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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9. 2024

페루 나스카 라인과 마리아 씨

세상에서 가장 큰 도화지

언제부터였을까.

페루를 찾아 거대 지상화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나스카 평원을 반드시 한번은 가보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라면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머나먼 장소, 미국에서도 바로 발치 아래인 것 같지만 적도 지나 자리한 곳.

발단은 아마도 여행기에 실린 진기한 사진 한 장, 비행기를 타고 봐야만이 전체 윤곽이 잡힌다는 설명 때문이었으리라.

남미가 어디 붙은 땅인지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작은아버지 댁에서 김찬삼의 세계여행기 통해 그 사진을 본 다음부터 싹튼 호기심이었지 싶다.  

하고많은 세계 각처의 풍물은 물론 별의별 풍광사진 다 제쳐두고 하필이면 왜 나스카 지상화에 그리 꽂혔던가 모르겠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면 따끈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지리부도 펼쳐놓고, 언니와 내가 재미삼아 하던 놀이가 있었다.

번갈아 서로가 호명한 나라나 도시를 지도에서 찾아 재빨리 짚어내는 게임을 즐겨했었던 우리다.

당시야 잘 알려지지 않아 생소한 오만, 예멘, 플로렌스, 오슬로, 상파울루, 서툰 발음 궁굴리면서.

그렇게 아득히 멀고먼 바다 건너 바깥세상을 동경하게 되었던가.  

오랜 세월 갈무려 온 그 나스카 라인을 드디어 만나러 가는 날.

리마에서 당일치기하려니 깜깜밤중 세시에 출발하면서도 불편하긴커녕 꼭두새벽임에도 마음 저으기 설레기만 했다.

회색 스모그 깔려 흐리멍덩한 도시 리마의 야경이 멀어지자 바다도 나타났다가 삭막한 황무지도 스쳤다가 낮은 구릉 어름도 지나갔다.

초라한 마을과 끝없는 포도밭도 재빠르게 조우했다 작별하며, 우리를 태운 택시는 하이웨이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렇게 아침이 열리고 적도의 눈부신 태양이 쏟아져내렸으나 고맙게도 적당히 깔린 구름이 더위를 식혀주었다.  

미국에서 칠레 끝까지 연결된 Pan America 고속도로는 캘리포니아 395 도로처럼 쭉 뻗어나가 지평선이 저 끝 멀리에서 아른거렸다.

내처 달리던 차가 처음 멈춰 선 곳은 허허벌판에 엉성하게 세워진 마리아 라이헤 뮤지엄.

향방도 모르는 허공 어딘가에서 경비행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비로소 나스카에 가까워졌다는 감이 왔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무중력 상태같이 다리가 허뚱거리며 스텝까지 엉키는가 싶더니 말도 어눌해지는 게 아닌가.

중추신경 교란 상태인지 컨디션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게 기분마저 영 요상했다.

편도 다섯 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인 데다 경비행기 투어를 하려면 속을 비워두는 게 낫다고 한대로 착실히 따랐는데?

여행사 권유대로 빈속에다 약국에서 5 솔 주고 산 멀미약을 복용한 후의 부작용 같았다.

쿠스코 고소증도 약에 의지하지 않고 거뜬히 극복했지만 경비행기는 왠지 자신이 없어 미리 대처한 터였다.

미국 와서 십수 년 여를 사는 동안, 타이레놀은커녕 아스피린 한 알 먹은 적 없이 양약이란 걸 처음 먹은 게 멀미약인데 아마도 내겐 너무 셌던 모양이다.

뮤지엄 입구에 비치된 방명록에다 글씨 쓰는 일조차 버거워 벤치에 앉아 심호흡과 스트레칭을 하며 한참을 쉬었다.

그래도 고약스러운 마비증상이 풀리진 않았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건성으로나마 뮤지엄 한바퀴 돌며 사진 몇 장 간신히 찍었다.

이 뮤지엄에서 처음 알게 된 존경스런 이름, 마리아 라이헤. 그 와중에도 미쳐야 미친다(不狂不及)는 말뜻이 오롯이 실감 났다.

450㎢가 넘는 광대한 땅에 새겨진 Nazca Lines에는 그림 길이가 80m에 이르는 콘도르며 188m에 달하는 도마뱀도 있다.

원숭이, 거미, 고래, 벌새 등 동물을 비롯 각종 기하학적 도형까지 수백여 개가 발견됐으며 지난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방법으로 측정 결과, 2천 년 전에서 1천3백 년 전 약 700년에 걸쳐서 그려졌다는 게 정설인 나스카 라인.

1939년 롱아일랜드 대학교수인 폴 코소크가 고대 관개시설 연구 위해 나스카를 비행하다가 지상화를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이미 팬 아메리카 하이웨이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라 나스카 그림이 훼손위기에 빠지자 코소크의 조수로 일하던 마리아는 돌연 나스카 라인 수호천사로 돌변했다.

문명탐사나 해독보다 보존이 급선무임을 세계에 호소해 그림을 지켜냈을 뿐 아니라 나스카 라인을 위해 그녀는 평생을 수도승처럼 지냈다.

아마추어 고고학자로 1946년 처음 연구를 시작해 1949년 첫 연구서를 발표한 후 죽을 때까지 오십 년 넘게 오로지 나스카 지상화 탐사에 몰두한 그녀.

고대인들이 후세에 전할 메시지를 암호화해 놓은 것이라는 가설을 편 그녀 마리아 씨.

