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 마을은 민속촌이 아니라오

by 무량화


주말에 아들네 식구들과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다녀왔다.

경주는 불국사 말고도 볼거리가 하도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버겁다.

80년대인 오래전, 등단하자마자 부산 문우들과 연이 닿으며 맨 처음 문학기행 간 곳은 감은사지와 대왕암 그리고 양동 마을이었다.

얼마 후엔 부산박물관학회 회원으로 경주 불탑골과 천마총 답사를 가면서 서라벌의 여러 왕릉도 두루 돌아봤다.

이번에 아들이 계획한 코스도 이와 얼추 비슷해, 삼릉 들렀다가 강동면 양동리에 자리한 고즈넉한 민속마을로 향했다.

당시 양동 마을은 곧 쓰러질 듯 퇴락한 기와집마다 나이 든 맏종부나 행랑채에 기거하며 집 건사하는 능참봉이 지키고 있었다.

이곳도 상전벽해, 옛 기억 무색하게 토담 석담 가지런하니 다듬어 규모 있는 아름찬 마을로 변해있었다.


6백여 년 전통을 이어온 월성 손씨(月城孫氏)와 여강 이씨(驪江李氏) 집성촌인 양동 마을은 한국의 대표적 전통가옥 밀집지다.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가 마을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부족 단위 마을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동.

조선 전기 보편적인 처가입향(妻家入鄕) 혼인 풍습에 따라 월성 손씨 손소의 고명딸과 여강 이씨 이번이 결혼하여 둔 아들이 바로 이언적이다.

조선조 명재상이자 성리학자로 영남학파의 시조인 이언적 문하의 옥산서원에는 조선팔도 인재가 모여들었다.

이조판서를 지낸 청백리 손중돈을 비롯해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자 다수를 배출했으며 이외에도 숱한 학자들을 길러낸 땅이다.


16세기 명재상을 냈던 과거의 영화도 그러나 치열했던 낙동강 전선인 안강 기계 전투로 양동 마을은 쑥대밭이9 되며 한국전쟁을 전후해 점차 퇴락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항아리처럼 입구는 좁고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지형 자체가 물(勿) 자 형국의 명당인 이곳.

풍수지리상 재물 복이 많은 터라고 이중환의 택리지에 쓰여 있다는 양동 마을이다.

1백 년 이상 된 양반가의 기와집과 조촐한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정겨운 풍물로 사라진 우리네 옛 정취에 잠겨 들게 해 줬다.

하여 지금은 찾는 이들로 하여금 잊혀가는 고향마을 전설을 회억하게 해주는 곳이다.

안동 하회 마을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문화유산으로, 양동(良洞) 민속마을은 특히 ‘지속가능한 발전’ 사례의 모범 케이스라 한다.

곧, 주거형 문화유산(living heritage)으로 민속촌처럼 관광지로 꾸며놓은 게 아니라 명문가 후손들이 현재 실제로 살아간다.

따라서 시끄러운 소리로 떠들면 아니 되며 함부로 문 벌컥 밀고 들어가지 않는 등 예의를 지키는 건 필수다.

이 마을엔 통감속편(국보 283), 무첨당(보물 411), 손소 영정(보물 1216)을 비롯하여 국가 민속문화재 12점이 있다.

그 외에도 여주이씨 문중 전적과 고문서 등 향토 지정문화재 다수는 양동 마을 문화관에 전시해 놨다.



양동 마을 초입을 지키는 오래된 버드나무며 홰나무, 거기다 막 벙글기 시작하는 연꽃이 우릴 환대했다.


담장에 휘늘어진 능소화꽃 소담하게 피었으며 장독대 주변에는 하느작대는 원추리꽃 참나리꽃이 눈길 사로잡았다.

마을 전체 분위기가 이처럼 잘 가꿔진 조경으로 옛스럽고도 품격 있는 아취를 자아냈다.

15세기에 지은 서백당은 씨족마을이자 외손마을 손소의 종택으로 5백 년 생 향나무가 유명한데 인근 전체가 공사 중이었다.

이언적 종가인 무첨당이 있는 고택도 복원을 위한 보수공사 중이라 거죽만 휘리릭 둘러봤다.

심수정에서는 오후 두 시부터 국악 연주회가 열린다 했으나 기다릴 일행을 고려해 연잎차 한잔 음미하고 나왔다.

단순소박했던 옛 정경만 생각했는데 이젠 구석구석 꼼꼼스레 둘러보려면 하루 일정으로는 모자랄 판이었다.

양동 마을 전체 대강 조망만 하였으니 당분간 양동 마을은 집집마다 만발한 능소화와 연꽃으로 기억되지 싶다.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안길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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