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서둘렀군

by 무량화

부산 시내 꽃집에서다.

환히 핀 수국 화분이 쪽 나란히 진열돼 있다.

그렇다면 서둘러 태종대에 가봐야겠군.

지난해 이맘때 태종대에 있는 태종사에서 푸짐하게 핀 수국을 만났던 터.

속으로 결정을 내렸던 대로 이튿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부산역 앞 중국집에서 점심으로 새우 교자를 사들고 자갈치시장 휘리릭 돈 다음 영도다리를 건넜다.

수국을 얼른 보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태종사로 향했다.


태종대 입구 숲 속에 솟아있는 의료지원단 참전 기념비가 마중 나왔다.


그 앞을 설핏 지나칠 수 없음은 현충일을 갓 지나서이리라.


자유진영 각국이 꾸린 유엔군의 활동 덕택에 오늘의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대한민국이다.

6·25 전쟁 당시 유엔의 결의와 적십자정신에 입각하여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나라들.


덴마크·인도·이탈리아·노르웨이·스웨덴 등 다섯 나라의 숭고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76년에 건립하였다.


의료지원단은 유엔군과 국군의 전상자 치료는 물론 난민구호에도 큰 공헌을 했다.


사람들은 종종 은혜도 그렇고 과거사를 쉽게 잊거나 눈감고 살지만.



전망대며 영도등대며 신선바위는 오는 길에 들리기로 했다.

태종대를 빙 둘러볼 수 있는 다누비 열차는 느리기도 하지만 성큼성큼 걷기 좋아하는 사람에게야 해당무.

태종사 입구에서 다누비 열차를 내린 일가족이 나란히 길을 건너온다.

앞장서 태종사에 올라오니 그 자리에 여전히 그 자세로 반가사유상 연화대에 앉아 상념에 잠겨있다.

경내를 휘휘 둘러보았으나 어라~ 너무 서둘러 왔나 보구나.

개화는커녕 수국은 꽃잎 열 준비가 전혀 안된 채 입 꼭 다물고 감감무소식.

이달 말쯤에나 한소식 들릴듯하다.

대신 수국 이파리 비슷한 아담스러운 관목에 여러 색의 꽃이 푸덕지게 휘늘어져 있다.

삼색 병꽃나무다.

산행하다 보면 더러 눈에 띄는 수수하지만 이색 진 꽃이 피는 식물인데 요샌 조경용으로도 심는 삼색 병꽃나무.

그 발치에 클로버 꽃 조밀하게 깔려있고 수로 쪽에는 노란 꽃창포 만개해 눈이 부시다.

꽃창포 잎 끄트머리에 매달린 실잠자리, 이 세상 풍경 같지 않게 고요하다.

실잠자리의 휴식 방해하지 않으려 살짝 폰을 누르고는 살며시 그 자리를 떠났다.



태종대 한 바퀴 돌다 보면 곳곳에 앉아 쉴만한 벤치가 기다린다.

영도등대 내려가다가 점심상 펼칠만한 자리를 발견했다.

찻길보다는 훨씬 나은 호젓한 숲 그늘에 들어 도시락을 열었다.

망망대해 남해바다가 발아래 짙푸르다.

해풍 청량히 스치고 조망권 근사한 데다 해조음 들리는 최고의 식탁에 상차림이야 뭔들 어떠리.

어느 황제가 누린 옥반가효(玉盤佳肴)인들 이에 따를쏘냐.

만두 하나 입에 넣고 신선대 한참 내려다보고

또 하나 만두 집어 들고 수평선 오래 바라보고

저 아래 낚싯배 몇 거느린 주전자섬이 물을 한잔 따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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