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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Mar 09. 2024

거푸 빠져든 책

To Kill A Mockingbird


근래 들어 다시 <앵무새 죽이기>를 읽었다.

하도 많은 밑줄을 그어놓은 책이라, 딸내미로부터 누가 빌려달라는데 빌려줄 수가 없었다며 책 좀 정하게 보라는 퉁을 들은 책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답변이야 지체 없이 즉각 되돌려졌던 건 물론이고. <앵무새 죽이기>야말로 가벼이 빌려 볼 책이 아니라 아예 사서 소장해 두고 한 번씩 되풀이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야,라고.

그런 책으로는, 그간 주저 없이 <인간의 대지> <노인과 바다>를 꼽았으며 당연히 책 선물을 여러 권 하기도 했다. 아무튼 별표와 동그라미를 수없이 그리다 못해 접어놓기까지 한 페이지가 군데군데인 책이 <앵무새 죽이기>다.

1920년 대 후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미국 남부 알래바마의 평범한 마을이 무대다.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지만 그러나 사회계층의 간극이 뚜렷이 존재했던 작은 시골마을에서 생긴 일이다.

어느 지역보다 흑백 갈등이 심각했던 곳이자 흑백 문제로 피차 첨예하게 맞서던 곳으로 맨 처음 흑인 민권운동의 불을 지핀 이 바로 알래바마. 1955년 이미 대중교통 현장에서 인종차별에 대항해 투쟁했으며, 최초로 흑인 여성이 알래바마 대학에 입학하려다 좌절되기도 했던 남부 미국.  그 가운데서도 극히 제한받던 흑인들, 특히 여성들이 권리 신장을 위해 앞장서 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시발점이 알래바마였다.


<앵무새 죽이기>는 미국 고교에서 권장하는 필독서다. 1960년에 출간된 하퍼 리(1926~2016)의 소설로  작가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거릿 미첼과 마찬가지로 단 한 권의 소설만 쓴 작가로도 유명했는데, 사후 <파수꾼>이란 후속작이 출간되기도 했다.

미국의 인종차별과 편견에 희생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사회상을 주제로 삼은 소설이 <앵무새 죽이기>다. 현시대 미국에서 유색인으로 살아본 나 역시 건방지고 불손하게도 이런 편견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함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는 한국인의 고약한 특질 중 하나가 아닐까도 싶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했던 앨라배마에서 법의 정의로움과 인간의 도덕성을 삶의 가치로 두고 사는 변호사인 아버지 에티커스 핀치와 오빠 젬과 함께 살아가는 스카웃이라는 소녀의 성장소설인 <앵무새 죽이기>. 이 책은 한 소녀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2학년까지의 삼 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씌었다.

주인공 스카웃은 학교 교육보다는 오히려 생활 현장 가운데서 삶의 지혜와 교훈을 터득해 나간다. 그가 일상 속에서 배워나간  지혜와 교훈은 바로 남에 대한 배려와 관심, 관용 그리고 사랑이었다. 바로 그것만이 세상을 부드러이 싸 안아 화해시켜 주고 상처 진 영혼을 다독거려 치유시켜 주는 힘을 지녔으므로.

번역상의 앵무새, 원 이름이 흉내쟁이 지빠귀인 그 새는 우리 생활에 해를 끼치거나 귀찮게 구는 새가 전혀 아니다. 이를테면 제비나 까치처럼 익조에 해당하는 새를 제목에 넣었다. 그 당시 남부 사회를 지배한 규범에 따라 아무 해악을 주지 않는 앵무새가 애꿎게 희생당하는 경우를 빗대고자 했음이리라.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줄 뿐인 앵무새를 죽이는 일은 옳지 않다.' 며 공기총으로 새를 겨누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분명한 어조로  타이른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답게 이해할 수 없다고 자녀들에게 말해주는 아버지. 자신의 입장에서 남을 생각하고 판단하기보다는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걸 스카웃은 아버지를 통해 일상적 속에서 배워나가게 된다.

참다운 의미의 숙녀가 되려면 혹은 신사가 되려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는 아버지. 주인공 아버지 말대로 타인, 곧 상대방의 자리에서 건너다보았을 때 비로소 상대편의 모든 것을 바르게 알 수가 있는 것. 이 한 가지 메시지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따라서 누구라도 한 번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정의, 진실의 가치를 거듭 수긍케 해주는 그런 책이니까.

'다수의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양심, 개인의 양심이다.' 관용과 배려로 차별과 편견을 넘어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사회규범을 지키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매 순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아버지. 특히 스카웃의 아버지인 핀치 변호사는 '아이들은 다른 누군가를 쳐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쳐다본다네. 나도 그 애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도록 살려고 노력했고...' 그런 아버지였다.

바라건대 나의 아들이 자녀들에게 그런 아버지상으로 부각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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