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어르신은 연로하신 교우분이다. 70년대 초 엔지니어로 미국에 오신 그분은 별 어려움 없는 이민생활을 하면서 남매 반듯하게 키워 성가 시킨 다복한 가장이셨다. 육십여 년 곁을 지킨 아내가 암으로 덜커덕 먼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삼 년 전에 상처하고 휑뎅그렁한 저택에서 아내의 빈자리를 반추하며 홀로 지내신다. 가까이에 따님 집이 있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은 손수 식사를 해결하고 운동하며 소일하겠다면서 혼자 지내시길 극구 고집하신다.
그분의 유일한 낙은 차로 십오 분 거리인 아내 묘소를 돌아보는 일이다. 눈비가 내려도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과처럼 묘역을 둘러보며 묘비를 어루만지고 정성스레 닦아주니 윤기가 난다. 철철이 주변 장식을 바꿔주고 꽃을 가꾸며 풀도 뽑는다. 해서 마리아 씨 유택은 한결같이 깔끔하니 말갛게 손질이 되어있다. 날씨가 궂어 비바람 몰아치거나 눈보라가 쳐도 여전스러운 행보라 딸은 운전하는 팔순 아버지가 염려스럽다. 해서 돌아가신 분을 뭣하러 날마다 찾아가냐고 딸은 볼멘소리로 성화를 한다. 수굿해진 요셉 씨는 그때마다 이 말씀을 하신단다. '늬 엄마한테 미안해서 그런다. 가서 미안해, 여보! 그 한마디 꼭 해주고 싶어서...' 성글어진 은발의 아버지를 딸은 그저 숙연한 심사로 바라볼 따름이다.
그분 댁에서 구역회를 하는 도중 말씀 나누기 시간이었다. 그분은 앉은자리의 소파를 어루만지며 눈시울 젖어들었다. 부부끼리 서로들 아끼고 위해주며 사세요, 있을 때 잘하세요,를 서두로 그분은 회한 가득한 속내를 풀어놓으셨다. 이북 출신인 검박하고 강직한 성격의 남편, 괄괄한 경상도 아내의 만남이라 집안 조용할 날이 별로 없이 살아왔단다. 더구나 동갑끼리라 60여 년 사는 동안 나이 들어서까지 내내 티격태격하며 크고 작은 충돌 그치지 않았다. 부딪힐 일이 뭬그리 많았던지 싸움을 숱하게 했다고 한다. 마치 전생의 원수라도 만난 듯 그리 앙앙불락(怏怏不樂)하며 지냈던지, 도무지 왜 그렇게 앙숙처럼 굴었던지... 모두가 다 후회막심이지요.
미국 와서 결혼하고 집장만한 뒤 처음 구입한 소파가 오래 써서 천이 나들 나들 낡았으니 가죽으로 바꾸자고 생전의 아내는 그간 수차 졸랐다. 아내의 비즈니스가 번창해 경제적으로 윤택한 살림이라 그 정도 지출은 별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고지식할 정도로 검소질박한 남편, 아직 쓸만한 걸 왜 바꾸냐며 일언지하에 묵살해 버리고 끝내 소파를 바꾸지 않았다. 쇠심줄 고집인 아내였으나 역시 가부장제에 길들은 구세대라 번번 그렇게 자기주장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의자가 움푹 꺼져 할 수 없이 바꿨다는데. 이젠 가죽소파만 보면 아내 생각이 난다는 요셉 어르신. 아내와 함께 살아온 하많은 세월 동안 수없이 아내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이 미안하고 좀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새록새록 미안해 날마다 참회하듯 속죄하듯 묘소를 찾는다는 그분.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듯 부부도 마찬가지, 서로서로 귀함을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많은 날을 함께 지내다 보니 공기나 물처럼 예사로이 대하게 되고 서로가 심드렁, 관계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둘도 없는 귀한 사이이기는커녕 어느 땐 철천지원수처럼 악을 쓰며 모질게 대할 적도 있으니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 아닌가. 그분처럼 날마다 묘소 찾아가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후회한들 무슨 소용? 성질대로 막말해 상처 준 것 다 용서해요, 라는 낮은 속삭임 절대 들을 수 없거늘. 맺히고 곪은 것, 화해도 지금 현재 이 순간에 해야 하고 물론 치유의 자리도 바로 이 자리에서다. 곁에서 영영 떠나버리고 나면, 하늘여행을 가고 나면 이미 때는 늦고 만다.
오늘 하루를 마치 내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라, 신부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가정해 보라. 주변 모든 것이 다 소중하고 아쉽고 애틋한 마음 가득 차오르지 않겠는가. 허투루 써버리지 않으려 전전긍긍해도 모자랄 판이다. 어쩔 줄 몰라하다가 호기를 그만 안타깝게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너무도 허망스럽고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순간순간 최선 다해 살뜰히 살 일이며 서로서로 사랑하며 살 일이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