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리로 찾아온 단종과 엄홍도

by 무량화

어린 왕의 한 서린 유배지, 육지 속의 외로운 섬 청령포 산허리에 피어난 참나리꽃.

서쪽엔 육육봉 험준한 암벽이 내리질렀고 나머지 삼면은 강으로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게 사방이 꽉 막힌 지형이다.

열여섯 단종은 청령포에 유배되어 몇 달 후 불과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된다.

시신조차 아무도 거두지 않은 가여운 임금, 위험 불사하고 한밤에 몰래 단종을 땅에 묻어 장사 지낸 엄흥도.

올여름에도 어린 임금과 충신 엄흥도는 청령포 참나리로 피어나 옛이야기 지나는 바람결에 향으로 띄우고 있는가.


수양대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낮추어져 유배된 단종, 청령포 솔숲에 묻힌 백성들의 출입을 금하는 금표비(禁標碑)



산 청청 물 청청인 강원도 오지 영월. 기골장대한 태백의 봉우리가 겹겹 에워싸인 그 아래 산기슭 흘러내린 골은 아득히 깊다. 끝 모르게 이어지는 유장한 옥빛 강줄기 따라 내쳐 달음질치던 차가 이윽고 멈춘 곳. 누가 찾아냈을까. 이보다 더 탄식 깊게 만드는 유배지가 또 어드메 있을까. 기막히게 생긴 지형지물이다. 뒤편은 단애요 앞을 가로막는 건 시퍼런 강물. 육지에 뜬 섬에 다름 아니다. 막막한 심정으로 여기 이르렀을 열여섯 소년 노산군. 가슴 아린 그 장면이 떠올라 코끝 아릿해진다. 이 강물에 피눈물 섞었을 초췌한 단종을 전송하며 산천인들 낙루치 않았으랴. 반달 같은 나루 건너 우거진 송림마저 애련하다.



청령포를 근 삼십 년 만에 다시 찾았다. 당시는 양 켠에 매 놓은 줄을 사공이 잡아끄는 힘으로 나룻배가 움직였는데 이젠 전기모터 달린 배로 금방 강을 건넜다. 묵연히 솔밭 사잇길 걸어가며 오래전 기억 속 흔적을 더듬어본다. 주변 풍물이 전과는 아주 많이 달라졌다. 한옥으로 만든 유배처가 들어섰고 애끓는 심사를 글로 읊은 시조 몇 수가 비석에 새겨져 있다. 단지, 엎드려 단종을 맞았다는 허리 굽은 소나무와 관음송만 여일 할 뿐이다. 육육봉 꼭대기 노산대 오르는 산길도 데크와 계단으로 잘 다듬어졌다. 하지만 전에는 언덕길 잔뜩 구부린 채 걸어가던 노인들 이젠 층층 난간 올라가긴 글렀다. 하염없이 한양 바라보며 서리서리 쌓인 시름 허공에 뿌렸을 노산대인데 거기 올라 강 건넛마을을 바라보니 두서없이 들어선 주황빛 지붕들 몹시 거슬린다.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된 청령포라면 전망 정도 배려는 응당해줘야 하련만 식견과 안목이 거기까진 못 미치는 듯. 안타깝다.


불교가 가르치는 이치대로라면 벌은 지은 죄에 상응하는 것. 허나 이처럼 죄 없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된 단종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읜 의지가지없는 나어린 소년으로 죄를 지은들 무슨 몹쓸 죄를 지었으랴.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모순투성이 세상이라 해도 너무나 불공정한 결론 아닌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을 당하면 그래서 흔히 전생의 업으로 돌리는지 모른다. 스스로가 지은 업보 탓이다, 자신에게 책임을 지움이 오히려 감당하기 수월한 때문이리라. 납덩이같이 심사 무겁고 추연한 채 청령포를 뒤로하고 찾아간 곳은 장릉(莊陵). 다른 왕릉과 달리 산언덕에 높직하게 자리한 장릉에 이르러서야 그나마 마음 좀 풀렸다.


열일곱 살 노산군은 영월 동헌에서 세조가 내린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둔다. 시신은 강물에 버려진다. 단종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옳은 일을 하고 화를 당하는 것은 괜찮다며 영월 호장 엄흥도가 몰래 시신을 거둔다. 노모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관과 수의로 단종을 고이 모셔 선산인 현 위치에 묻는다. 그 후 세월 흘러 흘러 중종 때다. 영월 군수로 부임한 문경공 박충원의 꿈에 노산군이 현몽하므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노산묘를 찾게 된다. 이백 년 세월 뒤에야 중종이 봉분을 갖추었고 선조가 상석과 망주석 장명등을 세웠다. 숙종은 단종 신위를 종묘에 올리고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여각은 영조 때 세워지고 순조는 공조판서로 추증하였으며 고종으로부터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게 된다.


누군가는 평생 흉한 병으로 고초 겪다 죽어서는 왕위 찬탈자로 영영 세세 오명 남겼다. 반면 애사(哀史)로 기록된 슬픈 생애를 살다가 덧없이 죽음에 이른 단종이지만 태백산 산신으로 부활해 영생을 누린단다. 불의를 참아내지 못하는 한국인의 정서상 기어이 그렇게라도 태백산 산신령 신화를 만들어 단종을 위로하였다. 이승에 허락된 한생 정말이지 잘 살아낼 일이다. 2020


높직한 산 정상 전망 좋은 위치에 의연히 자리한 장릉

잘 다듬어진 봉분 뒤로 벽돌에 기와를 인 곡장이 둘려있고 석수가 지키며 앞에는 상석 장명등과 문인석(무인석은 없음)

신성한 구역임을 나타내는 홍살문

능에서 제례를 지낼 때 실내에 음식을 차려놓고 모든 의식을 진행하는 정자각

장릉 기슭 경내 입구에 선 박충원을 기리는 낙촌 비각

옳은 일하고 화를 당하는 건 괜찮다며 노모 위해 준비한 관과 수의로 단종을 모신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旌閭閣과 홍살문

아름드리 느티나무 숲그늘 시원한 장릉 경내

조선왕가 어좌(御座) 뒤로 임금이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병풍인 일월오봉도/ 역사관 내의 포토죤

재위 3년 2개월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실록 / 사육신의 한 분인 매죽헌 성삼문의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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