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 마친 들판에 망초꽃

by 무량화

보리 베기와 모내기가 겹쳐 일 년 중 가장 바쁘다는 망종(芒種)도 열흘 전에 지났다.


요샌 이앙기 출현으로 모내기도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곡물 수확도 콤바인이 대신하는 시대다.


예전 모내기 철에는 아궁이 앞의 부지깽이도 뛴다, 란 말이 나올 만큼 바쁜 철.


그러나 올해는 윤달이 들어 절기가 한 달여 늦되다.


따라서 아직 보리베기는 멀었지만 모내기는 마쳐간다.

며칠 전 망종이 소리없이 스쳐갔듯, 수릿날 역시도 스리슬쩍 지나갔다.


음력 5월 5일 수릿날은 단옷날이다.

음양사상에서 홀수는 양(陽)의 수라 하여 상서로운 수로 여긴다.

해서 양수가 겹치는 날인 5월 5일을 최상의 길일로 쳤기에 설날 추석에 이어 3대 명절이 단옷날이었다.

고대 마한 때부터 파종이 끝난 5월에 부락민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가무를 즐기며 놀았다는 기록이 있는 수릿날.

우리 어릴 적만 해도 창포물에 머리를 감았으며 그네 뛰는 날이었으나 이제는 단옷날 챙기는 이조차 없다.


'머리 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 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고...' 판소리 춘향가 중에서 춘향이가 그네 타는 장면이다.


단옷날 광한루에서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해버린 몽룡.


그 단오가 지난 지도 보름이 흘러갔다.



며칠 전 함안 들녘을 찾았다.

모내기가 거의 끝나가는 논판, 진작에 모내기를 마친 논은 모종이 어느새 땅내를 맡고 뿌리가 잡혀 짙푸르렀다.

그런 논배미에는 수생식물 개구리밥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정말로 개구리가 먹는지는 모르겠으나 개구리밥이 저리 번성하니 수질정화는 책임지겠는데 아직도 논에 거머리는 살고 있을까.

학창시절, 농번기 때 농촌 일손 돕기로 모내기하러 갈라치면 나일론 스타킹을 어찌어찌 얻어서라도 겹겹이 신고서 가야 했었다.


그래야만 징그러운 거머리로부터 안전했으므로.


학생인 우리나 군부대원들은 동원인력이라 점심은 각자가 해결했지만 옆 동네 모내기판은 노동요 불러제키며 한바탕 흥이 솟았다.


마을 단위로 품앗이꾼들이 열지어 모내기를 하노라면 기다리던 새참 시간이 왔고.


논두렁으로 올라와 모처럼 허리 펴고 둘러앉아서 푸짐한 새참을 먹으며 나누던 탑탑한 막걸리잔.


이제는 모내기를 책임지는 이앙기가 나오고 모판도 대량으로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편리한 세상이니 모든 게 옛일이 된 지금.

징그러운 거머리도 농약 과다 살포로 죄다 사라졌다던데, 환경이 되살아나며 혹시 또 나타나지는 않았을지.

허리 낮추고 논바닥을 한참 지켜봤으나 아무런 미동도 없이 물살 고요했다.

그럼에도 무슨 먹거리가 사는지 하얀 왜가리 목 길게 빼고 물속을 기웃거렸다.

알뜰살뜰 논두렁에 묻어둔 콩도 이쁘게 싹이 터, 떡잎 힘차게 펼치고 대지의 싱그러운 기운 온몸으로 호흡했다.

파이프 묻혀있는 논두렁 가에는 하얀 개망초꽃 흐드러졌고 거의 기업형인 비닐하우스에는 아직 남은 모판(못자리)의 모(육모)가 들로 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럭저럭 몇 달 흐르면 연둣빛 모는 황금빛 나락으로 변해있을 것이다.

함안들이든 악양들이든 올가을엔 그런 벌판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좋기로야 남해 다랑이 논이면 더욱 운치롭겠고.


그렇지만 올해는 제주도의 유일한 논농사터 하논에서 그 황금벌판을 마중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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