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토인비

1995

by 무량화


벌써부터 책을 솎아내야겠다고 벼르면서도 차일피일 해를 넘기곤 했다. 곰팡내가 날 정도는 아니지만 꽤 오래 묵혀두었던 책을 꺼내 들었다. 아널드 죠셉 토인비의 <대화>였다. 일찍이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반대하거나 논란을 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하지 말라. 그렇다고 무조건 믿거나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도 독서를 하지 마라. 생각하고 연구하기 위해서만 독서를 하라. <대화>를 읽으며 불현듯 이 뜻이 상기되었고 비로소 그 의미를 곰곰 음미해 볼 수 있었다. 과연 이 책은 나로 하여금 인생의 많은 것을 보다 깊이 그리고 폭넓게 생각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우리의 마음 바닥에 상존하고 있는 생의 욕구 그리고 목적과 의의 나아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인간의 제반 문제에 대해서까지 광범위하게 토의하고 있는 <대화>. 대화는 인간이 존재하면서부터 있어왔다. 서로 마주 보며 나누는 이야기인 대화. 그러나 점점 대화가 없는 가정, 대화가 없는 사회가 되어가며 여러 병리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즉 소통의 창구가 폐쇄된다는 것은 상호 간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에 따스한 이해와 사랑의 유대감이 회복되길 바라는 것은 비단 나만의 소회는 아니리라.



우리는 저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다. 절대 知子였던 그는 시정을 두루 헤매면서 대화를 통한 독특한 문답법으로 상대로 하여금 자기의 무지를 자각시켜 그 자각에서 출발하여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보편적인 지식 도덕에 도달하게 하려 힘썼던 소크라테스였다. 그렇다면 20세기 석학 토인비와의 대화는 무엇일까. 이 책은 1971년 일본의 한 교수가 오늘을 사는 보람, 삶과 죽음, 사랑과 성, 학문과 교육, 현대의 과제, 미래의 전망, 젊은 세대에 대한 기대 등 주제별로 질문하고 노년의 토인비가 대답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현대의 과제> 부분에 중심을 두고자 한다.



현대인은 파우스트적 인간이라고 독일의 슈펭글러가 말한 것처럼 무한을 추구하고 만족을 모르는 탐욕과 정서적 불안정감으로 상징되는 현대인. 거기에 대기오염 같은 환경문제, 범죄증가, 주택난, 교통전쟁 등 인구의 과밀화가 초래한 심각한 현상들. 이처럼 현대를 사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도의 기계문명, 팽배한 도시화 속에서 느끼는 정신적 기아감, 인간과 자연의 불균형에서 오는 세기말적 위기감 등이 <현대의 과제> 난에서 집중적으로 토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겪는 당면한 문제 중 급변하는 가치관의 변화로 인해 수시로 경험하고 있는 모순과 대립 그로 인한 갈등 등 현대인의 고뇌의 본질을 분석 규명하여 적절하게 균형시키고 융화시키기 위해 뛰어난 사상가의 전반적인 조언이 필요하다고 느낌은 나만이 아니리라고 본다.



토인비(1889-1975)는 영국 명문가 출신의 경제학자이자 역사가이며 문명비평가이다. 역사상의 여러 문명을 비교 연구하고 그 발전과정과 생성붕괴의 원인 설명을 통하여 문명 형성의 일반법칙을 세운 토인비. 그의 문명사관은 도전에 의한 응전으로 집약되며 그는 <역사의 연구> <시련에 선 문명> 등 역사론 문명론의 문제작을 남겼다. 특히 "인류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 라 정의한 아놀드 토인비. 인류사회의 흥망성쇠는 그 사회가 직면한 대내외적 도전에 대해 어떻게 응전했느냐에 따라 좌우된다고 하였다. 나아가 "좋은 환경과 뛰어난 민족이 위대한 문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라며 이에 메기효과를 비유해 설명한 바 있다.



오늘날 고도 산업사회로의 가속적인 발전과 풍족한 번영에서 우리는 수많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성의 물질적 측면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한 수단에 지나지 않고 정신적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물질은 우리에게 봉사하는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것이 곧 인간인 것. 항용 진보에는 선과 악 각 두 개의 측면이 따른다. 정신적 진보는 순수한 은총일 수 있으나 물질적 진보와 어울린 정신적 진보를 달성치 못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재난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가 지금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 중의 첫째는 우선 참된 인간성의 회복이다. 그와 함께 인생의 목적 내지 삶의 보람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의 혼돈도 심각한 수준. 이상과 현실의 괴리 혹은 단절에 직면했을 때 갖게 되는 불만과 갈등도 적지 않다.



