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곳은 어떤 곳일까.
나이 든 이에게는 날씨 온화하고 각종 문화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사회안전지수가 높고 우수한 병원은 물론 복지관이 가까운 곳이다.
거기다 물 좋고 공기 맑고 풍치까지 멋지면 금상첨화다.
그 모든 조건을 갖춘 서귀포에서 삼 년 여를 살았는데 이에 더해 인심까지 후한 곳이 제주섬 아닌가 싶다.
마치 어릴 적 유년기를 보낸 충청도 외가 마을로 돌아온 거 같다.
태를 묻은 고향을 아직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연유는 따스한 인정과 인심의 기억 때문이다.
마음 푸근하게 해주는 추억들이 그곳에 서려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언제라도 달려가면 스스럼없이 동화될 거 같은 편안함이 느껴져서이다.
밥 같이 먹자는 말은 친근한 사람 사이에서나 하는 소리다.
먼데 친구가 보고 싶을 때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을 거냐, 고 에둘러 말하기도 한다.
그건 난 그대가 그립다는 소리로, 만나서 온갖 얘기 오래도록 나누고 싶다는 표현이다.
스스럼없는 사이가 아닌, 그리 살갑지 않은 관계라면 인사치레로라도 밥 같이 먹자는 소리 안 나온다.
음식 끝에 정나고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국가 간의 정상회담 자리에도 식사시간을 넣었으며 사업가들도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식사 자리를 갖는다.
이렇듯 중차대한 자리마다 긴장을 풀고 분위기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식사시간이 역시 마련돼 있다.
한자리에서 서로 음식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정이 뭉근히 우러나서 사이가 돈독해지게 되므로.
제주도는 관광지라 물가가 비싼 곳으로 소문나 있었다.
일단 각오하고 왔는데 의외였다.
부산에서보다 외려 생활비가 적게 든다.
과일 중에도 오렌지를 유독 즐기는데 그 사촌쯤 되는 귤은 처음 와서 한두 번 사 먹었은 게 전부다.
그 후부터는 식당엘 가도 한 보따리, 얼굴 익혔다 하면 어딜 가나 귤 인심 후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 여유가 있어야 베풀기도 하는 법, 서귀포 사람들 살림이 대체로 푼푼해서일까.
오피스텔 쥔장네는 귤농장에서 따온 귤을 줄창 조달했으며 요즘도 귀한 카라향과 하귤을 나눠주곤 한다.
바다에서 직접 채취한 미역 · 톳은 물론 야채도 수시로 올려 보낸다.
게다가 객지살이 식사가 부실하다면서 우럭회 · 수육 · 아귀탕 · 흑돈구이 푸짐하게 차려 때때로 한턱 쏜다.
채소는 특히 텃밭농사를 짓는 지인들까지 겨울초며 대파며 풋배추며 애호박과 싱싱한 호박잎 · 부추 · 가지 · 풋고추 · 쑥갓 같은 걸 사철 대다시피 한다.
농사지은 감자와 고구마도 매끈한 걸로 골라서 한 봉다리, 하여 와우! 황감하옵나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걷기 도반인 옆집 황선생도 뭔가를 나누지 못해 안달인 수준이라 별 걸 다 챙겨준다.
모슬포에 사는 유선생은 음악교사였음에도 어찌나 음식 솜씨가 좋은지 라이스케익을 만들고 만두를 손수 빚어 날 감격케 했다.
명절때나 생일이면 같이 지내자며 일부러 부산집에서 올라오는 신창에 세컨하우스를 둔 김선생도 고마운 친구다.
어딜 가 살아도 인복을 타고나서인지 늘 넘치도록 받기만 하는 게 송구스럴 정도다.
쌓은 인덕에 비해 받는 인복 늘 과하기 때문이다.
안분지족 하며 즐기는 미니멀리스트, 귀거래사 구절들이 문득 겹치며 행복지수 오르나니 이 아니 좋을쏜가.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더러 한번씩은 심신 환기차 벗과 더불어 길 걷다가 외돌개 인근 카페도 들러보고.
물이유취(物以類聚)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을 통해 그를 안다, 란 생각은 그래서 맞다.
가까운 벗과 이웃은 곧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 만남조차 인복 덕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