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집과 일터를 오가는 길목에 규모 큰 Nursing Home이 있다. 주차장에 차는 빼곡히 들어차 있어도 내왕하는 인적의 자취는 거의 없고 무기력에 가까운 적요만이 깃들어 있는 곳. 뽑힌 채 시든 풀만 같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공간임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듯 오래된 박제품처럼 모든 생기가 거두어질 수도 있다니. 너싱홈 주변은 사람 흔적이 끊긴 폐가와도 같고 잊혀진 고분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나마 반짝 활기를 주는 건 자주 오가는 앰뷸런스 소리다. 병상의 연로한 분들이 많다 보니 자연 구급차 출동이 번다한 모양이다.
아침나절 그곳 정원가에서 모처럼 흐뭇한 정경을 접하자 일부러 잔디밭 가로질러 가까이 다가갔다. 액자 안에는 노부부가 담겨있다. 링거 병이 매달린 휠체어에 의지한 할머니는 무표정하나 휠체어를 밀어주는 할아버지 얼굴 가득 온화한 미소가 번져있다. 귀찮다거나 싫은 기색 전혀 없이 여름 햇살을 가려주는 골프용 큰 양산을 받쳐 든 채다. 가족 혹은 부부란 이런 것 아닐까.
한번이라도 그곳을 방문해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실내 공기가 뻑뻑하니 텁텁한 지를. 따라서 침상을 벗어나 맑은 바깥 대기를 쐬는 것만으로도 얼마쯤은 기력이 회복될 성도 싶다. 그러나 개중엔 일 년 내내 바깥 구경은커녕 아무도 찾는 이 없는 노인네도 있다 한다. 물론 자녀와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모른 척 방치시킨다니 팽배한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탓해야 할까.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치게 마련인 생로병사의 질곡. 세상에 태어나 한바탕 울고 웃다가 너나없이 늙고 병들어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사. 갈수록 노인 인구가 늘어가고 있다. 미국은 특히 질 높은 사회보장제도와 의료 시스템 덕으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점차 높아만 간다. 따라서 현역에서 물러나 은퇴 노인으로 살아갈 시간이 한층 길어지는 것이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노년이라면 별문제. 허나 대체로 나이 들어감에 따라 신체기능은 떨어지고 이런저런 성인병에 만성질환 등 여기저기 탈이 생긴다. 평소 건강관리를 잘했다손 치더라도 예고 없이 불쑥 들이닥치는 병마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나이 들어갈수록 자기 건강에 대해 큰소리치며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특히 의료체계가 좋다 보니 암이나 심장마비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노환은 지지부진 상태로 오래간다, 그러나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였다.
냉소 어린 노인 십계명 중에는 재산을 죽을 때까지 꼭 움켜쥐고 절대 자식들에게 양도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물려주는 날로 종이호랑이가 되어 힘없는 뒷방 노인네 신세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가 복음서에도 나와 있듯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노년의 모두가 두려워하는 중풍이나 치매가 왔을 때 과연 재화가 얼마나 한 몫을 하던가. 병원비 구애받지 않고 간병 도우미를 쓸 수 있는 외에는 재물도 별 힘이 되는 게 아니다. 대단한 자산가였던 외가 친척도, 막대한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준 한 선배도 병상에 눕자 왜소하니 약하고 초라한 환자일 뿐.
한국에서는 역모기지론이라는 금융상품이 관심을 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연금방식으로 지급되는 노후생활자금인 셈인데 노부부가 소유 주택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맡기고 월 일정액을 연금처럼 평생 받아 가며 살아가도록 한다고. 부부 모두가 만 65세 이상이어야 가입 가능하고 소유 주택이 3억짜리 라야 월 86만 원을 지급받게 된단다. 3억에 해당되는 집이 있어봐야 매달 수령액은 기초 생활비 정도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부부가 의좋게 해로한다 해도 종국엔 하나가 먼저 노환으로 몸 져 눕게 되거나 앞서 세상을 하직하게 된다. 만일 중병이 들었을 때 그 돈으로 의료비를 대기엔 태부족. 더구나 혼자 남은 외로움이나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을 견디어 나가는 데 있어 돈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까.
한때는 토인비조차 한국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무엇보다 부러워하였다. 그즈음만 해도 삼대가 한 집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흔했으나 지금은 문자 그대로 핵가족 시대다. 나이 든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당연한 도리라 여기는 자식도, 자녀를 노후보장 보험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는 부모도 이젠 별로 없다. 점차 변해가는 세태 따라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늘어가는 추세다. 세월이 그러하다 보니 역모기지론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너싱홈이 생경스러운 단어가 아니다. 누군가 좋은 것을 놓아두고 가는 것이 늙음이라 하였던가. 놓아버린 것에 애면글면 집착지 말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손 툭툭 털고 걸어가는 의연함, 노추는 절대 보이지 말 일이다.
어젯날에 청춘이더니 오늘날에 백발 되고…. 옛시조 그대로 인생의 봄날은 아주 잠깐이다. 서서히 생의 노을녘, 가을짬에 이르러 뒤돌아보니 이룬 것 별로 없이 곳간은 비어있고 가벼이 빈손만 허망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뛴다고 뛰었건만 내세울 것 하나 없이 그동안 나는 무얼 하며 살았나 싶은 자괴지심. 너싱홈을 자주 지나다니다 보니 그런 걸까. 나이가 드는 징조일까. 사실 아직 노인으로 분류될 연배도 아니고 노후 걱정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닌데도 요즘 자주 ‘시듦’에 대한 묵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듦조차 살아있음의 한 현상. 생각하고 숨 쉬며 세상에 나 아직 존재하고 있다. 감사할 대목이다.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 이는 금아 선생의 <이 순간>이란 시 한 부분이다. 엊그제 신문에서 또 다른 노시인을 만났다. 베레모 비스듬 쓰고 구순에도 시집을 내며 활력 있게 지내시는 황금찬 시인의 근황 사진은 하나의 희망이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