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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10. 2024

지층에 화산탄 무수히 박힌 수월봉 지오트레일


춘삼월 꽃놀이로 들뜬 제주 섬. 연분홍 치마 휘날리듯 벚꽃 난분분한 그 아래 샛노란 유채꽃 어딜 가나 흐드러졌다. 화사한 축제로 불사르는 한철의 꽃 대신, 영원과 잇닿는 아득한 과거의 시간 속으로 떠나보는 여행은 어떨까.

수월봉 지질 트레일 코스를 챙겨 보고자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만 8천 년 전, 바다에서 벌건 마그마가 분출하면서 만들어진 화산체인 수월봉 화산쇄설층을 만나기 위해서다.

유네스코가 섬 전체를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한 바 있는 제주. 그 제주의 동과 서에서 각기 매일이다시피 장엄 풍경 연출해 내는 두 곳 중 하나다. 성산 일출봉에서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는다면 하루를 마감하며 해를 전송하는 곳은 수월봉이다. 그만큼 바다로 스러지는 노을빛 아름다워 일몰 명소로 잘 알려진 수월봉.

정상에 우뚝 선 새하얀 고산기상대 둥근 지붕 일별하고 곧장 영알길로 들어섰다. 좌측엔 나이테 같기도 하고 켜켜이 쌓인 시루떡 단면 같은, 화산재가 만들어 놓은 지층의 속살이 기다린다. 우측으로 난 해안 산책로를 따라가면 당산봉이 나온다.

먼저 지오트레일 안내대로 왼쪽 언덕길로 내려선다. 깎아지른 해벽에 병풍을 두른 듯 펼쳐진 지층의 단면이 예사롭지 않다. 얼핏, 상고시대 유적지에서 고고학 유물 발굴하는 고분터인 양 빗질도 고루 세심하다.

70여 미터에 이르는 암벽의 주름진 지층 새새로 박혀있는 크고 작은 퇴적물인 화산탄 하마 낙석될까 아랫길 걸으며 조마조마.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오늘도 묵연히 차귀도 뒤편 바다로 사라지는 해넘이를 지켜볼 따름인 수월봉 화산쇄설층이다.
                              

                               ***


수월봉은 제주도 내 360여 개의 오름 가운데 하나로 특이하게도 수중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화산체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형성된 수월봉 화산쇄설층(火山碎屑層)은 천연기념물 제513호로 지정된 곳. 화산가스나 수증기, 화산쇄설물이 뒤섞여 빠르게 지표면 위를 흘러가는 독특한 화산재 운반 작용에 의해 쌓인 화산체가 화산쇄설층이다.

특기할 만한 화산체인 수월봉 화산쇄설층은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학술 가치를 지닌 데다 나아가 경관 훌륭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단애에서 화산재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형태의 지층을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산 분출물이 그 신비로운 모습을 백여 미터의 해안절벽에다 봉인시켜 둔 덕분이다. 직접 지표에 드러나 있는 암석층의 노두(露頭)는 세계 최고의 노두로 알려져 있다.  

지층 뚜렷이 도드라진 수월봉의 화쇄난류층은 여러 지질학 및 화산학 교재에도 중요하게 소개됐다. 따라서 세계 지질학계에 '화산학 백과사전'이라 소개될 정도인 곳이기도 하다.

수월봉 화산 절벽은 그 길이가 2 km에 달할 정도로 긴 거리에 펼쳐져 있다. 해안 절벽에는 일제강점기 막바지, 일본군이 미군을 공격하기 위하여 포탄과 화약을 저장해 두었던 동굴 진지가 여럿 남아있다.
자연 해식동굴마저도 예외 없이 같은 용도로 이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일본군은 1944년 미군이 필리핀을 점령하자 제주도의 요새화 작업에 돌입했다. 제주도 내 370여 개 오름 가운데 120여 곳이 그렇게 군사기지가 됐다.

수월봉 갱도 진지도 미군이 고산지역으로 진입할 경우 갱도에서 직접 자살특공대로 하여금 전함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그때나 이제나 차귀도를 띄운 앞바다는 출렁출렁 인당수처럼 깊고 푸르기만.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흰 파도를 완강히 밀쳐내는 검은 바윗전은 한결같이 다 용암(현무암)이다. 엉알길(제주어로 절벽 아래 바닷가에 난 길)을 가다 보면, 응회암 퇴적층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걸 보게 된다. 녹고의 눈물이라 부르는 이 물은 전에는 식수로 사용됐다고 한다.

'수월봉 엉알길'은 이처럼 녹고 물, 일본군 동굴 진지, 화산재 지층과 화산탄, 검은 해변 등을 품었다. 그 언덕 위에는 1만 년 전인 신석기 초기에 형성된 고산리 유적이 자리 잡고 있다.

무수한 일월이 응축된 장엄 지층 바라보노라면 소소한 인간사에 치여 애면글면한 짓이 얼마나 하찮은가, 문득 가슴 웅장해지며 뭐든 용서가 된다. 한번씩 수월봉을 찾는 이유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산 3616-1번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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