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 대선, 바야흐로 수국철인 제주

by 무량화

21대 대선 때다.

칠십도 후반에 들어 가로 늦게 출세를 했다.

난생처음으로 투표참관인 역할을 하게 됐던 것.

어슴푸레한 새벽 다섯 시 반,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평생교육관 일층 사전투표장에 도착했다.

사전 투표일 첫날, 오전 타임이 배정돼 새벽 여섯 시부터 정오까지 선거진행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삼십 분 전에 미리 특수봉인된 투표용지 발급기와 명부 단말기인 노트북 PC 그리고 투표함의 봉인 해제를 참관인 모두가 동참 확인했다.

기표용구 점검 및 투표함 내부도 여덟 개의 눈이 샅샅이 확인, 정확하게 참여를 했다. (두 과정은 사진 촬영 가능)

투표소 입구 쪽이 그제사 훤해지며 동이 터왔다.

일터 가는 길에 일찌감치 투표소에 들른 사람들을 보니 새벽부터 부지런히 생활전선에서 뛰는 면면들이 아름차게 여겨졌다.

정치꾼들과 달리 일반 시민들은 저마다 이처럼 얼마나 성실하게 하루를 사는지 감동으로 다가오며 짠해졌다.



정각 여섯 시, 사전투표관리관이 투표개시를 선언했다.

벌써부터 줄지어 대기하고 있던 선거인들이 차례대로 들어와 관내, 관외선거인을 구분한 라인 앞에 섰다.

먼저 신분증 사진과 얼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여 본인 여부 확인절차를 거친 다음 명부단말기에서 명부등재 여부를 조회한 후 본인확인기에 지장을 찍었다.

그때 비로소 투표용지가 출력됐다.

여기서 관외선거인은 주소라벨이 부착된 회송용 봉투와 투표용지를 교부받았다.

기표소에서 기표용구로 투표용지에 기표를 한 후 투표함에 투입하면 비로소 투표 완료.

투표장에서 한번 문제가 생겼는데 관외 여성이 기표한 투표지 인증사진을 찍자, 그 투표자 봉투는 "공개된 투표지"라는 고무인을 찍은 뒤 투표관리관과 참관인 전원의 서명을 받은 다음 투표함에 넣어졌다.

그 외는 별다른 특기사항이 없었으며 정오에 후임자가 와서 가뿐하게 바통터치를 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흥미로운 구경감이랄 수는 없지만 투표장이라는 특별하고도 생소한 공간에서 현장체험을 할 수 있어서 나로선 나름 귀하고도 값진 시간이었다.



기왕이면 하루 온종일 치러지는 전 과정을 보고 싶어 본투표 시에는 오후시간에 배정해 달라고 했다.

6월 3일 오후 1시, 서귀포 제4 투표소인 대천동 월평다목적회관에서 투표참관을 하게 됐다.

매우 쾌청한 날씨라 택시를 이용하기보다는 버스를 타고 일단 근처에서 내려 회관을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쉽게 장소를 찾고 보니 너무 서둘러 온 탓에 시간이 널너리하게 남았다.

마을 지도를 통해 인근에 답다니 수국밭이 있다는 걸 알게 돼 골목길 휘돌아 수국을 보러 갔다.

사실 서귀포에선 구태여 수국을 보러 명소라고 알려진 수목원이나 카페정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만큼 집집마다 도로변마다 수국을 가꿔, 온데 지천으로 핀 수국꽃이다.

아직 흐드러질 정도로 탐스러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제주의 유월은 어딜 가나 수국천지다.

마침 장마철이 든 유월은 그래서인지 물의 꽃 수국이 제철을 맞게 된다.

어중간한 시간 땜빵용으로 올해 첫 수국 마중을 가는 동안, 유달리 이 마을 고샅길엔 해묵은 멀구슬나무 고목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하늘은 푸르고 상쾌한 바람결 따라 활짝 핀 멀구슬나무 연보라꽃 향훈이 스며들었다.

