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그만 민달팽이

by 무량화


근자 민달팽이 세대라는 낯선 신조어를 접했다. 마이홈을 꿈꿀 상황이 안돼 집을 지니지 못한 젊은 세대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청년실업층이 증가하면서 캥거루족이 되거나 부모에게 얹혀살 여건도 못되면 이같이 주거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데. 팍팍한 현실 여건이 그러하다 보니 처지에 맞게 지하 방이나 쪽방촌 같은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섧다 섧다 해도 집 없는 설움만큼 아린 게 없다고들 한다. 하소연 늘어놓거나 푸념하며 한숨짓는 사람들은 셋방살이에 지친 이들 만일까. 가뜩이나 심란스러운 판에 요샌 집값까지 들썩거려 집 없는 청춘인 민달팽이족 심사 뒤숭숭. 하긴 국내외 정세도 어디랄 거 없이 심히 요동치며 어수선한 판국이다.


몇 해 전 스페인에 갔었다. 카미노 걷는 길은 대개 동트기 전부터 열리기 시작한다. 숙면을 취했으니 개운한 심신, 세수만 마치면 알베르게를 뒤로 한다. 부지런을 떨며 배낭 짊어지고 기분 좋게 출발, 바깥 바람은 신선하다. 희뿜하게 여명이 밝아오면 벌써 청량한 새소리 들려온다. 잔바람결에도 뒤척대는 풀잎이라 이슬 흘러내리며 방울마다 습기를 퍼뜨리는가. 고사리밭 같은 양치식물 우거진 숲 근처이거나 안개라도 자욱하게 깔린 날이면 눅눅한 기운에 숨이 다 찬다. 쾌적감을 주는 알맞은 습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습도도 높다. 꿉꿉함을 싫어하는 건 빨래만이 아니다.


반면 그런 환경이라야 살아가기 좋은 존재도 더러 있다. 습하고 어둑신하면서 축축한 풀 그늘 같은 곳을 좋아한다. 새벽같이 깨어나 시골길을 걷다 보면 풀섶에서 기어 나온 민달팽이와 자주 만난다. 길을 건너다 비명횡사당하는 민달팽이도 흔하다. 청정지역에서 살기에 환경오염을 측정하는 주요 지표라는 민달팽이. 초식성이지만 잡식성이라 자연의 청소부 역할도 한다고. 완전 슬로모션, 그럴 수 없이 굼뜨고 느린 동작으로 기어가다 변을 당한 민달팽이. 앞만 보고 걸어간 누군가는 자기 발에 무언가가 밟혀 짓눌린 줄도 모를 터다. 아주 예민한 사람일지라도 두터운 등산화 바닥이라 거의 감이 전해지지 않는다. 껍질 있는 달팽이라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 웬만큼 둔감해도 발아래에서 벌어진 사태를 느끼련만. 그러면 모르고 그랬어, 정말 미안해,라고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할 텐데.


민달팽이 다른 식구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는 한 가족 생각하며 시름에 잠겨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집안의 나이 든 윗어른일 수도, 가정을 책임진 가장일 수도, 알뜰살뜰한 엄마일 수도, 한창 자라는 아이일 수도 있다. 저마다 다 한가정의 소중한 구성원 중 하나, 있으나 마나 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해서 한 생명체가 우주에서 사라진다는 건, 존재의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무작정 가슴 먹먹해지는 일이다. 목숨의 무게가 결코 가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저세상 별이 되고 혼은 나비가 된다 할지라도 크게 위로가 되질 않는다. 배낭 짊어지고 새벽길 휘적휘적 걸어가며 주제 묵직한 삶과 죽음을 묵상한다. 카미노길에서나 가능한 통찰은 아니겠지만 이 맛에 걷는지도 모르겠다.


민달팽이는 각질의 두꺼운 껍질(자신을 보호해 줄 집)이 없는 연체동물이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무방비 상태로 태어나 오직 머리에 난 두 개의 뿔 안테나에만 의지해 살아간다. 땅바닥에 납작 붙은 채 꾸물거리며 느릿느릿 기어 다니는 민달팽이. 외양은 거무죽죽하고 징그럽게 생겼지만, 성가신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과감히 퇴행진화(!) 하다니 용감무쌍한 달팽이 아닌가. 대신 외투막이 두터워지며 몸이 마르는 걸 방지하려 점액 분비를 많이 한다. 끈적거리는 그게 또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로 작용하는데 자기가 지나간 흔적을 남겨놓기 때문. 민달팽이 피해를 입는 농가에서는 그 족적을 좇아가 잡아낸다. 퇴치 방법이 바로 그 흔적에 있다니 아이러니다. 하긴 아이러니한 세상사가 어디 한둘인가.



자신의 족적에 걸려 넘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그로 인해 곤욕 치르는 어떤 고위 정치인의 작태를 보나따나. 과열로 치닫는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양상 역시 아이러니의 극치. 뚫을 수 없는 방패와 뚫지 못할 것이 없는 창 같은 세사가 현실이라니 웃프다. 창밖 가득 부옇게 밀려드는 해무로 건너편 빌딩 자취도 숨겨졌다. 도시 풍경은 유적지마냥 희미하게 가라앉아 낯설디 낯설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안개 깊은 기상도처럼 글도 횡설수설 뜬금포, 캥거루 족에서 민달팽이로 이어지다 개갈없이 끝나려니 왠지 미진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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