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신체에 이상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세가 열이지요.
몸이 보내는 첫번째 경고신호가 열이듯, 기계도 탈 나기 직전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더라구요.
불덩이는 과장이고 하여간 몸체가 느닷없이 고열로 끓기에 무슨 문제가 있구낫! 했지요.
지난주 수요일 오후였어요.
셀폰을 충전시켰다 빼는데 평소와 달리 전화기가 달군 돌처럼 뜨거워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하겠더군요.
그래도 설마 했네요.
하긴 그날따라 오전 내내 폰으로 열나게 사진을 찍어댄 터라 과부하에 걸렸나 보다 심상히 여겼지요.
밤에 한국에서 카톡 신호가 와 받아봐도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이 안 되면서 송수신 기능 자체가 먹통이 돼버렸데요.
초기 화면은 멀쩡한데 구글 검색도 불가능하고 메시지도 열리지 않고 사진도 찍히지 않더군요.
이튿날 딸내미로부터 잘 사용하지 않는 집전화로 연락이 왔어요.
급히 물어볼 게 있어 전화했는데 왜 셀폰을 꺼뒀느냐고 냅다 신경질을 부리는 거예요.
이에 질쏘냐, 고장 났다 왜~.
신호가 오는데 받아도 말이 안 들린다며 전화기가 이상해졌다고 쏴 붙였지요.
그리곤 현상태를 소상히 전하며 아주 고장났나보다 했더니 네트워크 다운일 수도 있다면서 일단 껐다가 한참 후 켜보라는 겁니다.
밖에서 일을 하다가 한 시간쯤 지난 뒤 다시 켰지만 그때부터는 아예 화면도 안 나오지 뭡니까.
완전 먹통, 깜깜 절벽에 칠흑 같은 오밤중.
은근과 끈기의 한국인답게 다음날 다시 재부팅을 시도해 봤으나 마찬가지, 그다음 날도 탈이 난 전화기의 침묵모드는 여전했지요.
금욜날 교우분이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도무지 받지를 않아 걱정된다며 달려왔데요.
토욜엔 한동네에 사는 친구 패트리샤도 전화가 불통이라며 무슨 일인가 하고 쫒아왔구요.
기계와 숫자에 약한 천상 고인돌이라 유선전화번호 알려주며 전화기 곧 바꾸겠노라 했네요
이미 인연 끝난 폰은 잊고, 어차피 새로 사야할테니 미루지 말고 장만해야겠다 생각하며 그럭저럭 또 며칠이 지난 겁니다.
사실 까똑! 하며 성가시게 울려대는 카톡소리 안 들려 좋지만은, 무료로 한국과 연결되던 통신망이 단절됨이 아쉬웠어요.
하긴 수시로 하던 시간이나 날씨 체크를 못하는 등등 불편한 점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요.
무엇보다 난감한 문제는 모든 전화번호를 잃게 된 일이었어요.
일일이 써서 따로 간수할 필요 없이 전화기에 한번 입력시켜 두면 자동으로 저장되어 간단하게 꺼내쓸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에 고마워했는데 말입니다.
블로그라는 사이버상에 올린 글이 어느 날 가뭇없이 사라져 버리듯 전화번호도 한방에 다 날아가버린 겁니다.
그러고 보니 아날로그 시대가 오히려 좋았어, 혼잣소리도 했네요.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놓은 전화번호야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 거잖아요.
꼭 필요한 연락처들을 다시 알아보려면 꽤 번거롭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할 수 없다 했지요.
일요일 무심결에 전화기를 켜봤어요,
혹시나 하는 기대감 같은 건 없었는데 그냥 한번 눌러본 거지요.
와우, 이럴 수가...
특유의 신호음이 울리며 짜잔~~ 셀폰 화면이 떠오르는 거예요.
전화기 성능도 온전히 다 살아있고 구글검색도 잘 되고 사진도 멀쩡히 찍히고요.
빵빵하게 충전시켜 둔 폰인데 곧장 배터리 부족이라는 글이 뜨기에 전원 코드에 연결해 놓으며 생각했어요.
되살아나려고 셀폰 저 혼자 용을 써가며 아픈데 치료하고 건강상태 재정비하느라 고생했겠구나 싶어 짠해지데요.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정화 정비해 다시금 회생하는 셀폰의 첨단기능들이 한편 놀랍기도 했구요.
이런 상태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으련만 낡은 세대로선 솔직히 뭐가 뭔지 아지 못하겠네요. ㅠ
암튼 업무상 전화기가 필수인 경우나 성미 급한 사람이라면 벌써 새 기기를 샀을 건데, 별로 급할 거 없다 보니 느긋할 수 있었지요.
그 덕에 전화기 값 벌었어요.
이럴 땐 느려터진 충청도식 '돌 굴러가유~~~'기질도 고맙더라니까요.
급한 승질머리라는 타고난 천성 그래도 느긋하게 눌러준 건 아마도 충청도란 환경이 알게 모르게 물들여준 습이 아닐까 싶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