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논분화구에서 개구리 소리를

by 무량화

오후 늦게 하논분화구를 찾았다.

다른 때는 예술의 전당 맞은편 길로 하논에 들어가는데 이번엔 방문자 센터에서 내려갔다.

오늘은 벌써부터 별렀던 개구리 소리를 들으러 가는 중이다.

모내기철이면 올챙이가 자라 어느새 들판 가득 개굴개굴 와글와글 개구리 소리 요란해지는 하논.

제주 내에서도 유일하게 논농사가 가능한 지역이 하논 분화구다.

이른 장마가 시작돼 분화구 안은 저수지처럼 물이 그득했다.

지난번 자운영 꽃을 보러 왔을 적 만해도 푸석한 흙먼지 분분히 일었더랬는데 하논 이름대로 큰 논 꼴을 제대로 갖췄다.



개구리 합창을 듣기엔 너무 일러 분화구를 빙 둘러서 하논성당 터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역사를 읽다 보면 종교의 이름으로 혹은 신앙을 빙자해 비이성적 행동을 합리화시키려 드는 걸 보곤 한다.

조선말 참혹한 살육의 광기가 휩쓸었던 비극적 사건인 이재수의 난.

산남지역 최초의 초가 성당이 하논에 세웠졌으니, 여기 프랑스외방선교회 소속 주임신부와 조선인 보좌신부가 부임했다.

사제품을 받자마자 곧장 하논으로 온 김 신부인지라 한창 젊은 데다 성품이 강직했다.

그는 신념과 열정에 더해 의욕이 넘쳐흘러 공격적으로 전교활동에 나섰다.

섬의 지역적 특성인 전통 민속과 미신 숭배를 척결하고자 앞장섰으며 문란한 축첩제도를 타파하는데 주력했다.

그로 인해 촉발된 신축교안 즉 이재수의 난은 숱한 사상자를 냈으며 결과적으로 본당마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공과는 있으니 김 신부가 1901년 저술한 교리서인 <수신영약>은 가톨릭과 토착종교와의 충돌상을 연구하는 중요자료가 되었다.

중남미 문화와 민족을 깡그리 소멸시킨 스페인 정복자들 역시 십자가 든 선교사를 앞장 세웠다.

멕시코와 페루에서의 찜찜한 기억이 되살아나서일까.

늦오후 햇살이 산머리에 걸려 머뭇대는 시간까지 화해의 탑 앞에서 종교관에 대한 묵상 시간을 오래 가졌다.



하논성당터에서 나와 모판 손질을 하고 있는 아낙에게 다가갔다.

환갑이 넘었다는 그녀는 남편과 둘이서 논농사를 짓는데 남편은 비료 사러 농협에 갔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마침 잘 만났다는 듯 잠시 허리를 펴고서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웠다.

하긴 왜 아니 그러할까.

진흙 속에 발 담그고 온종일 엎드려 일만 하며 말 한마디 나눌 사람도 없으니 오죽 지루할까.

정신없이 일손 바쁜 철에는 십만 원의 품삯을 준대도 사람 구경할 수가 없다고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그녀.

하물며 논바닥에서 무슨 말 상대를 만나랴.

밤에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냐니까 엊그제 비 오던 밤엔 악머구리 끓듯 시끄러웠다고 한다.

흐흠! 기다려볼만하겠군, 내심 흐뭇한 기분.

요즘도 거머리가 있느냐고 물으니 가끔 보인다며 농약을 적게 써서 우렁이며 개구리와 새들의 천국이 여기라고 한다.

하논은 시에서 특별 관리를 하는 지역이라 벼농사에 적정 이상의 농약 수치가 나오면 수매는 물론 지원이 끊긴다고.

철새 도래지라서 그렇단다.

추수 후 볏짚까지도 시에서 일괄 수매해서 철새들을 위해 논바닥에 깔아둔다고 했다.

그래그런지 오늘도 하얀 왜가리 떼지어 노닐고 있었다.

새들 때문에 모판 관리에 곱으로 수고가 들어가지만 이에 불평 늘어놓을 처지도 못된다고 하였다.

예서 몇 십 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녀는 전엔 농사짓고도 남을 정도로 용천수가 충분했다고 하였다.

헌데 여기저기서 집을 지으며 물을 하도 빼내는 바람에 용천수가 마르다시피됐다고.

퉁퉁퉁 경운기 소리가 나더니 그녀 남편이 돌아왔다.

하릴없는 싱겁이가 일손 방해나 하는 거 같아 눈치가 보였다.

인사를 하고는 어두울 때까지 기다리기 좋은 방문자 센터 쪽으로 올라왔다.



산마루에 걸렸던 해가 꼴깍 졌다.

청남빛 하늘에 별 몇개 떠올라 반짝거렸다.

어슴푸레하던 사위가 점점 먹물빛으로 변해갔다.

건너편 삼매봉 중계탑 빨간 조명이 깜빡거리고 농가마다 불빛 환하게 밝혀졌다.

여덟시쯤 되자 개구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대했던 만큼 옹골찬 소리는 아니나 그래도 이게 웬 보너스인가.

맹꽁이인지 두꺼비인지 간헐적으로 꾹꾹거리는 소리도 섞여들었다.

한참을 전화기 동영상 누르고 개구리 소리를 담았다.

물바람이 한결 차거워졌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그리움


개구리 소리가 듣고 싶다.

봄밤을 완전 장악해 버리는 그 소리.

