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생태숲 나무들 귓속말 들으며

by 무량화


한라생태숲에 자욱하게 비 듣는 오후.

처처에서 싱푸른 나무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형이 피라미드 형태인 구상나무나 우람한 정자목 외에는 거의 모든 나무가 사이좋게 바짝바짝 어우러졌다.

서로 어깨 의지하고 마주 바라보면서.

귓속말이라도 주고받는 듯 우듬지 슬쩍 기울인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나이 든 적송 휘어진 줄기는 옆엣 나무에 그늘 만들어 미안하다며 어깨 다독거려 준다.

보통은 삼 사형제요 대여섯이 가족 이루거나 아예 군집한 나무 공동체도 있다.

그렇게들 모여 푸르른 숲을 이뤘다.

숲길 걷다 보니 눈에 특별히 띄는 연리목도 있었다.

두 그루의 팽나무가 하나로 합쳐진 연리목보다 더 특이한 연리목을 보았다.

수종 다른 고로쇠나무와 때죽나무가 긴 세월,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면서 드디어 하나를 이루었다.

연리목은 두 몸이 한 몸 되는 부부간의 사랑에 흔히 비유돼 사랑나무로 불린다.

그러나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지간 나아가 친구 사이의 우정까지도 아우르는 연리다.

연리란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하는 걸 이르는 단어다.



숲을 바라보다가 문득 성삼문이 남긴 절명시가 떠올랐다.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결연하다.

누구와도 동행할 수 없는 길, 홀로 가야 하는 처형장으로 떠나면서 남긴 시조다.

동시에 겹쳐지는 성서의 장면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주님의 보좌 양 켠에 두 아들을 앉게 해 달라 간청하였다.

이에,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물으신다.

십자가 짊어지고 순교당하는 고난의 잔임을 모르기에 그들은 마실 수 있노라고 장담한다.

충정 어린 제자 베드로가 주님 가시는 길 저도 따르겠다고 하였다.

수난의 길로 걸어갈 예수께서는 누구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하신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다는 것.

지중하기 그지없는 제일 마지막 그걸 던진다는 건.

간밤에 '명량' 영화를 본 까닭이리라.

백설 만건곤해도 낙락장송으로 독야청청, 정정당당하게 서있을 수 있는 나무는 성삼문 그리고 이순신, 지금 이 시대엔 누굴까?

자욱한 빗소리 들으며 숲길 거니는 내내 묵상 깊어질수록 자꾸 어깨 움추러들었다.


스스로부터 되돌아봐져서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서로 부족한 점 채워주며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나무형제들이 전하는 평화의 말 귀에 쟁쟁해서다.

얼마나 자주 성찰하고 수련하고 정진해야 대천 앞바다같이 너른 아량 길러질까.


아득히 멀었다.


차라리 사위 눅눅한 수생식물원에서 오래 맹꽁이 소리 들었다. 꾹꾹 꾹.....


바위도 풀도 비에 젖은 암석원


맹꽁이 꾹꾹 대는 수생식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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