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란 뜻의 황우지 인근 명소

by 무량화


전설 속의 이름난 폭포 그 아래 소(沼) 대부분은 천상 선녀들의 놀이터였다.

날개옷을 벗어서 바윗전에 숨겨두고 선녀들은 목욕재계 후 옷깃 다듬은 다음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

둥그스름 활처럼 휜 해안선이 무지개를 닮아서였을까.

선녀들이 내려와 노닐 만큼 선녀탕이 아름다워서일까.

황우지란 이름이 제주 고어로는 무지개란다.

천상에서 하강하려면 날개옷도 있고 학도 태워주고 구름에 실려서도 강림해 옥같이 맑은 물가에 이르는데.

탐라 섬 한라산 선녀는 무지개를 타고 여기 내려왔던 모양이다.


황우지해안에 내려서면 천혜의 자연 해수 풀장으로 이름도 이쁜 선녀탕이 기다린다.


아기 곰 푸우의 두 귀처럼 생긴 '가릿여'라는 돌섬 두 개가 방파제처럼 솟아있고 그 품섶에 들어앉은 하트형 천연 풀.


우연히도 이번이 황우지에 와본 중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진 상태였다.


그 덕에 이 또한 처음으로, 곰의 귀처럼 기묘하게 생긴 바위까지 진입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반쯤은 네 발로 기다시피 했으나 아무튼.


올 적마다 감탄하지만 투명한 보석처럼 빛 고운 선녀탕은 용암이 빚어낸 진기한 자연 풀장이다.


자연이 빚어낸 선녀탕에는 투명한 아콰마린이 좍 깔려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오묘하고도 신비로운 물색 보일 수 있으랴.


서귀포 도심 바로 옆구리에 거느린 자그만 해안이나 금능 협재 애월 같은 서쪽 해변 부럽지 않게 물색 고운 바다빛 자랑한다.


자연 풀장 이룬 진기한 해암 사이 물빛은 보석 같은 데다 새연교가 건너다 보이는 등 주변 여러 절경지와도 연계되는 이곳.


저 건너 동쪽으로는 서귀포층 깎아지른 단애와 새연교 새하얗게 보이고 그 뒤로 새섬과 섶섬도 보인다.


서쪽 바다에는 고깃배 거느린 범섬 고요히 떠있다.


파도 잔잔해 태평양이 마치 호수 같다.


한라생태숲에 갔다가 날씨 어찌나 심술을 부리는지 구름장과 강풍에 쫓기다시피 서둘러 내려왔는데 서귀포는 이처럼 딴 세상.


서귀포 남녘과 북쪽 한라산 기상도가 이렇듯 다르다니.


좌측으로는 서귀포항의 관문인 문섬이 연꽃처럼 떠있고 섶섬 이마도 드러난다.


물빛 고운 바다 저만치 세연교 막 비상하는 하얀새, 오른쪽으로는 5분쯤 걸어가면 외돌개 우뚝 솟아있다.


해안 벼랑가에는 해송이며 뭇 덩굴식물과 상록수들이 풋풋한 기운을 전해준다.


풀섶 사잇길에 난 85 계단, 약간 가풀막진 층계 내려가려다 멈칫한다.


하필이면 이 아름다운 해안가에 남파 간첩선이 침투하다가 군경 합동작전으로 섬멸되었다고.


열몇 명이 사살되었다니 선녀탕도 핏빛이 되었겠구나 상상만으로도 께름칙해진다.


여러 번 왔어도 황우지에 대한 설명문을 읽기는 처음이다.


아무래도 초입에 선, 무장간첩 소탕한 전적비 내용과 인근 해벽에 뚫린 일제 진지동굴 사연이 기분 뜹뜰 서늘하게 만든다.



그렇듯 아, 어쩌나.


천혜의 비경 품은 여기에도 일제는 12 진지 동굴을 파 놓았다.

삼매봉 남서쪽 해안가 속칭 '황우지굴' 또는 '열두 굴'이라 불리는 인공동굴은 암벽 뚫어 만든 진지동굴이다.

바로 지척거리이지만 해안가 절벽 아래라 가까이 접근할 수는 없다.

그 위험한 바닷가 절벽 밑으로 제주민을 대거 내몰아 동굴을 파놓고는 카미가제식 병력을 키워온 일제.

황우지 해안 열두 굴 역시 일제가 서귀포 해안가 돌아가며 인공적으로 파놓은 수많은 진지 동굴의 일부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에 이르러 일본군은 군사 시설인 비행장, 고사포진지, 비행기 격납고, 진지 동굴 등을 제주에 구축해 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시 일본군이 연합군의 제주도 공략에 대비, 제주도를 전략상 요지라 인식하고 해안가에 진지 다수를 만들었던 것.

카미가제식 훈련을 통해 소형어뢰정으로 자폭하도록 세뇌시킨 다음, 신병과 화천이라는 소형어뢰정을 숨겨두었던 장소가 바로 여기다.

굴은 모두 열두 개이며 각각 15m 안팎의 거리를 두고 절벽 하단에 직선으로 나란히 뚫려 있다.

규모는 높이 약 3m, 폭 약 3m, 깊이 10여 m쯤 되는데 열 번째 굴과 열한 번째 동굴은 내부에서 서로 연결돼 있다고.

이 진지 동굴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당시 제주민에게 강압적으로 시킨 노역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상흔이 남겨진 장소다.

뻥 뚫린 진지동굴이 후대에게 무슨 말인가를 크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정신들 차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요즘은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정국이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이전투구로 지새우는 보수와 진보, 우익과 좌익 갈라치기하며 결국은 정파싸움에 애꿎은 새우등만 터져나가는데.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인 데다 지금도 동서 간, 이념 간, 세대 간, 하다못해 젠더 갈등까지 대두된 채 사회상 혼란스러워 자못 심란스럽다.

과연 이 같은 내부 갈등으로 우리는 오늘도 헛되이 에너지만 소모시킬 것인가.

비극적인 역사의 전철을 되밟지 않으려면 오로지 국력을 키우는데 전력, 통합된 힘을 길러나가야 하련만. 흠!



황우지에서 오분 거리인 외돌개로 향했다.


'바람의 언덕' 바위에 올랐다가 데크로 이어진 해송숲을 지났다.


모퉁이 하나 돌자 갑작스레 해풍이 거세졌다.


절벽 아래 내려다보이는 해변에 파도 허옇게 일어났고 솔바람 소리 쏴아 쏴아!


급격하게 기온이 내려가며 싸하게 추웠다.


외돌개 전망대에서 옷자락 바짝 여민 다음 장갑을 꼈다.


대한민국 명승 제79호, 정녕 명성은 공연히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오십여 미터로 의연히 솟구친 외돌개는 언제 봐도 장관인 절경지다.


비록 홀로 우뚝 솟아있지만 외롭기는커녕 늠름한 그 기상 범상치가 않다.


노을 보러 자주 찾는 외돌개라 어디가 사진 포인트인지 대충은 짚인다.


바삐 사진 몇 장 찍고 오후 햇살 여려진 다섯시 경 외돌개를 떠났다.




*황우지해안이 요즘은 암벽 붕괴 등의 위험 사고를 막고자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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