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있었다. 전라도에 있는 땅끝마을이었다. '땅끝에 서면 어쩐지 슬픈 물이 든다.'던 시처럼 참으로 쓸쓸하고 또 쓸쓸할 것 같은 곳. ‘끝’이라는 절박한 의미가 일말의 비장감으로 작용하였다. 필시 단애의 절벽이 강파르리라 여겼는데 예사로운 포구였다. 땅이 끝나는 곳이니 바다의 시작은 예고된 셈이었지만 갯내음뿐 바다는 깊은 안개에 온몸을 숨긴 채였다. 바로 발치 앞도 분별하기 어려운 지독스런 해무였다. 희미한 마침표로 바위섬 부려두고 해조음만 나른히 잣고 있던 포구. 땅의 끝에서 더 갈 곳 어디랴, 묘묘히 휘어감기는 안개의 입자는 쉬어가라고 은근슬쩍 손 이끄는 <무진기행> 속 여자 같았다.
정박 중인 배는 안개의 애무에 혼곤히 빠져 당최 깨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보길도행 배편 기다리는 발길을 묶어버린 농무였다. 하루 일정의 빠듯한 여로건만 해무에 익숙한 갯마을 사람들처럼 천연스레 안개 스러지기를 기다렸던 오래전. 그날의 아스름한 감각으로 땅끝은 다분히 감미롭고도 몽환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곳이다. 오늘, 절망상황의 다른 표현인 땅끝 얘기를 듣자 불현듯 생각난 그곳이다.
덧이어 떠오르는 영상이 있다. 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는 순전히 아르헨티나의 땅끝이 궁금해서 본 영화였다. 그 영화의 배경엔 시종 탱고 선율이 깔린다. 화려하고도 서늘하게. 서글프면서 감미롭게. 홍콩의 반대쪽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무대였고 거기에서 동성애 남자는 허름한 차를 몰고 덜거덩거리며 땅끝마을을 찾아간다. 육지의 끝은 그곳에도 있었으니 지명조차 우수 어린 아슈아이아. 등대 홀로 적연하던 거기서 그 남자는 세상의 모든 절망과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번엔 좀 가벼워지고 싶어 또 다른 영화를 불러낸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벌거숭이 맨발로 자유로이 살던 부시맨도 땅끝을 찾아 나선 적이 있다. 숫자나 소유개념 없이 무위자연인으로 살던 그들 부족이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하늘에서 떨어진 묘한 물건에 놀라는데 이는 비행기에서 버린 빈 콜라병. 그로 인해 종족 간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난다. 단순한 그들답게 해결책은 문젯거리를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보내는 것. 우여곡절 겪으며 땅끝이라는 사막 언덕에 닿아서는 하늘 높이 병을 날린 다음 씨익 웃던 부시맨. 그렇게 틈입자 악령은 사라진 것이다.
내겐 이처럼 사뭇 관념적이고 희화적이기만 하던 땅끝이었다. 이름에 이끌려 찾는 마을인가 하면 삶의 권태로부터의 탈출구로 혹은 골칫덩이를 날려버린 해방구로 인식됐던 땅끝. 그러나 현실로 맞부딪힌 땅끝은 아주 혹독한 곳이었다. 인생의 막장, 생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던 H 씨. “땅끝까지 떠밀린 기분이었지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무작정 떠날 수밖에요.”그들 가족은 그렇게 한국을 뒤로했다. 90년대 초, 한창 해외관광 붐이 일던 호황기. 대구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세계 곳곳으로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마흔 남짓에 이미 경제적 기반을 닦고 꽤 잘 나가던 그는 명함 그럴듯한 여행사 대표였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의 일이다.
IMF 이후 여행사는 특히 고삐 풀린 환율로 심한 타격을 받았다. 몇 해를 어거지로 버티다 버티다 결국 손을 털고 말았다. 알토란 같은 집과 부동산을 진작에 날리고도 여기저기, 본가 처가 친구할 것 없이 급한 대로 빌려 쓴 부채는 이미 불감당 상태였다. 나날이 지옥이었다. 완강하게 가로막은 칠흑 어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땅끝에서 마지막 비상구로 미국행을 작정했다. 어쩔 수 없는 도피였다.
연고라고는 그나마 처가 쪽 먼 친척뿐. 실낱같은 끈 하나에 매달려 얼마간 더부살이 신세로 지내다 보니 커피조차 눈치가 보였다. 다행히 아직 젊은 나이라 일자리 잡기는 수월한 편이었다. 아파트를 얻고 내외는 하루 열두 시간 일주일 내내 뛰었다. 몸은 고되나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자 아이를 데려왔다. 오랜만에 식구가 오붓하게 모이니 행복이 따로 없었다.
일의 피곤함도 잊고 열심히 벌어 힘닿는 대로 빚도 꺼나갔다. 지금은 신청해 놓은 취업비자를 기다리는 중, 꼬챙이처럼 말랐던 처음과는 달리 얼굴에 평화가 깃든 H 씨.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땅끝 벼랑에 서 본 그라서 이만한 안정이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라 한다. 결국 절망의 땅끝은 다시 시작하는 곳이자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세상의 끝을 지나 이제 그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