인간이 최초로 의식에 눈 떴을 때 첫번째로 시도한 것이 자연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한 인공적 환경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것을 기술의 진보라 하여 이미 석기시대에도 돌을 깎아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산업혁명 이후 비약적인 기술발전으로 인간의 생활은 눈부신 변혁을 가져왔다. 곧 산업혁명의 특징이란 물리적 원동력으로서의 인간이나 동물의 힘 대신 에너지를 활용하여 산업의 가속적인 발전을 꾀할 수 있게 만든 것. 그리하여 힘든 자연육체노동이 단순도시노동 형태로 바뀌어짐과 동시에 시간이 남아돌게 되고 그 공백 혹은 여백 처리에 익숙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긴장이 가중되며 정서적 불안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새로운 인공환경의 노예가 되어갔다. 마치 달리의 그림처럼 인간은 무기력감에 빠져들 뿐 아니라 점차 육체노동은 물론 두뇌노동까지를 포함한 인간의 ‘일거리’가 기계에 의해 침식당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기계에게 넘겨 이제는 하릴없이 남아도는 우리의 시간과 정력과 노력을 쏟아부을 곳은 어디인가. 이처럼 인간의 정신면이 무한한 활동의 여지를 갖게 되므로 여기에서 의학 연구와 우주 개발을 시도하게 되고 또한 한층 차원 높은 사상 예술 종교의 꽃이 피어날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찬란한 문예부흥기가 도래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의 정신적 요구는 한이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존재하고 있는 최고목적이며 인간구원의 길이 되기도 하니까. 우리가 선택한 인류의 명칭은 호모 파베르(工作人)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이듯 기술자로서 최고의 영역을 확보한 인간은 이제 정신적인 면에 빛나는 성공을 거두어야 할 차례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듣는다. 인간은 자연의 한 구성 부분이며 물론 부분 이상의 존재이지만 역시 자연의 일부. 이에 대한 진지한 자각이 선행되어야 하며 그러므로 자연에 대해 정복의 자세가 아닌 외경의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무계획 무제한으로 정복하여 공업화 도시화를 급속도로 진행시켜 왔다. 인간에게 정서적 안정과 평화를 안겨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점차 사라져 가는 대신 우리는 환경오염을 비롯한 각종 공해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발등의 불이 된 지구온난화 문제, 스모그 현상 등의 대기오염, 폐수로 죽어가는 하천, 농약에 오염된 먹거리, 비료를 과다하게 사용하여 약화되는 지력 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공업화 사회의 은혜 이상의 비싼 대가였으며 자연의 무서운 보복이었다. 인류의 역사는 환경과 생명의 어울림이다. 그러나 인간은 가공할 과학의 힘으로 자연의 질서를 파괴시켰고 자연은 이제 악의 찌꺼기를 본래의 순환작용에 의해 다시 인간에게 되돌려 보내고 있다. 결코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 자연의 지배자이며 만물의 영장이라 뻐겨보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인 까닭이다.



그 밖에도 대화를 읽으며 현대지성을 대표하는 냉철한 토인비에게서 온화한 인간미를 곳곳에서 느꼈던 점이 나름의 큰 수확. 손자와 증손자가 살아가야 할 2천 년 대의 세상은 우리 자신의 삶이 아니라도 그들과의 관계에 의해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연대감에서 풍기는 자애로움이 느껴졌다. 사랑은 내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유일의 신이며 사랑의 절대적 가치가 삶을 값지게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그리하여 사랑에 의해서 자기 중심성으로부터 해방된 성 프란체스코, 증오심 없이 저항할 수 있었던 간디, 깨달은 자로서의 석가를 존경한다는 토인비. 죽음과도 화해하며 가장 좋은 벗으로서 죽음을 맞길 바라는 그였듯이 평화로운 임종을 맞았다는 그. 지적 인간인 동시에 정신적으로 풍족하고 따뜻했으며 진실로 자연과 예술을 아낀 이 시대 위대한 학자 토인비. 그와의 만남이었던 대화를 읽으며 인류의 미래에의 청사진은 보다 밝고 긍정적이리라고 판단이 되었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는 우리에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진보해 나가는 필연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1995



*오래전의 독후감을 꺼낸 이유는 작금의 심각한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 더구나 이천년대 이전 공상과학영화에서나 접했던 AI 시대를 맞은 지금은 2025년. 실제로 AI와 함께 경이로운 세계를 경험하노라면 잠시 현재라는 시공간이 모호해진다. 아니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린다. 그건 경탄에서 오는 흥분이 아니다.



https://youtu.be/D6xoPw4LRoI?si=Xh4jYEK94s3gL4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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