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을 앞두고 잠깐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소금밭처럼 희다는 메밀꽃이 피는 봉평장터를 다녀오기로 했다. 한국 방문 길에 꼭 둘러보고 싶은 곳 가운데 하나였다. 원주, 평창, 장평... 더듬어 올라가는 초행길의 강원도 오지. 첩첩산중 흘러내린 골마다 청룡이 꿈틀거렸다.
마른장마 중인 하늘빛은 나른하나 들판은 기갈 센 아낙처럼 서슬이 시퍼렇다. 산기슭과 도로 사이로 솔게 이어지는 밭 자락에는 황토 속살 가리며 무성한 담배밭. 웃자란 도라지 밭엔 보라꽃이 제철 맞아 한창이다. 죽죽 뻗은 옥수숫대마다 겨드랑이에 서너 개씩 끼고 있는 옥수수자루가 꽤 실해 보인다. 무엇보다 감자바위 강원도답게 온데 감자밭이다. 밭고랑마다 자욱하게 깔려있는 하얀 감자꽃. 죄다 흰 감자만 심은 모양이다.
검푸르게 독 오른 채 주렁주렁 열매가 달려 있는 고추밭이 보기 좋다. 뉜가 질서정연하게 가꾸어 놓은 손길의 노고가 짚어져 슬그머니 머리 조아려진다. 뿐인가. 튼실하게 세운 반듯한 지주대가 제각각마다 고춧대를 지성스레 받쳐주고 있다. 고추밭에 바짝 다가가 둘러보니 어느 하나도 대충 묶어준 게 아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아래위 두 차례 옥죄이지 않을 만큼의 여분을 두면서도 꼼꼼스레 동여매 주었다.
농부는 여린 고추 모종을 밭두둑에 심어나가며 포기 포기 두 손으로 다독거렸을 것이다. 마치 기도 올리듯 한 손길로. 아침마다 물 주고 풀 뽑아가며 벌레도 잡아주었을 것이다. 일일이 종이 고깔모자 씌워 뙤약볕 가려주었을 것이다. 때맞춰 비료 주고 농약도 쳤을 것이다. 비바람 심한 뒤끝엔 쓰러진 고춧대를 바로 일으켜 세우고 흙 북돋아 주었을 것이다.
한갓 일 년 농사인 고추 재배에도 이처럼 간곡한 정성과 노고가 스며있거늘. 하물며 평생 농사인 자식 교육에 기울이는 지극한 성심이야 일러 무엇할까. 한국인의 교육열은 유대인의 열기 못잖아 공식 석상의 오바마 입에서조차 여러 번 언급된 바 있다. 그처럼 우리는 자녀교육에 모든 걸 올인하다시피 하며 온갖 정성은 물론 희생마저 기꺼이 바치며 헌신한다. 자녀교육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거는 부모가 허다하다 보니 자식 교육에 관한 한 누구든 '적당히 또는 대강'이란 허용될 리 만무다. 물론 당연한 일이나 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그러므로 지나친 과열은 오히려 독소가 되기도.
대단지 고층 아파트가 군집한 동네에 들어서면 인근 상가 건물마다 층층이 무슨 무슨 학원 간판들이 즐비하다. 지하철 광고에는 당신 자녀를 책임지고 일류대에 입학시키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문구가 난무한다. 완벽한 부모 노릇은 진짜배기 알찬 정보를 수집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던가. 어느 학원 어느 선생의 수업이 좋다고 소문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줄을 대고야 만다. 공교육을 살리자는 구호는 그냥 구호에 그칠 뿐. 사회 병폐를 조장하는 높은 사교육비를 줄여보려는 국가적 노력도 소용없다. 아무리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방송의 인터넷 강의가 있어도 한사코 더 높은 수준의 사교육을 좇아 아이들을 밖으로 내모는 학부모들. 그리하여 최고를 겨냥하며 일류를 목표로 하여 총 매진해야 한다는 부모 등쌀에 아이들은 학원으로 과외로 숨 가쁘게 휘둘린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어쩐지 안심이 안될뿐더러 성이 차지도 않는다는 학부모들. 모두들 과외를 시키는데 우리만 방심하고 아이들을 풀어놓다니. 그랬다가는 대오에서 뒤처져버리고 만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혀있는 부모들 심정이 자못 비장하다. 그런 상황에서 전인교육을 기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전인교육은 이미 죽은 문자다. 좀 더 살기 좋은 지구촌을 만드는데 나름대로 일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인격체를 어떻게 기를까. 이웃에 봉사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세상에 공헌하는 건전한 시민을 어찌 만들까. 그보다는 영수 학과 점수 올리기 경쟁에 혈안이 된 부모들. 명문학교에다 장래가 보장되는 좋은 학과에 들어가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따름이다.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고 다 부차적이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집에서야 총명한 수재요 영재다. 모두가 타고난 재능꾼이며 그렇게 똑똑타못해 영악한 아이들을 그 분야의 천재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어릴 적부터 강행군도 불사할밖에. 하여 아이들은 무척 바쁘게 지낸다. 숨 가쁘게 시간에 쫓기며 산다. 공부라는 족쇄에 차인 채 공부의 노예가 되고만 아이들. 그들은 고달프다.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으며 행복하지도 않다. 그런 아이들이라 자연과 친해질 겨를이 없다. 사철의 변화도, 나무나 풀이름 따위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대신 짬짬이 폰에 매달려 기계와 친구 되어 지낸다. 그러면서 예능학원으로 외국어학원으로 여기로 저기로 쫓아다니느라 저녁 식탁에 한 가족이 모이기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란다.
새삼 밥상머리 교육 효과가 부각되고 있는 요즘이다. 가족 간 대화의 통로 구실을 하는 식사시간이다.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식사하는 중에 절로 예절교육과 인성교육이 이루어진다. 정서적 유대감도 되살아난다. 어른의 일방적인 잔소리나 훈계가 아닌,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관심사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되고 적절한 칭찬과 독려도 따르게 된다. 자녀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영, 수학과의 점수가 아니다. 먼저 부모가 그것을 깨우쳐야 하련만. 좋은 부모 아래 좋은 자녀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