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대신 새소리 여울지는 엉또폭포

by 무량화


내리 이틀간 우중충한 날씨였다.

밤에는 제법 세찬 비가 내렸다.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동터오는 하늘엔 구름층도 별로 없었다.

폭우 왕창 내린 뒤라야 폭포가 쏟아진다는 엉또폭포가 궁금해졌다.

진작에 깨어난 한라산은 목욕재계한 정갈스러운 자태였다.

첫차를 탔다.

신시가지에서 내려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갔다.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게 정비된 주택가를 한참도록 걸었다.

산기슭 제법 올라온 듯 돌아서보니 저 아래 월드컵 경기장 지붕이 보였고 얼마 후엔 강정바다가 또렷이 드러났다.

걷다가 숨차면 자주 뒤돌아 바다를 잠깐씩 지켜봤다.





근처 4백 미터 급 고근산오름은 보통 산책 삼아 동네 뒷산처럼 오르는 산인데 그 서쪽에서 떨어진다는 폭포는 종무소식이다.

강창학종합경기장도 지났건만 어디가 어딘지 오리무중, 내처 안갯속을 부유하는 듯.

이른 아침부터 술래잡기할 기분은 아닌데 폭포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놀이를 하는 중이다.

앞마당 빗질하는 식당 주인에게 엉또폭포 가는 길을 묻자 "에이~이 정도 비 가지고는 폭포물 안 내려와요." 한다.

이왕 나선 걸음이니 그렇다고 중도 작폐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새로 들어선 주택가가 끝나자 비탈길 오르니 농장지대가 나오며 조붓한 산골길이 이어졌다.

근처 도로마다 물이 흥건히 고여있었다.

조심조심 물길 건너뛰며 옳거니! 쾌재를 불렀다.

길섶에서 달팽이도 유독 자주 눈에 띄었다.






폭포 쪽으로 바삐 내닫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우렁찬 폭포 아니라도 실줄기같이 내리는 폭포 기다릴지 몰라서인지 다들 잰 걸음새였다.

엉또폭포 이정표가 나타나기 시작한 건 그때쯤이었다.

이어지는 농장 뒤편으로 범상치 않은 웅자 드러내며 깊은 숲이 펼쳐진 것도 그때부터다.

십 여분 더 걸어가자 비로소 엉또폭포라는 큼직한 팻말이 보였다.

제주말은 같은 한국어라도 번역이 필요할 정도다.

엉또의 '엉'은 암벽 아래 움푹 들어간 바위그늘집보다 작은 굴을 말하며 '또'는 어떤 장소의 입구를 뜻하는 것이라고.

폭포가 있으면 응당 물줄기 흘러내려갈 계곡이 따를 터.

역시나 계류 힘찬 물소리가 들렸다.

마구 뒤엉킨 바윗돌 사이로 물이 흐르는 내는 악근천이라고 했다.



갈수록 점점 더 숲은 울울창창 깊고 짙푸르러 졌다.


빨려 들어가는 듯한 숲 속 데크길을 걷는데 아득한 벼랑에 난 잔도라도 걷는 느낌이었다.


수풀이 하도 무성해 이끼 잔뜩 낀 데크 아래로는 낭떠러지일 것 같아 어서 벗어나고자 종종걸음 쳤다.


도미노 현상처럼 다다다닥 데크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끝 모를 허당인 흑암 속으로 곤두박질쳐질 듯한 두려움 엄습했다.


이는 필시 공포영화를 너무 많이 본 후유증이렷다.


드문드문이나마 산책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데다 햇살 퍼지며 자연은 기운찬 정기를 사방에 뿜어대는데도 불구하고.


어둑신한 데크길이 끝나자 경사 가파른 층계가 기다렸다.


잠시 호흡 고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아직 가본 적 없는 아마존 밀림지대가 이러할까.


몇 백 년 잊힌 계곡이었던 마추픽추 원시림도 이만큼 숲 밀밀하지는 않았다.


난대림 무성한 나무들이 이처럼 너무 조밀하게 들이차서 숨 가쁘게 압도해 오는 울울한 숲은 처음 본다.






간밤의 비로 눅눅히 젖은 계단이라 난간을 붙잡고 조심스레 한 층씩 밟아 올라갔다.


저 아래를 내려다보면 떨리지 싶어 바로 앞 발치만 보면서 오르다 보니 제일 높은 전망대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마주한 엉또폭포 절벽의 위용이라니.


화산섬인 제주도이긴 하나 이처럼 웅장한 암벽이라니! 과연 장관이었다.


경이롭도록 위엄찬 절벽의 기개와 둘레를 감싼 숲이 어우러져 빚어낸 대단한 경관에 입이 벌어졌다.


너무 놀라 어이가 없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거나 혀를 내두른다는 표현을 쓰는데 딱 그 시추에이션!


물줄기 흔적은커녕 젖은 티조차 없는 암벽이지만 외연스런 기세에 눌려 저절로 합장자세가 됐다.


여기다 우렁차게 내리꽂는 폭포수까지 마주한다면 스르륵 기절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래도 여름 장마철에 한번은 꼭 와보고 싶단 욕심은 생겼다.


적막이 깊어서인지 바람도 없는데 나뭇잎 사근대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어난 뭇 새들 지절대는 소리 가득한 숲.



삐뾰르릉~ 찌르르~ 호호이~ 짹짹~ 꾹꾸르~ 호르르~휘파람 같은 소리도 섞였다.



묘하게 기익긱거리는 새소리의 정체는 폭포 절벽에 깃든 천연기념물 323호인 황조롱이(매) 가족들이라고.



새들 노랫소리를 녹음하고 싶은 생각 간절했으나 참고 만 까닭은 전체적 분위기가 몹시 휘휘해 무서워서였다.



연달아 뻐꾹~뻐꾹~먼 데서 아득히 뻐꾸기 소리 들렸다.



어디선가 새벽닭 꼬끼요오~ 길게 뽑아 제치는 바람에 정신 수습해 마을로 발길 돌렸다.



나가는 길 표식 따라 숲길 돌아서자 엉또산장 무인카페, 그 옥상에서는 가물가물 마라도가 보였다.



올 때와 반대로 귀갓길을 잡아 설렁설렁 걷다 보니 월산동 버스정거장이 있었으나 내처 걸어 염돈로에 이르렀다.



여기부터는 아주 낯익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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