월평마을에 들어선 답다니 수국밭은 재작년부터 슬슬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곳으로, 답다니는 탑을 쌓는다는 의미의 제주 방언으로 꽃의 탑을 쌓겠다는 야무진 꿈 아름다이 열매 맺은 곳.

이 마을에서 오래 감귤 농사를 짓던 분이 농원 한켠에 수국밭을 조성해 화원을 개장한 지 몇 년째 됐다는 화원은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색색의 수국꽃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앞으로 해가 덧쌓일수록 볼만해 지겠다.

수국밭 곳곳의 전망대와 스토리가 있게 꾸며진 포토존 오밀조밀하나 수국이 풍성하다는 느낌은 아직...

비교적 작은 규모의 수국화원이라 한 시간 안에 전체를 다 둘러보며 느긋하게 풍광들을 담을 수 있었다.



시간 전에 투표소에 들어가 신분확인을 거친 다음 정각 한 시부터 투표참관인 자리를 지켰다.

오후 시간이라 오전처럼 봉인 개봉 절차 확인이 없어 일은 한결 단순했다.

투표참관인은 각 정당별로 한 명씩, 네 명의 참관인이 기표소와 투표함을 향해 나란히 앉았다.

조그만 마을이라 선거인 수가 적은 데다 오후 시간이라서인지 선거인은 떠듬떠듬 등장했다.

그처럼 사람들이 별로 안 와, 투표율 저조한가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래도 관내에서는 아주 높은 편이었다.

하긴 제주도 자체가 최종 투표율 74,3%를 찍었으며 전국 시. 도 지역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였다.

투표소 내에서 별다른 사고나 문제없이 질서 있고 평온하게 오후 여덟 시 투표는 마감됐다.

언제부터인가 경찰관 두 명이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대선 투표일 경찰은 갑호비상이 발령돼 비상근무에 나섰다더니.

참관인 모두는 투표함 투입구를 잠금핀으로 봉쇄하는 과정을 확인한 다음 투표관리관과 함께 투표함 투입구의 특수봉인지에 각자 서명을 필했다.

이때도 촬영이 가능하다고 해서 사진에 담아뒀다.

관리관은 투표록과 선거인 명부 등 투표관계 서류 일체를 봉투에 넣어 테이프로 봉함하고 봉인을 찍어 투표함과 함께 차에 올랐다.

내 사진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기록 보완용이자 기억 소환용이므로 이후부터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투표함을 개표소로 회송하는 절차는 무슨 특수비밀작전을 수행하는 일 같이 엄중했다.

봉인된 투표함을 실은 차량에는 투표관리관 두 명과 투표 참관인 두 명에다 경찰관 두 명도 동승했다.

수송 과정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경찰이 호송 수행을 맡았던 것.

깜깜한 어둠 속을 달려 남원읍 공천포전지훈련센터 다목적체육관에 마련된 서귀포시 개표장에 닿았다.

이미 88개소의 투표장에서 동시에 마감된 투표함이 도착한 체육관 주변은 차들이 밀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들의 헤드라이트에 비친 풍경은, 비상근무에 나서서 개표소 안팎에 포진돼 집중 경비 중인경찰관들의 삼엄한 모습들이었다.

겨우겨우 차례가 와 이송한 투표함을 개표참관인의 참관 하에 투표함 상단의 관리번호를 확인한 후 접수시키므로 오늘 임무는 완료, 시각은 열 시 가까웠다.

출구가 개표장을 통과해 외부로 나가게 되어있기에 잠시 둘러본 개표장 안에서는 벌써부터 개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 아래 실내체육관 내부, 눈부시게 환한 불빛 아래 개표원과 참관인 모두 묵묵히 그러나 시종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이제 투표는 종결됐고 투표함이 열렸다.

결과는..... 대한민국호의 내일은 글쎄다?!


<투표 진행 과정을 참관했기에 혹시 상세히 알고자 하는 분을 위한 참고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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