJHCUgK

구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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