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일

by 무량화

철 이른 모기가 설친다.

그것도 꽤나 극성스럽게 설친다.

금강공원 우거진 숲에 모기가 어찌나 숱한지 사진 몇 장 찍다가 여러 방 물렸다.

혹시라도 손가락이나 복사뼈 근처에 물리면 다른 데보다 유달리 가려움이 심하다.

잠결에 발등을 얼마나 박박 긁어댔는지 피딱지 앉은 상처가 여럿이다.

피가 나도 혈소판이 작동, 피는 보통 금방 멎고 상흔으로 굳어간다.

가만히 두어도 때가 되면 딱지는 저절로 떨어지며 피부 말끔해진다.

생명체마다 자연치유력이 주어진 덕분이다.

헌데 자다가 또 근지러웠던지 생딱지가 떨어져 나가 다시 피가 났다.

신생아들이 버둥거리다 제 얼굴에 상처 낼까 봐 유아복에 손 감싸주는 기능이 딸리듯 잘 때 장갑을 끼던가 해야겠다.

그래도 싸리꽃 원추리꽃 피고 보리수 익어가는 유월 숲은 싱싱히 푸르러 얼마나 건강하던지.

하여 내 집 후원 같은 금강공원을 거듭거듭 찾게 되는 지도.


"벌어진 손의 상처를

몸이 자연스럽게 꿰매고 있다

금실도 금바늘도 안 보이지만

상처를 밤낮없이 튼튼하게 꿰매고 있는

이 몸의 신비, 혹은 사랑...."

최승호의 시처럼 몸 혹은 생명은 어떤 상처라도 스스로 치유해 나가며 살아남고자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경이로운 자연의 치유력뿐인가.

끊임없이 생명의 물줄기를 잦아 올리는 갸륵한 자생력에 의해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저 혼자 힘으로 기력 되찾아 일어선다.

그렇게 사계의 묵약은 어김없이 이어지고.​



동래성 길게 이어진 성벽 아래 꽃가루 날려 보낸 송화 잔재가 두터이 깔려있었다.

발치에 널린 송화를 무심코 발길로 헤적대다가 무언가 바쁘게 움직거리는 물체를 포착했다.

습도가 높은 데서 무리 지어 사는 쥐며느리였다.

아이들이 공벌레라 부르듯 미미한 위협이라도 느낄라치면 즉각 몸체를 말아서 동그랗게 변한다.

공처럼 위장해 무생물이듯 꼼짝도 하지 않다가 위험요소가 사라졌다 싶으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빠르게 숨을 곳을 찾는다.

게는 그물에 걸린 제 발을 매정하게 떼어버리고 도망친다.

도마뱀의 경우, 여차하면 제 꼬리를 자르고 내빼기도 하는데 깜짝 변신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리는 나비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았는가.

그렇듯 모든 생명체는 살고자 하는 존재이다.

존재하는 것의 가장 소중한 마지막 것은 목숨이다.

생명 타고난 존재는 무엇이건 자신을 아프게 하는 외적 상처든 마음에 그어지는 자존심의 상처든 어떠한 훼손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즉각적인 대처는 물론 원상태로의 환원을 위해 기울이는 내면의 노력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엄중하고 치열하기 그지없다.

존재하는 것은 그래서 아름답고 거룩한 것.

이 세상의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다 제각각 나름의 소우주, 그만큼 존귀한 존재다.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이후에도 나는 밥을 먹었다

깡마른 육체의 무더기를 떠올리면서도

횟집을 서성이며

생선의 살을 파먹었고

서로를 갉아먹는 쇠와 쇠 사이의

녹 같은 연애를 했다

역사와 정치와 사랑과 관계없이....."

최병란의 시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듯 염치없지만 그럼에도 하루 무탈히 생존했다는 자체는 경건한 신앙 같은 것.

신성하고 숭고하도록 서늘한 것.

대단한 그 일을 오늘도 무난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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