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단상
일몰 풍경이 볼만하다기에 가벼운 드라이브 삼아 자유로로 향했다.
자유로, 이 길 따라 그대로 내쳐 북쪽으로 달리면 거기에도 자유를 전파시킬 수 있을까? 나아가 자유를 향유하게 할 수 있을까?
민족을 갈라놓고 반도 중허리를 가로막는 이념의 장벽이 너무도 완강해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길, 멈출 수밖에 없는 길,이란 엄연한 현실 앞에 한계를 느끼며 허탈감에 빠져들 거 같은 자유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그 언저리에 겹겹이 살벌하게 둘러쳐진 철조망과 딱딱한 사각의 군초소, 아무래도 지명이 너무 아이러니하다.
화려한 일몰 풍경마저 철조망으로 가로막고 있는 자유로라니, 이름값도 못하는 이게 대체 무슨 경우람.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사상으로, 자신의 의도나 행동을 자신의 마음대로 혹은 의지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단, 방종이 아닌 책임이 수반되는 자유권이 보장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저 자유로 끝에 위치한 북녘 상황은 과연?
인권이 보장되는 기본적인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나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커녕 하다못해 이동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는 체제다.
수령님 사진이 비에 젖는다고 발 구르며 흘리는 눈물이, 고종황제 장례식날 온 백성이 땅에 엎드려 터트린 통곡과 같은 염도의 눈물일까.
자유에 대한 잡다한 생각과 계속 곁을 따라오는 철조망 실루엣이 기분 가벼이 나선 발길 그만 무겁게 만들었다.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
항시 어두움 속에서........
란 박봉우 시인의 절규에 가까운 시가 떠오른다.
맞다, 그렇다마다.... 현실을 직시하고 주어진 상황에 지혜로이 대처하며 민족공존의 길을 찾아나갈 일이다.
남북대화니 화해무드니 금방이라도 남북이 하나 될 듯 애드벌룬을 띄우나 여전히 경계태세를 풀지 않은 채, 아니 서로에게 총을 겨눈 채 155마일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이다.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적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진정으로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의 그날, 누군가는 꿈에도 그린다는 남북통일의 그날을 무난히 맞이할 수 있을까 싶다.
진지하고 냉정한 상황인식 없이 장밋빛 꿈만으로 혹은 갈망만 한다고 해서 그날이 절로 오는 건 아니다.
무턱대고, 엉겁결에 그렇게 그날이 와서도 아니 된다.
무작정, 한사코 급히 서둘러 그날을 맞게 돼도 아니 된다.
오래전 워싱턴디시에 갔다가 한국전 참전추모공원을 들른 적이 있었다.
우중에 판초 차림으로 작전 수행 중인 열아홉 명의 병사들 형상이 까만 오석의 용사비에 얼비치면 38명이 되는데 이는 삼팔선을 상징한다고 들었다.
그 오석 상측에 새겨진 다음 글씨를 보고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은 진리다.
한국전 당시 알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미군과 유엔군으로 참전, 사상 또는 실종된 희생자 숫자는 엄청났다.
피로 지킨 자유민주주의 그 바탕 위에서 오늘날의 번영을 이룩한 대한민국, 지금은 세련된 고층건물이 숲을 이루고 사통팔달로 뚫린 도로망도 시원스럽다.
자유로는 경기도 고양시와 서울특별시의 경계인 가양대교 북단에서 시작, 한강 북쪽을 따라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자유 IC까지 이어지는 자동차전용도로다.
도심에서 시작된 길이건만 한강과 임진강을 옆에 거느리고 달리다 보면 금세 한적한 시골 풍경으로 바뀐다.
더구나 불과 한 시간 만에 민통선지역에 다다르니 북녘과는 바로 지척 거리에 이른 셈이다.
그렇게 달려 자유로의 끝인 임진각과 평화누리공원을 둘러볼 마음까지는 어쩐 일인지 도통 일지를 않는다.
맞은편 북한군 초소까지 거리가 고작 2km 정도 떨어진 오두산통일전망대를 찾고 싶은 생각도 별로 안 든다.
가본들 언어의 희롱일 뿐인 평화가, 통일이, 심장 절절하게 다가와 벅차도록 뜨거이 안겨들지 못할 터이기에.
휙휙 달리는 차 안에서 사진 몇 장 담고는 깊어지는 어둠살만큼이나 묵지그레한 기분인 채 불빛 휘황한 도심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