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내가 다니는 성당은 St. Joan or Arc Parish.
우리식 발음으로 통상 쟌다크 성당이라고 부른다.
신자 수가 3천 여에 이르는 미국 성당으로 80여 명의 한인들이 모여있다.
거의 대부분은 백인들로 이탈리안, 아이리쉬, 폴리쉬들이 많다.
그 외 남미 계통 사람들과 동남아 필리핀 베트남인이 약간 섞여있다.
여타 소수민족과 달리 우리는 한 달에 한 차례 한국 신부님을 모시고 별도로 한국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는 작은 한인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
기온이 근 70도 가까이 올라간 어제는 실제로 한겨울치고는 아주 푸근한 날씨였다.
늘 그러하듯 아홉 시 미사에 참석하고 보니 반소매 차림의 미국인들이 여럿 보였다.
우리와는 체질적으로 많이 다른 그들이니까... 하면서 앞 좌석을 보니 수잔이 눈에 뜨인다.
아예 그녀는 민소매 짧은 원피스 차림이다.
수잔, 그녀는 30대 초반의 아가씨인데 백인 가정 입양아로 한국 태생이다.
한 핏줄이라고 한인 커뮤니티에 일부러 신부님이 연결시켜 주어, 우리와 자주 자리를 같이하며 어울리나 그녀는 당연히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그래도 넙데데한 얼굴에 검은 머리, 치켜진 눈꼬리가 닮은 동족이라서일까.
따뜻한 연대감이 느껴지는 데다 광주 어느 거리에 버려진 아기였다 하니 애틋한 심사도 한몫 거들어
우리는 그녀를 동기간이나 되는 것처럼 살뜰히 챙겼다.
그럼에도 여러 면에서의 이질감은 어쩔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 불통 운운하던데 이거야말로 말이 전혀 안 통한다.
기본적으로 분위기부터가 영 생소하니 낯설다.
유아기 때 입양돼 미국 가정에서 자라난 그녀인지라. 식성과 기호와 표현방식이 전혀 다르고 관심사도 달랐다.
거기다 여름철이면 민망할 정도의 대담한 옷차림, 분방한 웃음소리, 자유로운 제스처 등등이 우리에겐 아무래도 익숙지 않다.
그녀는 얼굴은 한국인이나 완전 미국인이었다.
어제 다시금 우리와 다름을 절감했다.
우리는 그래도 겨울이라고 관습상 거의가 코트 차림인데 엷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
우리 눈에는 어색해 보이나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고 예사롭다.
고도의 자유주의가 뿌리내린 미국에서야 남을 의식할 필요 없이 내 멋대로 자기 편하고 저 좋으면 그뿐.
미국식 사고에 길들여져 이미 그에 익숙해있는 그녀다.
순간, 북한 주민들과 우리도 의식차이가 이리 나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차단된 채 서로 다른 세상에서 깜깜하게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우리 민족끼리 잘해보자고 눈짓을 은근 보내나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백성들이야 어디 살든 다 순박하고 어질고 순하다,
문제는 윗선의 정치인들 사고와 이념이다.
우리는 태극기에 경건히 예를 바치지만 한 인간에게 광적인 최대 예우는 안 바친다.
조상의 궤연이나 집안 어른에게는 들고나며 공손히 인사를 드리지만, 붉은 꽃으로 치장된 미이라나 어떤 사진틀에 대고 일률적으로 절을 하진 않는다.
언젠가 대구에서 남북 대학생들의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을 때다.
북 선수단 일행이 예천인가를 관광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을비가 추적거렸던 모양이다.
김정일 얼굴이 든 길거리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는 걸 보곤, 북측 여학생들이 수령님 비에 젖게 한다고 불경스럽다며 단체로 항의를 했다.
집단광기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 그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린 적이 있다.
연기라면 모를까 납득불가인 행태가 섬뜩하게 다가왔다.
일사불란한 매스게임 또는 카드섹션을 펼치는 북녘 어린이들에 박수 보내기 이전, 등골이 오싹해지는 전율을 느끼는 건 나 혼자만일까?
아무리 세상이 뒤집혀진다 해도 그런 나라를 바라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터다.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