허나 10~80m에 이르는 거대한 기하학적 지상화를 누가 어떻게 왜 그려놨는지는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로 추측만 무성하다.

뮤지엄은 그녀가 거처하던 집을 개조해 꾸민 아주 소박한 규모였다.

토기와 미라 등 출토 유물과 타이프라이터며 측량에 쓰인 기나긴 줄자 및 도면 자료 등이 전시된 허름한 연구실은 고양이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그녀가 잠든 뒤뜰에는 동생이 독일에서 보낸 자동차가 녹슨 채 서있었고 햇살에 바랜 듯 누런 부켄벨리아 만발해 외려 삭연했다.

팬 아메리카 하이웨이 우측에 철사다리로 만든 20미터 높이의 전망대에 올라서면 지상화 두 점이 보인다 하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망루에 올라 줄기와 뿌리 무성한 나무 그림과 양손 그림을 보았다.

이 전망대 역시 Maria Reiche(1903~1998) 그녀가 나스카 라인 관찰을 위해 세운 망루였다.

특히나 1955년 정부에서 아마존 물을 끌어와 나스카 대평원에 관개시설을 마련하려다가 그녀의 끈질긴 투쟁으로 무산되었다.

그렇게 나스카 라인은 수장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순전히 그녀 공이다.

"빗자루를 들고 사막을 쓸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노라."며 나스카 보존과 연구에 헌신한 독일인인 그녀.


훗날 페루정부는 훈장과 포상으로 답례했다.


                              ***

전망대 간신히 내려온 뒤 한참을 달려 경비행기 투어 장소에 이르렀을 즈음엔 다리와 혀의 마비증세도 거의 완화됐다.

세스나 경비행기에 오르기 앞서 여권복사, 체중측정을 하고 활주로로 들어가 비행로 안내도와 비행기 좌석 배정을 받았다.

앞쪽에 무거운 사람 뒤쪽에 가벼운 사람이 두 줄로 앉게 되며, 조종사 옆좌석의 부조종사는 조종사 보조는 물론 가이드역할을 맡았다.

조종사 포함 탑승 인원은 총 여덟 명이었다.

사뿐히 비행기가 이륙하자 동쪽으로 펼쳐진 평원은 농사처인 듯 푸르렀고 낮은 구릉, 평지, 물줄기 흐른 흔적이 시야에 잡혔다.

태평양과 안데스산맥 사이에 위치한 나스카평원에는 옛날부터 관개수로가 발달해 일부지역은 농사지으며 거주하고들 있었다.

농지 옆에는 잉카인들의 뛰어난 수리시설 흔적인 달팽이 모양 우물이 수로 따라 연결된 채 또렷이 드러났다.

이 나선형 문양은 현재 페루 관광청에서 페루의 상징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다.(위 사진)

지상화가 있는 곳마다 비행기는 좌우로 날개를 틀며 양쪽 관객 모두 고루 볼 수 있도록 세심히 배려했다.

부조종사는 도표 몇 번과 비교해 살펴보라며 가이드처럼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흔들리는 기체에서 저 아래 멀리 떨어져 있는 희미한 물상을 어림짐작으로 사진에 담느니,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는 기회 잃지 말고 육안으로나마 잘 담아두자고 생각을 바꿨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큰 도화지인 평원에 펼쳐진 나스카 라인 그림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이 무렵쯤 바로 앞 좌석의 금발머리가 멀미를 시작하며 죽을 맛인지 구경이고 뭐고 다 접고는 등받이에 잠든 듯이 기대 있었다.

요모조모 사진 찍으며 미소 짓던 학생 둘은 동시에 코피가 터졌다.

30분간의 투어시간이 아마도 그들에겐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으리라.

멀미약 효과인지 아무튼 나는 다행히 아무렇지 않게 나스카 지상화를 여유로이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쾌청한 기상상태임에도 거칠 거 없는 평원의 모래먼지 탓으로 시야가 맑지 않고 약간은 부옇게 흐려 유감이었다.

화보사진에서 본 만큼 명료하지는 않았지만 저 아래 평원에 입을 헤 벌린 고래, 하이~ 손짓하는 외계인 형상, 나래 좌악 편 콘도르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유물관에서 본 긴 삼각형 무기 모형 등은 대체로 정확하게 보였다.

철분이 유된 암갈색 거무튀튀한 모래자갈 바로 밑바닥이 흰색 석회 땅인 지질이라 그림이 뚜렷이 살아있는 거라고 했다.

더해서 동물이 죽으면 두 시간 후에 미라가 되는 고온건조한 사막지역 기후대의 특성 덕인가 .

연중 강우량이 10㎜도 되지 않는 데다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그림이 오랜 세월에도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다고.

지상 그림에 대한 책 '선(The Lines)'을 출간한 에드워드 라니는 나스카 라인은 다른 이유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즉 천문학적 혹은 시간적 개념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의식절차에 이용된 건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

수백 년 동안 같은 문양을 썼고 다시 덧그린 흔적이 있는데, 신성한 산 또는 물의 근원에 경의를 표하는 행위일 가능성이 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도 새롭게 발견되고 있는 나스카 라인을 왜 고대인들이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불가사의 그 자체다.

연대와 기준에 따라 다르긴 하나, 나스카 지상화 역시 밝혀내지 못해 미완으로 남은 수수께끼다.


그래도 어릴 적 꿈 하나를 이룰 수 있었으므로 나름 유의미한 여정이었다.


https://youtu.be/xJVcbXJU0RU?si=WYEWjfV6PSX9Pm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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