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물회를 논짓물 횟집에서

by 무량화


시장 난전에서 제피잎을 파는 할망을 보았다.


자리물회 철이 왔구나, 싶었다.


초여름이 되기 전 보목포구에서 열리는 자리돔축제 구경을 올해는 안 가봤다.

뼈가 무턱대고 억센 자리돔구이나 가시까지 잘게 썰어 내놓는 자리물회가 별식이라고 하나 별로 내키지 않는 식성이다.


그러나 이번은 필히 먹어보고야 말리라.


예래마을 간 김에 멘다롱 똣똣하다는 논짓물로 내려갔다.

알맞게 따뜻하다는 용천수가 해수와 맞닿아 있는 논짓물이다.

바다로 흘러나가는 용천수를 막아 수영장 만들어 민물과 바닷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다.

바로 그 앞에 있는 논짓물 횟집에 들어갔다.

전에 약속했던 바로 그 집이다.



"......

논짓물에 다시 이르렀으나 연대는 찾을 길 없었다.

오후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참에 마지막으로 논지물횟집(064-738-8804)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에게 혹시 당포연대를 아는지 묻자 의외로 고개 주억이며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연대 서쪽으로 마라도, 가파도, 산방산, 송악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대포연대와 주변 해안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했다.

지나온 길이기도 하지만 워낙 꼼꼼히 알려줘 찾은 거나 진배없었다.

횟집 쥔장의 친절한 배려가 하도 고마워 자리물회라도 먹고 가려고 주문을 했더랬다.

하지만 그날따라 풍랑이 심해 배가 나가지 못해서 횟거리가 없다며 외려 미안해했다.

어쩐지 해풍 세차고 파도 매우 거칠더라니.

아무튼 언제이고 다시 찾아 식사하며 감사를 전할 생각이다."


언젠가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서귀포에 살다 보니 서귀포 사람에게 자리물회가 어떤 의미이며 어느 정도의 위상을 차지하는지를 알게 됐다.


현지인에게 자리물회는 소박하고 정겨운 어머니 혹은 고향과 동의어였다.


유년의 추억이 찐하게 서려있는 향수 어린 음식.


외국에 나가 살면서 느끼던 한국음식에 대한 막무가내의 당김이나 끌림 같은 거랄까.


나이 들면서 잡식성으로 변한 입맛이나 아직도 극복 못한 게장이며 멍게 따위와 달리, 요샌 회도 잘 먹고 선지국밥 추어탕도 훌훌 떠먹는다.


외양이나 씹히는 느낌 또는 냄새와 이름만으로도 무조건 기피하다 보니 편식 아닌 편식을 하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추어탕 주재료인 미꾸라지부터 거북하지만 산초인지 제피인지 톡 쏘는 향신료조차도 거부감이 든다.


구태여 구별하자면, 제피와 산초는 거의 흡사하나 서로 다른 종으로 가시가 어긋나 있는 산초와 달리 가시가 마주나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는데.


아무튼 지금은 자리물회가 제철이다.

여름철이면 이젠 포항물회까지도 즐기는지라 같은 물회이므로 자리물회도 응당 맛을 봐야지, 하고 별렀다.

보목포구로 자리물회를 먹으러 가기 앞서 자리물회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뭐라고? 부재료가 고추장이 아닌 된장을 넣어 만든다니 물회의 깔끔하고 매콤한 맛을 기대해도 좋을지 일단 의문부호가 앞섰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물회 그림부터 색상이 텁텁한 게 어째 선뜻 맘이 내키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느낌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자동으로 주춤, 일단 발길이 머뭇거려졌다.





떡 벌어지게 잘 차려진 전라도 밥상에 오른 홍어도 비위 약해 슬그머니 냅킨에 싸서 버려야 했던 식성이다.

비싼 식대 내고 음식 맛있게 먹지 못할 바엔 굳이 주문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다른 걸 시키더라도 식당에 들어가는 보자.

논짓물횟집 쥔장은 한참 전 일인데 그날의 일들을 잘도 기억했다.

연대라는 걸 묻는 사람은 흔치 않은 일이라서 인상에 남았다고 한다.

마침 자리물회를 먹고 있는 손님이 있기에 슬쩍 훑어보니 생각했던 거보단 색깔이 괜찮았다.

상이 차려지자 자리물회 시식하기 앞서 추가로 초고추장을 빙 둘렀다.

이상하리라는 선입견은 깨지고 그런대로 먹을만했다.

주로 자리회만 골라 깻잎에 싸 먹긴 했지만. ㅎ

하긴 밑반찬으로 나온 자리찜 두 마리로도 저녁 든든할 정도였다.

잘 먹고 나왔더니 안개비 내리고 있었다.

금세 어둑신해졌고 집에 도착하니 아홉 시였다.



다음은 서귀포 보목출신 시인의 시다.


자리물회 ㅡ한기팔


자리물회가 먹고싶다

그 못나고도 촌스러운 음식

정겨운 고향말로

자리물회나 하레감주

아지망!

자리물회나 줍서, 하면

눈물이 핑 도는

가장 고향적이고도 제주적인 음식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톡 쏘는 계피맛에

구수한 된정을 풀어

가난한 시골사람들이

여름날 팽나무 그늘에서

한담을 나누며 먹는 음식,

아니면 저녁 한 때

가족들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먼 마을 불빛이나 바라보며

하루의 평화를 나누는

가장 소박한 음식,

삶의 참뜻을 아는 사람만이

그 맛을 안다.

한라산 쇠주에

자리물회 한 그릇이면

함부로 외로울 수도 없는

우리들 농사치들이야

흥그러워지는 것을.

만나면 즐거운

불그레한 얼굴들과 앉아

오늘은 아들 낳고 딸 낳고 살림 늘리고

시집장가 보낼 얘기나 나누면서

그 자리물회가 먹고 싶다.




https://brunch.co.kr/@muryanghwa/927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