달빛 출렁이는 무논에서라면 더 좋겠다. 칠흑의 어둠 속이라도 개의치 않겠다.

쾌청한 한낮보다 어스름밤을 맞아 제 세상인 양 한껏 목청 돋우는 개구리 소리.

​괄괄괄괄. 숫제 소리의 소나기다. 소리의 폭포다.

충천하는 활력을 기세 좋게 분출해대는 그 뱃심.

암팡진 위력으로 천지를 제압하려 드는 그 기개.

쭈뼛거림이 없다. 오만불손할 정도로 도도하고 당차다.

밤의 적요를 마구잡이로 휘젓으며 의기양양히 내지르는 점령군의 함성이다.



일사불란한 힘의 결집인들 대단치 않은가.

마침내 들 전체를 갈아엎을 작정이라도 한 것 같이 와글거리는 소리.

그렇게 떼거리로 한밤 지새우는 개구리 소리가 듣고 싶다.

그 소리에 흠뻑 젖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다.

생각하면 싱겁고 어이없는 노릇이지만 이 갈증은 입덧할 때의 막무가내처럼 거의 외곬의 치달림이다.

별일이다. 하고많은 자연의 소리 중에 왜 하필 개구리 소리인가.

어찌 좀 잘 봐주려 해도 도통 고운 구석이 없는 소리, 생짜배기로 시끄럽기만 한 개구리 소리다.

그러나 건강하다.

주어진 한 생을 빈틈없이 채우려는 맹렬한 의지에다 지칠 줄 모르는 힘찬 생명력이 미쁘다.

자그만 몸 전체로 살아있음의 기쁨을 열정 다해 노래하는 개구리.

존재 증명의 집념이 그 이상 확고할 수 있을까.

타성에 빠져 매사가 시틋이 여겨지는 근자의 내 일상에

새롭고 강렬한 삶의 의욕을 샘솟게 할 것 같은 개구리 소리.

그리하여 쳐진 어깨 추스르고 활기차게 생활 앞에 서고 싶다.



자동차 소음에 한나절을 시달리고 나면 더욱 못 견디게 그리운 개구리 소리.

질주하는 차륜이 뱉어 내는 마찰음이며 울려대는 경적. 온 데 떠다니는 진동의 파장.

신경을 갉다 못해 이명으로 남는 소리 소리들.

그렇듯 도시가 만들어 내는 소리에서는 각이 느껴진다.

딱딱한 직각과 날카로운 예각의 비정함이 화살 되어 마구 날아온다. 방어를 위한 초긴장.

불안한 바람에 품성마저 충동적이고 거칠게 되며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지는 것은 아닐까.

자연히 심성이 삭막해지고 황폐해질 수밖에 없는 조건들뿐이다.

독일의 한 환경의학 보고서에 의하면 거리의 소음은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큰 몫을 한다고 하였다.

음악의 위안마저 없었다면 산업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은 정신분열증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들어 인도음악 쪽에 경도되는 내 취향도 우연이 아니리라.

자연에 가장 가까운 리듬이라는 인도의 라가. 그 밖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속 북소리도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처방은 잠시나마 자연 품에 안겨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날선 귀를 순하게 다스리고 충혈된 시선을 맑혀 볼 일이다.



어쨌든 이번 주말에는 만사 제치고 도시를 떠날 참이다.

어디든 개구리 소리 흥건한 촌락에 들어 하룻밤 지새지 않고서는 생병이 날 듯하다.

첨예히 곤두선 신경의 촉수를 가라앉히고 위험수위에 육박해 있는 심신의 노곤을 풀기 위해,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환기시키기 위해, 나는 개구리 소리 와글대는 곳으로 가야만 하겠다.

이른 봄.

한 덩이 우무질이 변해 올챙이 무리가 되고 다시 개구리로 모습 달리해 갈 즈음.

논둑의 들찔레는 연한 순으로 마른버짐 핀 아이들을 불러냈다.

완두콩이 통통히 살찌며 아카시아 주저리가 향을 터뜨리는 신록의 계절.

처마 밑 제비가 새끼를 치고 보리가 팰 무렵이면 아이들은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겨우내 갇혀 지낸 데 대한 반작용이듯 저마다 용수철처럼 튕겨 밖으로 내달았다.

삐삐를 한 줌씩 뽑아들고 앵두와 오디로 앞자락 버려가며 물오르는 초목 되어

싱그러이 솟구치던 긴 긴 봄 하루.



그때에의 향수 때문인지 모르겠다.

자연에의, 고향에의, 유년에의 그리움 말이다. 잃어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지금은 그들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있는 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격리나 되는 것처럼 절실함으로 간절함으로 더해 가는 그리움의 度.

이 며칠 새 나의 안달은 극을 달했다.

성화 부리며 보채는 아이같이 개구리 소리가 듣고 싶어 마냥 몸살 앓았다.

생생한 그 소리를 듣는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으므로 나는 개구리 소리를 만나러 떠날 것이다.

가서 개구리의 충만한 생명력을 내게도 전이시켜 보리라.

완전함을 위한 변태의 거듭을 내게도 적용시켜 조심스레 시도해 보리라.

또한 하늘을 날지 못함이나 꽃 위에서 노래하지 못함을 불평할 줄 모르는

자족의 넉넉함을 배워 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우선은 나를 정결히 세탁하고 충분히 해갈시켜 데리고 오는 일이리라. -89.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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