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포구 거느리고 갑문다리를 지나면 곧장 인 해 뜨는 집.
네티즌 사이에는 잘 알려진 오조해녀의 집 바로 앞이다.
시인의 거소에서 성산 일출봉이 창 가득 마주 보였다.
팔순의 시인은 놀라울 정도의 동안인 데다 시적 감각만이 아니라 의식 건강한 젊은 청년이었다.
여덟 살에 목도한 부친과 조부모 삼촌 등 다섯 가족의 참혹한 주검으로 악몽이 되고 만 4·3이다.
비통으로 새겨진 참담스런 그날이지만 시인은 진실 규명해 단죄하며 상처 후벼 파는 대신 훗날 역사 해석에 맡기자 했다.
위 시에서처럼 용서와 화해를 통해 해원상생으로 풀자 하는 시인의 진혼가(鎭魂歌)를 읽고는 절로 경의가 우러났다.
얼마간의 보상, 선대의 그 핏값보다는 시인은 원했다.
바른 도리 따라 성실히 살면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 몫 다하고 눈 감아 부끄럽지 않은 후손 되어지기를.
이제 4·3 사건에 공소기각이 결정돼 주홍글씨 털어내고 떳떳해졌으니 그만으로도 기쁘고 만족스럽다.
서린 한 풀렸고 명예회복 되었으므로 보상이 대수랴, 마디마디 굴곡진 삶 그마저 원망 대신 자양분으로 끌어안았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광기의 시대 그래도 목숨 부지해 이만큼 삶의 자존감 긍정적으로 이뤘으니 감사한 일.
소싯적 한사코 벗어나려 발버둥질 쳤던 고향마을 오조리.
지금은 사백 명 학살터 광치기 해변 무시로 바라보며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다짐 되새김질한다고.
LA 홀로코스트박물관이 들려주던 '과거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처럼 다시는 반복되어선 아니 될 흑역사다.
제주 근세사를 맨몸으로 관통했던 산증인으로부터 생생하고도 묵직한 역사 공부 버겁게 받고 돌아오는 길.
해 질 무렵, 파도 철썩이는 소리 처연하게 들리던 4·3 학살 유적지는 금세 어둠의 우수 속으로 가라앉았다.
고추잠자리 /강중훈
어디 갔을까
그가 날고 있으면
피를 부르는 소리 들려,
그가 날개를 접고 있을 때
머지않아 그가 몰고 올 피의 세계가 두려워,
고추잠자리 앉아 있는 건너편
메밀꽃이 하얗게 떨고 있는 걸 본다.
한의 정서 어찌 승화시키면 핏빛 트라우마 마저 절제된 미학으로 녹여내질까.
사유 얼마나 깊어져야 이리 곰삭은 시어들 더불어 무애의 경지에서 노닐 수 있을까.
내공은 세월만 덧쌓인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자질이라는 원바탕 위에 긴 수련으로 다져지는 게 내공이었다.
그렇게 숙성되고 발효된 언어 곰삭혀서 용수 박아 영혼의 정수만을 말갛게 떠낸 청주 같은 시어.
기초공사부터 단단해 그리 지어진 집마다 믿음직스럽고 탄탄하다는 느낌, 몇 편의 시로 대뜸 감이 왔다.
그렇다, 좋은 시는 주춤대지 않고 곧바로 그냥 다가와 스며든다.
결이 비슷한 사람끼리라서일까, 서로를 용케 알아보는 신비한 이끌림과 당김의 법칙이 작용해서이리라.
해뜨는 집 정원에서 마주한 낯선 외국인 소조상, 웬일로 프랑스 소설가인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다.
이대 석좌교수로 있던 그는 여덟 살 때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제주 해녀 기사를 본 적 있어 제주를 방문했다.
제주의 자연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당시 제주문협 회장이던 강시인을 만나 교류한 후 각별한 인연이 되었다.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는 제주해녀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 <폭풍우>를 발표했다.
<폭풍우> 책머리에 '제주 우도 해녀들에게'라는 헌사를 실었으며 명예 제주시민이 된 그는 거의 해마다 제주를 찾는다고.
요즘 세상이 날로 수선스럽다.
언제 태평성대였나만은 점점 더 거친 폭풍우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의 소설 제목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