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귀와 눈부터 맑히시고요, 아랫 사진 접하기 전에요.
사연 들어갑니다.
뉴저지 친구가 지난달 보름께 소포를 보냈노라는 전화가 왔었어요.
메모리얼 데이 연휴 전에 도착하도록 일부러 월요일 일찌감치 우체국엘 갔었다면서요.
올해 따라 사월에조차 눈이 쌓였다던 뉴저지, 늦게 찾아온 봄이라 오월 들어 겨우 햇나물들이 움돋기 시작했답니다.
친구는 텃밭에 움튼 햇부추를 보자 제 생각이 났고 어떡하든 그 맛을 저와 나누고 싶더랍니다.
그 기분 충분히 잘 알고 말고요.
재작년 여름에 수차례 깻잎이랑 풋고추 애호박을 서부에 사는 딸내미에게 부쳐줬거든요.
우편료로 사 먹는 게 훨씬 낫다지만 어디 상품과 비교 가능한가요?
호미로 땅 일궈 씨 뿌리고 물 줘가며 손수 기른 거 맛보게 하고 싶어서이지요.
동부에서 서부 논스톱 비행기로 여섯 시간 걸리는 머나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生物 채소를 부치기로 했던 겁니다.
열이 많은 채소인 부추라 운송 도중에 상하더라도 운에 맡기고 일단 보내 보자는...... 그래도 그렇지 세상에 별 걸 다....
일분일초라도 더 늦게 잘라내야 싱싱함이 유지될 거 같아 새벽같이 일어나 텃밭의 부추를 베었다네요.
이슬 일일이 페이퍼타월로 닦아준 뒤, 한 움큼씩 신문지에 말아서 차곡차곡 담았구요.
머위도 몇 잎 따 가지런히 넣은 다음 차를 몰아서 우체국 열자마자 부쳤답니다.
“첫물 봄 부추 한 단은 피 한 종지보다 낫다” 하였지요.
추운 겨울 동안 영양분을 가득 머금은 첫물 부추는 건강에 아주 유익해 약 삼아 먹기도 하는데요.
“봄 부추는 인삼 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란 말도 있거든요.
실제 보약제 못지않게 몸에 좋아 한자로 기양초(起陽草), 장양초(壯陽草)라 불립니다.
양기 보충하는데 최고의 채소가 바로 부추거든요.
부부간의 정을 오래도록 유지시켜 준다고 하여 정구지(精久持)라 부르기도 하는 부추.
불교에서는 부추가 달래, 파, 마늘, 생강과 함께 ‘오신채’라고 해서 금하는 식품인데요.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는 강장식품이기 때문인가 봐요.
도톰하니 발그레 올라온 첫물 부추는 아들도 안 주고 사위만 준다는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이거든요.
동의보감에 간의 채소라고 기록되어 있다시피 간 기능을 강화시키는 작용도 뛰어난 부추랍니다.
칼슘 철분 칼륨 아연 등의 건강 유지에 도움을 주는 무기 질 뿐인가요.
게다가 베타카로틴. 비타민 B2, 비타민C 등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지요.
특히 부추에서 매운맛이 나는 알릴 화합물은 항암작용을 하며 정장작용도 돕는다네요.
때문에 부추 한 줌이면 백 년 묵은 체증도 가시게 한다 할 만큼 여러모로 효능이 뛰어난 식품이지요.
첫물 봄 부추를 베어 보내며 사이에 온갖 씨앗도 끼워 넣었다는 전화를 받고 날마다 우체부 올 시간만을 기다렸지요.
소포 받기 전부터 미리, 절간 풍경소리같이 맑은 친구의 사랑을 고마이 가슴에 품어 안았고요.
목요일 그러니까 21일쯤엔 도착하리라던 소포는 금. 토가 지나고 연휴가 지나고 그다음 주말까지도 감감무소식.
우편물 배달 사고가 분명했어요.
소포를 보낸 친구가 우체국에 가서 정황을 얘기하니 좀 더 기다려보라는 말만 되풀이하더랍니다.
그렇게 또 한 주가 지났고 우린 날마다 전화만 주고받았지요.
소포 덕에 자주 통화하니 그도 좋네, 농담도 하면서요.
그쯤 이르자 부추는 포기했어요.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완전히 상해서 액상이 되었을 테니까요.
혹시 그로 인해 다른 우편물까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손해배상할 일이나 생기지 않으려나 슬그머니 걱정도 되더군요.
정확히 소포 내용물이 규정 외의 것이니 우체국에 따지고 들기도 뭐 하더라구요.
트래킹 넘버로 조회해 보면 소포는 수집에서 배달까지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항상 확인할 수 있는데요.
깜쪽같이 증발 돼버린 소포를 그냥 기다려 보라니 마냥 기다리기만 한, 어리숙하다 못해 참 순해 빠진 모지리 었지요.
친구한테는 그 마음만으로 고맙고 먹은 거나 진배없다 하면서 늦게라도 와주면 씨앗이나마 건질 텐데.... 했지요.
근 한 달이 돼가자 소포는 사실상 잊고 있었는데 학교 갔다 와보니 현관 앞에 웬 낯선 박스가 놓여있더라구요.
한 겹 비닐을 덮어쓴 데다 밑받침 삼아 우체국 플라스틱 통에 담긴 채로요.
그야말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민망한 듯 머쓱하니 앉아있는 소포 상자.
인근에 희한한 냄새가 번지면서 파리는 날아다니고 포장 박스는 후줄근한 상태이고......
그동안 어디를 어떻게 돌다 왔는지 차마 직접 손을 대기도 께름할 지경으로 형편없이 더럽혀진 몰골이더라구요.
상태로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었지만 정성껏 포장해서 보낸 친구의 성의를 봐서라도 개봉은 해야 했네요.
위험물 처리반처럼 비닐장갑을 낀 다음 예리한 카터로 윗부분을 자르자 역한 냄새가 풍기더군요.
자잘한 날파리에 애벌레가 눈에 띄고 물건을 쌌던 신문은 암갈색 덩어리로 변해있었지요.
그나마 지퍼백에 넣어 보낸 씨앗은 형체가 온전하더라구요.
마당에 꺼내놓고 수도 호스를 대 한참 샤워를 시킨 다음에 수습한 씨앗들이라 더 귀했어요.
정신 번쩍 나게 매운 친구네 텃밭 빨간 땡초도 통째로 하나 '씨'하라고 보냈더군요.
상추씨에 시금치씨 배추씨 흥부 박씨까지 각각의 봉투 안에 들어있더군요.
얼른 사진 몇 장 찍어 전송하곤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요.
호노리나 씨~드디어 왔어, 소포가 막 도착했다구...근디 우찌 이런 일이... 쩝!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