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협곡, 숲 깊은 산양큰엉곶

by 무량화


가끔 찾는 예래생태마을 안내센터에 들러 올여름 대왕천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어쩌다 가끔 보인다며 산양곶자왈이나 청수곶자왈을 가보라 했다.

잘 알다시피 반딧불이는 '환경지표종'이라 불릴 만큼 깨끗한 담수에서만 서식한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조건 하에서만 살아가는 반딧불이다.

청정 서식지가 줄어들며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는 보호종이기도 한 반딧불이.

하지만 제주의 서쪽 바다와 산간을 아우르는 한경면은 교통이 불편해 찾기 수월치 않은 지역이다.

이따금 물빛 곱고 물결 찰방대는 얕은 금능 바다를 가더라도 산중으로 들어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곶자왈은 동광육거리에서 차를 바꿔 타고 한라산록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므로, 왕복 서너 시간 소요되는 터라 큰맘 먹고 나서야 한다.

더구나 밤이라면 엄두를 낼 수 없는 거리라 반딧불이 구경은 아예 접어버렸다.


친구가 오후 늦게 산양곶자왈에 가보자 했다.

초저녁 무렵 요행히 반딧불이가 나타나면 고맙고 아니면 말고, 하면서.

산양 생태숲길이 시설을 새롭게 정비하고 단장하여 산양큰엉으로 오픈하면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며 이끈 그곳.

산양곶자왈에 닿자, 반딧불이가 꽁무니에서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간판이 반겨줬다.

소개 글에는, 반딧불이 춤추는 생태계의 보고로 정글 같은 숲이 펼쳐진 곶자왈이라고 쓰여있었다.

운 좋게도 빈객을 만나려나?

분출한 마그마가 흘러내린 용암 끝자락에 암괴와 동굴 등이 도사린 데다 나무와 넝쿨이 얽히고설켜 밀림지대 이룬 곳.

그만큼 다양한 지질대에 여러 생태자원을 품고 있는 장생의 숲이 곶자왈이다.

한때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이제는 생물·지질·문화 측면에서의 다양성이 재평가되고 있는 땅.

울창한 원시 태고의 숲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라는데 갈 적마다 그곳은 번번 투박하니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장마가 예고된 제주다.

일기 우중충한 날이면 바다나 오름보다는 숲을 찾곤 하는데, 그중에서도 하늘 가려지다시피 하는 숲 깊은 곶자왈이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곶자왈이나 방문할 적마다 어둠침침한 분위기로 인해 기분이 다운되곤 했다

어딘가 틉틉하고 눅눅해 전체적으로 묵직하고 께름한 느낌, 산뜻 경쾌함과는 거리가 먼 곶자왈이다.

산양 큰엉곶자왈 역시 그 이미지에 더해 협곡은 거칠고 숲 깊어 분위기 음산하고도 칙칙했다.

골짜기에 물 흔적은 없으나 용천수를 품은 숲이라 숨은 물길 있어 반딧불이 사는가?

과연 글쎄다.

곳곳에는 시커멓게 입 벌린 궤(동굴) 입구와 숯가마터를 비롯, 4.3 유적지 등 제주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곶자왈.

역사유적지 탐방이라면 만사 제치고 앞서는데, 헙수룩한 숯가마터며 궤는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를 빼앗기는 듯 꺼려졌다.

닥나무 산뽕나무 같은 낙엽활엽수림 이어져 주변엔 마른 잎 푹신하게 덮여있었으며 별고사리와 덩굴식물 무성했다.



큰엉곶 숲길은 울창한 녹색 숲속을 걸을 수 있게 야자 매트로 구불텅한 산책로 만들었는데, 쉬고 싶어도 벤치가 없어 내처 걸어야만 했다.

청정 제주에는 그 외에도 얼마든지 정서적으로 쾌적하고 평화롭게 만들어 주는 곳이 도처에 깔려있는데 굳이?

나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분위기 자체가 탁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터라 상쾌 흔쾌한 여행지로 여기긴 어렵지 않을까.

다만 새로 낸 달구지길 주위 조형물들이 애들이 좋아하는 동화 컨셉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가족 단위 방문객은 많았다.

곶자왈과는 서로 연이 맞지 않는지 산양 큰엉곶 또한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반딧불이 유영이나 맘껏 보았다면 거기 홀려 넋을 놓았을지 모르겠지만 한 마리도 구경 못했고.

그러나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안목이 남다른 시인은 곶자왈을 이처럼 찬미했으니......



마음의 곶자왈 / 현택훈

내 마음 어느 곳에 곶자왈이 있어서

용암처럼 흐른 아픔이 굳어서

비가 빛나고 햇빛이 내리는 수풀 속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머문 홀씨 같은 슬픔이 있어서

열대와 한대의 수목한계선이 서로 겹쳐서

습지엔 기억의 눈물이 질척거려서

쓸쓸한 바람이 고이는 곳이어서

제주고사리, 개가시나무, 때죽나무 우거진 그리움이어서

날씨란 지나고 나면 모두 흐림이어서

비 그치면 산책을 하는 것이어서

슬픔이 빛나고 당신이 내리는 숲이어서

희망도 절망도 그곳에선 서로 겹쳐서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있어서

아프게 증산작용을 하는 나무가 푸르러서

흐린 날도 오래되면 맑게 흐릴 수 있어서

바람이 고였다가 다시 바람을 일으켜서

슬픔도 고이면 거름이 되어서

인공호흡기처럼 내 마음을 지탱해 줘서

내 마음 어느 곳에 곶자왈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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