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돌개에서 월평포구에 이르는 구간이 올레 7코스다.
올레길을 차례대로 또박또박 걷기보다는 코스 상관없이 맘 내키는 대로 발길 가는 대로 자유로이 길을 걷는 나.
볼일이 있어 신시가지에 들렀다가 나선 김에 법환포구에서 월평포구까지 걷기로 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을 거쳐 바다를 바라보며 주택가 휘돌아 내처 걸어 내려왔더니 속골이다.
속골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면 자연 생태 흙길인 호젓한 수봉로가 시작된다.
구부정한 소나무가 서있는 언덕을 내려서면 법환포구로 들어선다.
방파제나 갯바위에서는 낚시꾼들이 노래미 우럭 벵에돔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일출 명소인 법환마을은 한국 최남단에 위치한 해안촌으로 한반도에서 태풍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이다.
해녀 체험학교와 다이빙숍이 있으며 잠녀광장에는 해녀 조형물이 서있고 제주 전통배인 테우도 바다로 나가고 싶어 기웃거린다.
바닷물 끌어들여 만든 해녀 마켓에서는 관광객을 상대로 싱싱한 해산물을 팔았는데 파장인듯 적요.
해안가에 있는 직사각형 구조물인 동가름물은 남자 노천탕, 서가름물은 여자들이 빨래터로 사용했다고 써있다.
차가운 기운 감도는 용천수 풍부해 예전엔 식수로도 쓰고 배추도 씻었다는데 지금은 아이들 물놀이터다.
이곳 법환포구는 바다 위에 꽃잎처럼 뜬 범섬, 섶섬, 문섬, 새섬이 한눈에 드는 장소다.
그중에도 범섬은 바로 손에 닿을 듯 가깝다.
범섬은 문섬과 함께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로 보호구역에 속한다.
섬 둘레 해저는 다채로운 바다목장이자 아름다운 산호정원이 신비로이 펼쳐져 다이버들이 열광하는 장소.
하지만 연안 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생활하수의 방만한 관리로, 연안 백화현상이 심화되면서 바다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돼가고 있다고.
섬인 듯 육지의 작은 돌기인 듯 보이는 서건도, 신록에서 녹음으로 향하는 계절이라서인지 왕성한 생명력 활기차 보인다.
서귀포 바다는 어디나 풍광 아름답지만 법환포구 또한 해안선 곳곳에 부려진 화산암 볼만하고 특히 조망권이 빼어났다.
바다로 길게 뻗은 '여' 배염줄이도 독특하다.
짙푸른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검은 여는 징검다리 되어 범섬과 잇닿을 듯 통통통 물수제비를 뜨고 있다.
쉼 없이 밀려드는 파도소리, 잠수복을 입은 해녀가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하는가 싶었는데 해녀학교에서 체험실습 나온 모양이다.
멀리 나가지도 않을뿐더러 잠수는 해도 물속에서 물구나무서서 작업하는 광경은 보이지 않고 허벅만 잡고 물장구질이나 친다.
잠녀생활을 한 제주인은 자식에게 물질을 시키지 않는데 반해 요즘 해녀학교 입교자는 거의가 외지의 젊은 남녀들이라고.
종잡을 수 없는 세태 변화의 바람이 여기에도 불어온 듯.
마을 초입에 뜬금없이 최영 장군 승전비 우뚝 솟아있다.
무슨 사연인고? 기념비 앞의 안내문을 읽어보니 고려 때 역시 골 아프게 만든 이웃나라 몽골족과 관련된 전투 내용이다.
1273년 원나라는 탐라의 삼별초 난을 진압하고 제주도에 군민총관부(軍民摠管府)를 두어 제주를 원의 관할로 삼았다.
탐라가 원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그 기간이 물경 백 년 세월이다.
1277년에는 제주에 목마장(牧馬場)을 설치하고 목호(牧胡)를 보내어 말을 기르게 해 원나라가 직접 경영했다.
1374년 원나라가 스러지고 고려는 명나라와 국교를 트게 되자 명나라는 제주의 말 2천 필을 요구해 왔다.
이때, 몽골족인 목호들은 “우리 임금께서 방축한 말을 적국인 명나라에 보낼 수 없다.”라며 공출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목호의 난(牧胡─亂)이 제주에서 터졌던 것.
'목호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고려에서는 최영 장군을 삼도도통사로 삼았다.
최영 장군을 전라·경상도 도통사로 임명하고 휘하에 전함 314척과 2만 5천여 명의 병사를 보내 난을 평정하도록 하였다.
1374년 고려 공민왕 때 일이다.
최영 장군이 막사를 치고 군사들의 숙소로 사용하여 그때부터 막숙개라고 불렸던 법환포구다.
토벌군에 밀린 목호들은 범섬으로 탈출, 군대와 결사항전을 펼치나 중과부적이다.
범섬에 들어가 버티던 적과 격전 끝에 장군은 마침내 목호 무리를 한점 불씨 남김없이 쓸어냈다.
최영장군 휘하 병사들이 목호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법환에서부터 범섬까지 뗏목을 이어 건넜다는 곳 배염줄이, 바다로 길게 뻗어 물속에 잠겨있는 바위 무리인 '여'를 활용해서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예는 외돌개에도 남아 있으니 당시 외돌개 바위를 거인 장수로 위장시켜 목호들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전설도.
토벌에 나선 장군은 목호를 중심으로 한 몽골 세력을 열흘 만에 완전 소탕하므로 승전기를 드높이 휘날릴 수 있었다.
몽골의 잔존세력인 적을 최영 장군이 물리쳤음을 기리는 기념비가 여기 서게 된 연유다.
제주섬이 몽골에 지배당한 백 년 세월 골똘히 헤아리느라 다음 행선지 월평포구는 그만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